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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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각 지방 지도 중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경기도 인천부 지도. 19세기 후반 집권한 흥선 대원군은 세도 정치의 혼란과 관료 사회의 부패 등으로 혼탁해진 조선 내정에 대한 대대적 개혁에 나섰다. 또한 그는 두 차례 서양 세력의 공격[양요]에 맞서면서 군사, 치안 등에 대해서도 정비를 도모하였다. 당시 전국적으로 실시된 읍지와 지도의 편찬은 그러한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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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 있는 ‘ㄱ’자 형태를 보이는 민가. 우리나라의 민가는 지역의 자연 환경과 생태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띤다. 남부 지역의 경우에는 본채와 아래채가 떨어져 있으며 본채는 주로 ‘一’자 형태를 띤다. 또한 방과 방은 마루로 연결되어 있으며 더위를 피하기 위한 통풍이 잘 고려되어 있다. 반면 북부 지역의 경우에는 폐쇄형의 가옥 구조를 보인다. 중부 지역에는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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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도상구가 전승하는 전통 음악 장르. 여창 가곡은 시조에 곡을 붙여서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우리나라 전통 음악으로, ‘삭대엽’ 또는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 ‘노래’라고도 한다. 가곡의 원형은 고려 가요(高麗歌謠)에서 생겨난 만대엽·중대엽·삭대엽 순이나 느린 곡인 만대엽은 조선 영조(英祖) 이전에 없어졌고 중간 빠르기의 중대엽도 조선 후기에는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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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최성연이 개항 이후 인천의 서양 건축물에 대해 쓴 단행본. 『개항과 양관 역정(開港과 洋館 歷程)』은 인천 개항장을 중심으로 근대 서양 건물, 즉 양관(洋館)들의 내용을 자세하게 정리하였다. 인천의 개항과 정세, 사건들의 뒷이야기까지 자료의 근거를 제시하여 세상에서 사라진 양관들에 대하여 역사적 의미, 규모, 건축 과정, 내력, 일화를 서술한 책이다. 특히 현장 답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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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이나 구조물을 세우거나 설계하고 만드는 기술이나 건축물.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은 모더니즘으로서의 근대 건축이 아니라, 개항 이후에 유입된 서양식 건축 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외래 건축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 유입된 근대 건축은 주로 개항장인 부산, 원산, 인천에서 이루어졌다. 부산과 원산이 주로 일본식이나 일본 의양풍(儀洋風) 건축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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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했던 인주 이씨(仁州李氏)로 인해 붙여진 인천 지역의 옛 명칭. 경원군(慶源郡)은 인천의 옛 명칭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던 인주 이씨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인주 이씨가 왕실의 외척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이허겸(李許謙)의 손자인 이자연(李子淵) 때의 일이었다. 이자연의 세 딸이 모두 문종(文宗)의 비로 뽑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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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김종(金宗)을 입향조(立鄕祖)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과 주안동에 세거하던 성씨.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더불어 김씨의 2대 주류를 이루는 대보공(大甫公) 알지계(閼智系) 가운데서도 그 대종을 이루는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파계(派系)가 복잡다. 은열공파(殷說公派), 태사공파(太師公派),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 영분공파(永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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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인하 대학교 후문에서 파는 빵. 1984년 인하 대학교 후문에서 처음 소개된 계란빵은 달콤함과 고소함이 어우러져 30년 가까이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계란 한 개가 고스란히 들어가며 각종 첨가물이 가세하여 한 끼의 식사 대용으로도 훌륭하다. 1920년대 내내 조선에 들어오는 중국인의 수는 계속 늘었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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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 9세기 말 신라의 국력이 쇠약해져 각지에서 군웅들이 할거하였고 이는 곧 후삼국의 정립으로 이어진다. 이 중 태봉을 세운 궁예(弓裔)[857(?)~918, 재위 901~918]의 장수로 있던 왕건(王建)[877~943, 재위 918~943]이 궁예를 몰아내고 918년 고려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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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의 옛 모습을 그린 전통 시대 지도의 총칭. 고지도는 작성 연대가 오래되고[전통 시대], 투영·제작법이 현대의 지도와는 구별되는 회화적(繪畫的) 성격을 지닌 과거의 지도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 지도는 주로 국방이나 행정의 목적으로 제작되어, 국가 통치의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었다.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이미 지도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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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현대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이루어진 교육에 관련된 제도 및 정책, 기관, 시설.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후 조선의 유교 중심 교육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통변 학교(通辯學校)[외국어 교육을 위해 세운 학교]·광혜원(廣惠院)[최초의 국립 병원] 등을 세워 외국어와 서양 의학을 가르쳤다. 일반 교육을 위해 1885년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 학당, 1886년 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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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ㆍ고려ㆍ조선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를 포함한 지방 제도. 군현제는 한반도에 일찍부터 전해져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에는 초기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주변 소국을 점령할 때마다 군현(郡縣)을 설치한 것으로 나오나, 일반적으로 이는 인정되지 않는다. 통상 한국에 군현제의 등장은 신라 지증왕(智證王)[437~514] 때 주요 군사 지역에 주(州)를 두고 그 장관으로 군주(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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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정월 대보름 아침에 귀가 밝아지기를 기원하여 술을 마셨던 세시 풍속. 귀밝이술 마시기는 정월 대보름 식전에 데우지 않은 청주 한 잔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며 1년 동안 귓병이 생기지 않고 귀가 밝아져 한 해 동안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하여 행해졌던 세시 풍속이다. 