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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05
한자 社稷壇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26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배성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제단 터
건립 시기/일시 1406년연표보기 - 사직단 건립
소재지 사직단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26지도보기

[정의]

조선 시대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에서 토지와 곡식을 맡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 터.

[개설]

사직단(社稷壇)은 종묘(宗廟)와 함께 나라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조선의 사직단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에 있는 사직단은 국가에서 건립한 것으로 1394년(태조 2) 현재의 자리에 세운 것이다. 규모는 단을 2개로 만들어 사단(社壇)[토신(土神)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은 동쪽에, 직단(稷壇)[곡신(穀神)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은 서쪽에 배치하였다. 사단에는 국사(國社)의 신위를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봉안하고 후토신(后土神)을 배향시켰으며, 직단에는 국직(國稷)의 신위를 봉안하고 후직(后稷)의 신을 배향시켰다.

[변천]

인천광역시의 사직단은 1406년(태종 6) 지방 군현에까지 사직 제도가 보급되면서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이는데 ‘좌묘우사(左廟右社)’의 기본 원칙에 입각하여 관아의 서쪽에 단을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조선 시대 인천의 지지(地誌) 자료에 사직단은 인천도호부 서쪽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1949년 인천 시립 박물관의 조사에서 사직단의 기초로 보이는 반석(盤石)[넓고 평평한 큰 돌]을 확인하였으며, 1965년 간행된 『문학산』에 그 사진이 전하고 있다.

[위치]

사직단 터는 조선 시대 도차니 고개라 불리던 곳으로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관교동을 연결하는 지하 차도 위에서 문학산 터널로 향하는 도로 부근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일대로 추정된다.

[현황]

1965년까지 남아 있던 사직단의 반석은 도로 건설 공사로 인해 없어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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