귀밝이술은 한자어로 이명주(耳明酒), 명이주(明耳酒), 유롱주(牖聾酒), 치롱주(治聾酒),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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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1870년대에 외국과 수교 관계를 맺고, 문호를 개방하면서 조선의 유교 중심 교육은 서구식 근대 교육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외국의 새로운 제도 및 기술을 도입하는 데 필요한 근대식 학교 교육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근대식 교육 기관은 1885년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Gerhard)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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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돌아가신 분의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祭祀). 제사는 차례(茶禮), 시제(時祭)[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가묘에 지내는 제사 또는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기제(忌祭) 또는 기제사(忌祭祀), 불천위제(不遷位祭)[나라에 큰 공적을 세우거나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이들에게 내려지는 불천위를 받은 이의 기제사]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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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태어난 사업가이자 교육가. 김경하(金敬夏)[1911~1967]는 조선 개국 공신이며, 사패지(賜牌地)[임금이 내려 준 논밭]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인 여의실(如意室)[속칭 여우실]과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남동 소방서 일대인 물우산(勿右山)을 받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계림군(鷄林君) 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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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태어난 정치인. 조선 개국 공신이며, 사패지(賜牌地)[임금이 내려 준 논밭]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인 여의실(如意室)[속칭 여우실]과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남동 소방서 일대인 물우산(勿右山)을 받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다. 초대 인천시 교육 위원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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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출신인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1926년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 조선 시대 마지막 어진 화가(御眞畫家)로 명성이 높았던 김은호는 인천의 구읍지인 향교리[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서 음력 1892년 6월 24일 태어났다. 김은호는 1912년 서화 미술회[1911년에 설립되었던 미술 교육 기관] 화과(畵科)에 입학하여 조석진(趙錫晉), 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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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음력 2월 초하루에 나이 수만큼 떡을 만들어 먹었던 세시 풍속. 음력 2월 1일은 중화절(中和節) 또는 ‘머슴날’이라고 불렸으며, 농사일을 시작하는 날로 여겼다. 이날에는 숟가락으로 식구들의 나이 수만큼 쌀을 퍼서 송편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 떡을 나이떡이라고 한다. 나이떡은 나이 수만큼 먹으면 좋다고 여겼는데, 이러한 풍습을 ‘나이떡 먹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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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정초에 행하는 여자아이들 놀이. 답판(踏板), 도판(跳板), 초판희(超板戱), 판무(板舞)라고도 불리는 널뛰기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해지는 놀이이며 특히 정초에 주로 여성들이 즐겨하였다. 두 사람이 널의 양쪽 위에 서서 서로 균형을 잡아가며 발을 굴러 서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놀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행해지는 널뛰기의 역사는 명확하지 않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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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정월 대보름 저녁에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속. 달맞이는 정월 대보름의 주요 풍속으로 동쪽에서 뜨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속이다. 달을 맞이한다고 하여 영월(迎月)이라고도 하며, 달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망월(望月) 혹은 달보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민속 해설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초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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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김정호에 의해 편찬된, 인천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전국 지리지. 1863년 경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지리지이다. 김정호의 전국적인 지리적 내용의 정리라는 일생의 작업 가운데 이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총 32권 15책이며 책의 크기는 27.3×19.4㎝[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본]이다. 현재 국립 중앙 도서관, 고려 대학교 중앙 도서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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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세시 풍속. 대보름은 정월 대보름을 말하며, 한자로는 상원(上元)이라고도 한다. 상원은 중원(中元)[7월 15일], 하원(下元)[10월 15일]과 연관해서 부르는 한자어이다. 정월 14일을 작은 보름, 15일을 큰 보름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대보름은 우리나라 세시 풍속에서도 비중이 크고 뜻이 깊은 날이기 때문에 ‘대보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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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5월 19일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인천 지부 주최로 개최된 신탁 통치안 반대 집회.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이승만이 1945년 10월 23일 결성한 독촉 중앙 협의회를 모체로 하여 결성된 전국적 규모의 우익 연합 단체로 1946년 2월 8일 조직되었다.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자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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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사진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옛 인천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 그 기원은 백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관교동과 문학동을 중심으로 인천도호부 관아와 인천 향교가 있던 곳으로 선비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문화·예술은 상당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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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문화유산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은 문화유산 활성화를 위하여 문화재청과 인천광역시청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미추홀구의 사업명은 생생 문화재 사업과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 사업으로 생생 문화재 사업은 2013~2019년까지 7년간,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 사업은 2014~2019년까지 6년간 선정되었다. 인천 향교는 인천광역시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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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27일 민주주의 민족 전선 인천 지부가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한 집회. 좌익 계열의 ‘민족 통일 전선’ 조직인 민주주의 민족 전선 인천 지부가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와 조선 임시 정부 수립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한 집회이다. 미국과 영국, 소련의 3개국 외상은 1945년 12월 16일 소련 모스크바에서 3개국 외상 회의를 열고 그 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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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가 도읍지로 정했던 지역. 백제의 시조인 온조와 그의 형인 비류는 고구려로부터 남하하였는데, 형인 비류는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고 동생인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초기 백제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미추홀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로 비정되고 미추홀의 중심 유적으로 믿어지는 것이 문학 산성이다. 하지만 문학 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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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군(仁川郡)의 지인천군사(知仁川郡事)를 지낸 문신. 1418년 3월 지인천군사로 부임하여 같은 해 10월까지 약 7개월간 복무하다가 모친상을 만나 사직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의지(宜之)이다. 아버지는 고려 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민중리(閔中理), 어머니는 진주 유씨(晉州 柳氏)로 고려 말 삼사좌사(三司左使)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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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댓조각과 두꺼운 종이 등을 이용하여 만든 바람개비를 손잡이 자루에 꽂고 바람을 마주하여 뛰면서 돌아가게 하는 아이들 놀이. 바람개비 놀이는 팔랑개비 놀이라고도도 부른다. 종이 등을 이용하여 만든 바람개비를 손잡이에 끼워 바람을 맞으며 도는 것으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아이들이 과거에 많이 했던 대표적인 놀이다. 주로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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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주(仁州)의 지인주사(知仁州事)를 지낸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유지(柔之), 호는 나산경수(蘿山耕叟)이다. 아버지는 호조 전서(戶曹典書)를 지낸 박침(朴沈)이고, 어머니는 밀산군(密山君) 박린(朴隣)의 여식이다. 윤승경(尹承慶)의 여식을 아내로 맞았다. 박강생(朴剛生)[1369~1422]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활동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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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박권(朴權)[1658~1715]는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문신으로 1699년(己卯) 4월 10일에 인천으로 부임하여 7월 23일까지 인천 부사를 역임했고, 1712년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 획정 때 조선 측 대표인 접반사(接伴使)로 활약했다. 본관이 밀양(密陽)이며, 자는 형성(衡聖), 호는 귀암(歸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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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주(仁州)의 지인주사(知仁州事)를 역임한 문신 고려 말 내시(內侍) 전별장(前別將)을 지낸 박을재(朴乙材)의 아들이다. 박수기(朴竪基)는 고려 말 1377년(우왕 3) 진사시(進士試)에 3등(三等) 6위로 합격하였으나, 문과 급제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9년 서무를 총괄하고 간쟁(諫諍)을 맡아보던 관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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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친일파 관료.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평재(平齋)이고, 참정 박홍수(朴洪壽)의 아들이다. 박제순(朴齊純)[1858~1916]은 1858년(철종 9)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여, 1885년(고종 22) 정시(庭試)[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대궐 안에서 보이던 과거] 병과(丙科) 37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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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포함되었던 고대 국가. 678년간 존속한 백제의 역사는 시조 온조왕에서 사반왕까지의 소국-소국 연맹 시기, 고이왕에서 계왕까지의 5부 체제 시기, 근초고왕 이후의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가 갖추어진 이후 백제의 역사 전개는 한성 시대(漢城時代) 전기[근초고왕~아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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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淸)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이상재(李尙載)[1607~1636]가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鄭世䂓)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출정하여, 인조가 피란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향하여 진군하다가 용인에서 적의 협공을 받아 전사하였다. 1627년 후금(後金)[뒤의 청]의 조선에 대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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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이 속했던 행정 구역 명칭. 1905년 통감부가 설치된 후, 일제는 종전까지 군(郡)을 중심으로 유지되어 왔던 지방 행정 체제를 해체하고 중앙 행정력이 지방 하부 단위까지 미칠 수 있도록 면(面) 중심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10년 「조선 총독부 지방관 관제」와 「면에 관한 규정」을 공포해 면을 최하급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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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우리나라 불교는 삼국 시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며, 신앙과 지배 이념으로 기능하면서 발전하였다. 삼국 중 불교가 가장 먼저 전래된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 전진(前秦)의 순도(順道)에 의해 불교가 공인되었다. 그러나 이미 유학이 유입되고 교육 기관인 태학이 성립되어 있어 불교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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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에서 토지와 곡식을 맡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 터. 사직단(社稷壇)은 종묘(宗廟)와 함께 나라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조선의 사직단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에 있는 사직단은 국가에서 건립한 것으로 1394년(태조 2) 현재의 자리에 세운 것이다. 규모는 단을 2개로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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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신기 시장에 위치한 천만억 식품에서 개발한 두부. 천만억 식품 문우영 대표는 신기 시장에서 10년간 두부 사업을 해오던 중 같은 두부라도 특색 있게 만들면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특색 있는 두부 개발에 들어갔다. 문우영은 수십 번 실패를 거쳐 1년 만에 삼층 두부를 개발했다. 삼층 두부는 하루 마흔 모 이상 판매되는 신기 시장의 히트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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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정월 5일, 14일, 23일을 불길한 날로 여겼던 풍속. 삼패일(三敗日)은 음력으로 정월 5일·14일·23일을 말한다. 이 날들은 불길한 날로 여겨 행동을 조심하여 외출을 삼갔으며, 집에서 근신하면서 부정(不淨)한 것을 보거나 접하는 것을 꺼렸다. 삼패일에 대하여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민속 해설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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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성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하는 통과 의례. 성년식은 부모의 슬하를 떠나 육체적·정신적 훈련을 받은 다음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의식을 말한다. 전통 시대의 성년식은 관례(冠禮)와 계례(筓禮)로 대표되는데, 관례의 풍습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966년(광종 16)에 왕자에게 원복(元服) 예를 행했다는 『고려사(高麗史)』 기록이 우리나라에서 관례를 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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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토성(土姓)인 인천 이씨 출신의 이문화(李文和)와 혼인 관계인 윤번(尹璠)의 딸과 결혼한 조선의 제7대 왕. 세조(世祖)[1417~1468]의 이름은 유(瑈)이며, 자는 수지(粹之)이고, 조선 제7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아버지는 세종[李王匋], 할아버지 태종[李芳遠], 증조할아버지 태조[李成桂, 李旦]이며, 외할아버지는 심온(沈溫)이다. 어머니는 소헌 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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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편찬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는 인천군(仁川郡)에 관한 정보가 담긴 지리지. 1454년(단종 2)에 완성된 『세종실록(世宗實錄)』의 제148권에서 제155권에 실려 있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는 조선 왕조 개창 초기 전국 단위의 지리지 편찬 사업 과정에서 완성되었다. 현재 주로 이용되는 것은 태백산 사고본이다. 태백산 사고본은 모두 사본으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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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설날에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대문 또는 벽에 붙인 그림. 세화(歲華)는 새해 첫날의 세시 풍속 중 하나로 문짝에 주로 붙이기 때문에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畫)라고도 하였다.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 동안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기복적(祈福的)인 성격을 가진 풍속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는 설날 새해를 송축(頌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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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한주(漢州)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買召忽縣)이었으나, 진흥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소성현(邵城縣)으로 개칭되었다. 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신문왕 5) 신라는 전국을 9주(九州)로 개편하였고 5소경(五小京)을 정비하였다. 신문왕의 지방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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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백성들이 관직에 있던 자의 은혜와 덕을 기려 세운 비(碑). 일명 선정비(善政碑)·유애비(遺愛碑)·공덕비(功德碑)라고도 한다. 지방 수령 등의 관직에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끼쳤을 때 백성들이 비를 세워 그 덕을 기리는 것이다. 해당 사실을 심사하여 왕의 칙령으로 허가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세울 수 있었다. 송덕비는 주로 관아 근처에 사람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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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섣달그믐 밤에 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풍속. 수세(守歲)는 섣달그믐 밤에 방, 마루, 부엌, 곳간, 변소, 문, 장독대 등 집안 곳곳에 불을 밝혀 놓고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았던 풍속을 말한다. 특히 부뚜막 솥 뒤에 꼭 불을 밝히는데, 부엌을 주관하는 조왕신(竈王神)이 하늘에 올라가서 천신(天神)에게 그 집에서 일 년 동안 있었던 일을 낱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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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행해지던 놀이로 윤목[주사위]을 던져 나온 숫자에 따라 이동하면서 누가 가장 먼저 높은 관직에 올라 퇴관하는가를 겨루는 놀이. 승경도 놀이는 종경도 놀이, 종정도 놀이, 승관도 놀이 등으로 불린다. 주사위 또는 오각형의 나무 막대인 윤목(輪木)을 굴려서 나온 수대로 말을 이동하여, 최종점인 봉조하(奉朝賀)에 도착해 먼저 물러난 사람이 승리한다. 원래는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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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10월에 날을 가려 집안의 안녕을 위해 가신(家神)들에게 올리는 고사(告祀). 시월 고사(十月告祀)는 상달 고사 또는 가을 고사, 성주 고사라고도 한다. 시월 고사는 음력 시월 중에 손 없는 날을 택일(擇日)하여 시루떡을 쪄서 햇곡식과 과일로 성주신을 비롯한 가신(家神)에게 고사를 지내는 것이다. 시월 고사를 드리는 성주신은 집안의 평안을 관장하는 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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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재화와 용역 및 서비스가 거래되는 장소. 시장이란 인간이 경제 활동을 통해 획득된 소득을 특정 공간에서 일상생활을 통해 소비할 수 있는 장소로, 지역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고 분배·소비하는 공간이다. 시장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생산자와 소비자의 집단적 의사가 반영되는 공간으로 연 1회, 월 1회, 10일에 1회, 주 1회, 5일에 1회 등 정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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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미국이 조선에 침범함으로써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 사건. 신미양요는 1871년(고종 8)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 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과의 통상 관계 수립을 목적으로 무력 침략한 사건이다. 주청 전권 공사 F. F. 로우(F. F. Law)가 전권을 위임받고, 조선 원정을 명령받은 아시아 함대 사령관 J. 로저스(J. Rodgers)는 군함 5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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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간행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官撰)[관청에서 서적을 편찬함] 지리서이다. 1392년 조선 왕조의 개창 이후 집권 세력은 중앙 집권의 강화를 위해서는 전국적인 단위의 지리지 편찬이 필수적인 사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전국적인 단위의 지리지를 통해 전국 각 고을의 역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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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인천 토성(土姓)인 인천 문씨(仁川門氏)와 혼인 관계를 맺은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득지(得之)이고, 호는 노당(蘆堂)·허당(虛堂)이다. 아버지는 심룡(沈龍), 할아버지는 심연(沈淵), 증조할아버지는 심홍부(沈洪孚)이다. 심덕부(沈德簿)[1328~1401]는 청송 심씨(靑松沈氏)가 조선 전기 거족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만든 인물이다. 세종(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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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정월 1일부터 12일까지 십이지(十二支)에 해당하는 열두 동물들의 날에 행하는 세시 풍속. 십이지 상일(十二支上日)은 정초 십이지일(正初十二支日) 또는 짐승 날이라 하며, 음력 정월 1일부터 12일까지 십이지(十二支)에 해당하는 열두 동물들의 날을 말한다. 즉, 십이지 상일은 상자일(上子日)[쥐날], 상축일(上丑日)[소날], 상인일(上寅日)[범날], 상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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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맞잡고 힘과 기술을 통해 상대를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씨름은 아이들이 힘을 겨룰 때 많이 하던 놀이로서, 모래판이나 두꺼운 이불을 펼쳐 놓은 방안에서 주로 하였다. 씨름의 어원은 ‘서로 버티어 겨루다’의 뜻을 가진 경상도의 방언인 “시루다”가 명사화하여 ‘씨름’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한자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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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618[문학동 482]에 있는 문학 경기장은 ‘한국 축구 16강 성지’이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 역사 48년 만에 그토록 바라던 16강 진출의 꿈을 이룬 곳이다. 청동기 유적이 발견돼 지금의 인천광역시가 비류 백제의 도읍지인 미추홀임을 증명한 곳. 한때 인천 시민 구단인 프로 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이자, 인천에 연고지를 둔 프로 야구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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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었던 경주 김씨의 집성촌. 여우실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의 옛 이름으로, 조선의 개국 공신인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3세손인 김종(金宗)의 후손이 18대에 걸쳐 500년 동안 살아 온 경주 김씨의 집성촌이다. 2012년 현재 여우실의 자리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과 청소년 회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2004년 9월에 경주 김씨 문중 종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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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남구청의 종합 민원실은 경주 김씨(慶州金氏) 인천 여우실[如意室] 문중의 종가(宗家)가 있던 곳이다. 인천의 경주 김씨는 조선왕조 개국공신인 김균(金稛)의 3세손인 김종(金宗)이 1450년경 한양에서 여우실(현 숭의동)로 이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가의 터전으로 18대가 한 자리를 지켜왔다. 특히 지역 출신의 최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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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년~1765년에 조선 전국 읍지를 모아 만든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전국 읍지. 『여지도서(輿地圖書)』는 1757년(영조 33)부터 1765년에 걸쳐 조선의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한 전국 읍지(邑誌)이다. 총 55책으로 295개의 읍지와 17개의 영지(營誌) 및 1개의 진지(鎭誌) 등 총 313개의 지지가 수록되어 있다. 1757년(영조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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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역사적 내력.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인천 일대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곳 중 하나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27년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옛 소년 교도소 서쪽 언덕 위에서 조선 총독부 박물관에 의해 발굴된 고인돌을 통해 이미 선사 시대부터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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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1월 15일에 지어 먹었던 음식. 오곡밥은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 절식(節食)[명절에 따로 차려서 먹는 음식]의 하나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대보름 전날일 음력 1월 14일에 오곡밥을 지어 먹었다. 쌀에 좁쌀, 보리쌀, 수수, 팥, 콩을 섞어 밥을 짓고 여러 가지의 묵은 나물을 갖추어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는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는 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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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정월 초하룻날 해가 질 무렵 문 밖에서 한 해 동안 모은 머리카락을 태우는 풍습. 원일소발(元日燒髮)은 정월 초하룻날 저녁에 한 해 동안 버리지 않고 모았던 머리카락을 태우는 풍습을 말하며, ‘머리카락사름’이라고도 한다. 남녀 모두 머리카락을 길렀던 옛날에는 머리를 빗을 때마다 빠지는 머리카락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정월 초하루에 이를 태워서 전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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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전해지는 원한이 많은 귀신. 인생을 살다보면 원한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죽어서도 그것을 잊지 못할 정도로 원한이 사무치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돌며 원혼귀가 된다. 원혼귀는 사는 동안에 한이 많이 맺혔거나, 특정한 사람에게 원한이 있는 등 종류가 다양하다.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은 목을 매거나 음독자살을 하여 죽은 원혼귀는 그 고을의 군수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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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공자(孔子)를 시조로 하는 전통적인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유교(儒敎)는 중국 춘추 시대 말기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로, 시조인 공자의 이름을 따서 공교(孔敎)라고도 한다. 삼강오륜(三綱五倫)[유교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의 강령과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리로, ‘군위신강(君爲臣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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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으로 평년의 12개월보다 1개월 더 보태진 달에 행해지는 풍속. 윤달은 태양력(太陽曆)과 태음력(太陰曆)을 별도로 계산할 때 나타나는 차이를 줄이기 위해 평년보다 1개월을 더 보태는 달을 의미하며, 윤월, 공달, ‘여벌 달’, ‘덤 달’이라고도 한다. 음력으로 날짜를 계산할 때 삭망월(朔望月)[보름달이 된 때부터 다음 보름달이 될 때까지의 시간] 한 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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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지낸 문신이자 화가.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자는 지중(止中), 호는 월담(月潭)이다. 공조 판서 윤국형(尹國馨)의 아들이고, 선비 화가 윤정립(尹貞立)이 동생이다. 윤의립(尹毅立)[1568~1643]은 조선 선조(宣祖)에서 인조(仁祖) 연간에 이르기까지 활동하였던 문신이자 화가였다. 1594년(선조 27)에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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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포함되었던 신라 때 한주(漢州)에 속한 군의 하나. 율진군은 본래 고구려 율목군(栗木郡)이었는데, 경덕왕이 개명하였으며, 영현은 곡양현(穀壤縣), 공암현(孔巖縣), 소성현이다. 율목군은 동사힐(冬斯肹)이라고도 하였다. 현재의 경기도 과천시이다. 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신문왕 5) 신라는 전국을 9주로 개편하였고 5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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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목소리나 악기를 박자, 가락, 음성 등과 조화시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한국 근현대 음악사의 측면에서 인천은 서양 음악 보급의 진원지인 교회가 최초로 건립된 곳이며, 우리나라에 서양 음악을 본격적·체계적으로 보급한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인 아펜젤러[H. G. Appenzeller, 1858~1902)]와 그의 아내, 언더우드[H. G. U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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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유(子由)이다. 고려 말의 학자 이색(李穡)의 13대손으로 참봉 이병철(李秉哲)의 아들이다. 이기중(李箕重)[1697~1761]은 조선 숙종(肅宗)에서 영조(英祖) 연간에 이르기까지 활동하였던 문신이다. 이희조(李喜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717년 사마시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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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은경(殷卿)이다. 종실 백피도정 이상(李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옥계 도정(玉溪都正) 이현동(李賢童)이고, 아버지는 이맹원(李孟元), 어머니는 윤종손(尹宗孫)의 딸이다. 이몽필(李夢弼)[1507~1562]은 조선 중종(中宗)에서 명종(明宗)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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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활동한,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출신의 문신. 본관이 인천(仁川)으며, 호는 오천(烏川). 평장사 이지저(李之氐)의 6대손이며, 전공판서(典工判書) 이심(李深)의 아들이다. 이문화(李文和)[1358~1414]는 1380년(우왕 6)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우정언(右正言), 우헌납(右獻納), 예문응교(藝文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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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했던 부평 이씨 출신의 문신. 자는 숙필(叔弼), 호는 철애(鐵厓)이며, 본관은 부평(富平)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형조 정랑 이계록(李繼祿), 할아버지는 이덕일(李德一), 아버지는 이홍재(李弘載)이다. 이세익(李世翊)[1626~1705]은 조선 인조(仁祖)에서 숙종(肅宗)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다. 어려서 집이 가난하였으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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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이 속했던 강화도에 살았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흥(明興),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사도 세자(思悼世子)의 서자이며 어머니는 숙빈(肅嬪) 임씨(林氏)이다. 조선 영조(英祖)에서 순조(純祖) 연간에 생존하였던 왕족인 이인(李䄄)[1755~1801]은 1764년(영조 40), 10세 때에 작호(爵號)를 받아 은언군(恩彦君)에 봉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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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로 활동했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경민(景敏)이다. 아버지는 이응형(李應亨), 아들은 이유중(李有中)이다. 이인(李訒)[?~?]은 조선 명종(明宗)에서 선조(宣祖)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다. 1552년(명종 7)에 문과 식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56년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으며, 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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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에서 태어난 문신.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순옹(順翁)이다. 효령 대군(孝寧大君)의 10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사민(李師閔), 할아버지는 이장형(李長馨)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주하(李柱夏)이다. 이형상(李衡祥)[1653~1733]은 1653년(효종 4)에 인천 죽수리 소암촌(仁川 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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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인천광역시 지역의 옛 이름. 인주(仁州)는 인천의 옛 이름으로, 고려 인종 때 어머니 순덕 왕후(順德王后)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과거 숙종 때 소성현(邵城縣)을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시킨 것을 다시 승격시킨 것이었다. 이후 인주라는 명칭은 이자연(李子淵)[1003~1061], 이자겸(李資謙)[?~1126] 등 고려 전기 외척으로서 세도를 휘두른 이른바 인주 이씨(仁州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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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산괴(山塊)의 동쪽 끝 비탈면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 유적. 인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문학 경기장역에서 하차하면 인천 문학 경기장[인천 월드컵 경기장]이 나오는데 주경기장이 바로 ‘도랑 모양’[구상(溝狀)]의 유구가 있던 터이다. 유적의 위치는 행정 구역상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 산5-1번지에 해당한다. 인천광역시의 미추홀구와 연수구의 경계를 이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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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편을 나눠 행해져 온 전통적인 활쏘기 시합.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행해져 온 전통적인 활쏘기 시합인 편사 놀이는 편을 어떻게 나누는가에 따라 사정(射亭)과 사정 간의 편사 또는 마을과 마을 간의 편사 등이 있다. 사정을 ‘활터’라 해서 사정과 사정 간의 편사를 터편사라고 부르고, 마을과 마을 간의 편사를 골편사[洞便射]라고 한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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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소재하는 인천 향교에서 선성(先聖)과 선사(先師)를 추모하기 위하여 봄·가을에 올리는 제례. 석전대제(釋奠大祭)는 성균관이나 향교의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文廟)에서 지내는 큰 제사로 예법과 음악이 존중되는 국가의 의례이다. ‘석전’이란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라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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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조선 시대 인천 부사 및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들의 선정비군. 선정비(善政碑)는 일명 송덕비(頌德碑), 유애비(遺愛碑)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관직에 있는 사람이 백성들에게 은혜와 교화를 끼쳤을 때 이를 기념하고 칭송하는 의미에서 세우는 비석을 말한다. 송덕비는 주로 관아 근처에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나 고개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마을 곳곳에 산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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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 구(區)는 서울특별시, 5대 광역시 및 인구 5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설치되는 하부 행정 구역으로, 국가가 위임한 사무를 처리하는 보통 행정 구역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도화동(道禾洞), 숭의동(崇義洞), 용현동(龍現洞), 학익동(鶴翼洞), 주안동(朱安洞), 관교동(官校洞), 문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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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행정 기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은 골목골목까지 행복한 미추홀구를 만들기 위해 '함께 누리는 복지 평등을 위한 같이 잘 사는 미추홀구', '주민 밀착형 행정을 위한 진짜 잘 사는 미추홀구',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다시 잘 사는 미추홀구', '주민과 소통하는 말이 통하는 미추홀구', '마을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더할 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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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지역의 지방 관아 또는 행정 구역 이름. 고려 시대 수주(水州)의 한 속현이었던 소성현은 인주 이씨가 왕실의 외척이 되면서 비로소 인주(仁州)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고려 말에 이르면 경원부(慶源府)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경원부는 1392년(공양왕 2)에 경기도를 확장하고 좌도와 우도로 도를 나눌 때, 양광도(楊廣道)에서 경기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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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고 있는 1899년에 편찬된 인천부의 읍지. 전통 시대 관찬 지리지의 편찬은 국가의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고 각 지역의 환경, 역사적 상황을 파악하여 원활한 통치 행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조선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를 시작으로 하여 중종 대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완성하였고, 영조 대에는 전국적으로 읍지를 총합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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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벌어진 조선과 일본의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1597년에 시작된 일본의 재침입을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당시 자신들의 연호를 따서 ‘분로쿠(文祿)·케이초(慶長)의 역(役)’이라 하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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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인천 소재 적산 공장에서 소유·관리권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각종 분쟁. 적산(敵産) 혹은 귀속 재산은 해방 때까지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갖고 있었던 기업체, 부동산, 유·무형의 동산과 주식 및 지분 등을 말하는 것으로, 1941년 말 현재 일본인 회사의 자본 비중이 91%나 될 정도로 조선 경제는 압도적으로 일본 자본이 지배하였다. 그러나 적산 공장은 원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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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우량의 영정. 정우량(鄭羽良)[1692~1754]은 조선 숙종(肅宗) 때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낸 정수기(鄭壽期)의 장남으로, 호는 학남(鶴南)이며 본관(本貫)은 영일(迎日)이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합격한 후 대사성, 좌승지, 이조 판서, 우의정을 역임했다. 그의 글씨로는 개성의 계성사비(啓聖祠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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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소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일. 소금은 인간의 생리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영양소를 공급하며, 식품의 부패를 방지하고, 음식 맛을 내는 대표적 조미료이다. 소금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소금을 생산·유통·소비하는 인간의 활동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소금 생산 방식은 해수(海水)로 소금을 생산하는 것이다. 바닷물에서 얻는 소금은 자염(煮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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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한 해의 액(厄)을 막기 위해 짚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 제웅은 추령(芻靈), 처용(處容)이라고도 한다. 정월 14일 초저녁에 짚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든 뒤에 그 머리 부분이나 허리 부분에 돈을 넣어 길가나 개천에 버려 한 해의 액을 막기 위해 쓰인다. 남녀의 나이가 나후직성(羅睺直星)[제웅직성이라고도 하며, 나이에 따라 그 해의 운수를 맡아보는 아홉 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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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 1392년 조선이 개국하였지만 아직은 전 시대인 고려 시대의 행정 제도를 정비하지 못하였다. 인천이라고 하는 지명은 조선이 개국하여 1413년(태종 13) 지방 행정 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질 때까지 등장하지 않으며, 인주(仁州)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군현제의 정비는 고려 시대 때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속현의 주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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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필사본 지도인 『조선 지도』 중 인천부가 포함된 경기도의 지도. 『조선 지도(朝鮮 地圖)』는 조선 영조 연간에 발간된 정상기(鄭尙驥)의 『동국지도(東國地圖)』 원본 계통의 필사본 지도이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소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의 또 다른 지도인 『좌해 분도(左海分圖)』와 원래 하나의 지도첩이었다가 분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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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인천도호부를 옛 제물진(濟物鎭)으로 옮기자는 유생 조익(趙翼)의 상소문. 조익은 조정익(趙廷翼)의 5대손이다. 조정익 부처(夫妻)는 강도(江都)[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순절(殉節)하였고, 고조(高祖) 할아버지 조유(趙猷)는 병자호란의 사무친 한을 안고 싸워서 지킬 방법과 미리 준비하여 막을 계획을 강구(講究)하였다. 조익은 집안에 전래하는 것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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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전하는 제운 이세주의 일화를 설화화한 이야기. 숙종(肅宗) 때의 교육자이며 효행이 지극한 인물로서, 제운(霽雲) 이세주(李世胄)[1626~1710]의 일생을 통해 귀감이 될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역사 자료관에서 펴낸 『옛날 옛적에 인천은』과 이규태의 『눈물의 한국학』에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전한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은 예로부터 제운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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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으로, 인간 문제의 궁극적 해결에 관련을 맺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신앙 행위를 말한다. 기존 종교의 개념에서는 교조․교리․의례․교단․신도 등이 체계적인 형식을 갖춘 것만을 종교로 인정했으나, 최근에는 민간에서 의례를 중심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도 넓은 의미의 종교로 포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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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단연 ‘물텀벙이’다. 용현 사거리에서 인하 대학교 방면으로 가는 초입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지정한 특색 음식 거리 용현동 ‘물텀벙이 거리’가 있다. 바다가 없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물텀벙이 거리가 있다는 게 의아한 일이기는 해도 물텀벙이는 한국 관광 공사가 추천하는 대표적인 지역 먹을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텀벙이’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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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 주안면 십정리, 현재의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에 있었던 천일 시험 염전 터. 기후 및 지리적으로 천일염 생산이 어려웠던 일본은 조선이 천일제염(天日製鹽)을 시행하기 좋은 지형과 지질, 기후 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1906년 대장성(大藏省)[재정, 통화, 금융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일본의 행정 기관]의 오우기시[奧技師]를 초빙하여 천일제염의 시험 장소를 물색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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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김정호(金正浩)에 의해 제작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부가 수록된 지도책.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의 『청구도(靑邱圖)』는 김정호가 전국 지도 제작 과정의 중간 단계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현전하는 것은 후대의 필사본이다. 김정호의 『청구요람(靑邱要覽)』에 실려 있는 ‘청구도 범례(靑邱圖凡例)’가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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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던, 개항 이후 인천에 들어와 거주했던 중국인들의 묘지 터. 의장지(義莊地)라고 불렸던 청국인 묘지는 1884년 3월 7일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한 인천구 화상지계 장정 조약(仁川口華商地界章程條約)에 의해 만들어졌다. 조약의 내용에는 청국인의 거주에 관한 규정이 있었다. 이 조항에는 “제물포와 10여 리 떨어진 지역 이내에 청국 상인들이 마음대로 좋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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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에 지내는 풍속. 음력 4월 8일을 초파일 또는 사월 초파일이라 하며, 석가탄신일·부처님 오신 날·불탄일(佛誕日)·석탄일(釋誕日)이라고도 한다. 이 날은 석가모니가 태어나 날이며, 불교에서 가장 큰 명절이다. 초파일에 모든 사찰에서는 축하 제례를 올리는 등 큰 행사를 치르며, 불교 신자[佛子]들은 사찰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저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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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여러 가지 그림이나 문자 따위를 넣어 끗수를 표시한 종이 조각을 가지고 노는 놀이. 투전 놀이는 오락이기보다는 어른들이 하는 도박에 가까운 우리나라의 실내 놀이이다. 놀이의 내용에 따라 80장을 다 쓰거나 줄여서 40장 또는 25장만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투전 놀이의 투전은 투전(投箋)이라고도 쓰는데, 이에 대한 기록으로는 조선 정조 때 학자 유득공(柳得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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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때 인천을 개항 지역으로 선정한 일본의 정치가 겸 외교관.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1842~1917]는 일본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오카야마[岡山)] 현에서 출생하였다. 1867년 해외 유학을 떠나 프랑스·영국·미국을 거쳐 1868년 귀국하였다. 1871년 9월 조선 대리 공사로 부임하였고, 1880년 변리 공사가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하나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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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일본 공사가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위치한 인천도호부 관아에 머물다가 병사들에게 습격당한 사건. 1882년 7월 19일 훈련도감(訓練都監) 군인들이 난을 일으켜 궁궐을 점령하고 일본공사관을 포위·공격한 사건을 임오군란이라고 한다. 임오군란의 직접적인 원인은 13개월이나 밀렸던 급료로 받은 쌀이 정량이 아닌데다가 대개는 물에 잠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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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에 행하는 풍속. 한식(寒食)은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며,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이다. 설,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4대 명절 중에서 유일하게 양력에 의해 행해지는 풍속이다. 한식은 고대 중국의 풍습으로 시작되어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명절이다. 이러한 이유로 금연일(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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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제작된, 인천부와 강도 그리고 부평부 지도가 포함된 조선의 각 도별 지도집. 총 8책으로 구성된 조선의 각 도별 군현 지도집이며, 「조선 전도」, 「도별도」, 「군현 지도」 외에 세계 지도인 「천하도」, 외국 지도인 「중국도」, 「황성도」, 「북경 궁궐도」, 「왜국 지도」, 「유구 지도」, 관방 지도(關防地圖)[군사용 지도]인 「요계 관방도(遼薊關防圖)」 등도 포함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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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는 인천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해 낸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향토지는 처음에는 향토사 개념으로 출발하여 그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서술하고 그 지역의 인물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방사를 하나의 독립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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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3월에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피리. 호드기는 음력 3월경 봄에 아이들이 물 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서 버드나무 껍질을 통째로 뽑아서 만들어 불던 피리를 말한다. 호디기 또는 버들피리라고도 한다.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민속 해설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3월의 풍속으로 “아이들이 버들가지를 꺾어서 피리를 만들어 분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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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별장을 지었던 미국 외교관 및 선교사. 호러스 알렌(Horace Newton Allen)[1858~1932]은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1881년 웨슬리 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883년 마이애미 의과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10월 북장로회 의료 선교사의 신분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1년간 활동하다가 1884년 9월 인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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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혼인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일련의 의례. 혼인(婚姻)의 혼(婚)은 원래 혼(昏)이다. 해가 진 저녁에 예를 치른다고 하여 어두울 ‘혼’ 자를 썼으며, 인(姻)은 여자가 사람으로[남자로] 말미암아 성례(成禮)[혼인의 예식을 지냄]한다는 뜻이다. 저녁에 성례를 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주나라 때이며, 양인 남자가 음을 맞이하는 것이라 밤에 거행한 것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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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었던 인천의 독립운동가 홍진(洪震)의 묘비. 홍진 묘표라고도 한다. 만오(晩悟) 홍진[1877~1946]은 충청북도 영동군 태생으로 대한제국 시절 한성 평리원 검사, 충청 검찰청 검사를 역임하고 3·1 운동 후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 정부 법무 총장, 내무 총장, 의정원 의장, 국무령을 역임하였다. 또한 1928년 김구(金九)[1876~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