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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진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352
한자 栗津郡
이칭/별칭 율목군(栗木郡),동사힐(冬斯肹)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이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고려 초 - 율진군을 과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고려 현종 - 과주를 광주의 속군으로 삼음
개정 시기/일시 조선 태종 - 과주를 과천현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1414년연표보기 - 과천현을 금천과 합쳐 금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1895년연표보기 - 금과를 과천군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과천군을 과천시로 개칭

[정의]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포함되었던 신라 때 한주(漢州)에 속한 군의 하나.

[개설]

율진군은 본래 고구려 율목군(栗木郡)이었는데, 경덕왕이 개명하였으며, 영현은 곡양현(穀壤縣), 공암현(孔巖縣), 소성현이다. 율목군은 동사힐(冬斯肹)이라고도 하였다. 현재의 경기도 과천시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신문왕 5) 신라는 전국을 9주로 개편하였고 5소경(小京)을 정비하였다. 신문왕의 지방 제도 개편 당시 인천 지역은 한산주(漢山州)에 속하였는데, 한산주 관내에 1소경·27군·46현이 있었다.

경덕왕은 즉위 이후 진골 귀족 세력을 제압하고 전제 왕권 확립을 위하여 한화(漢化)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 일환으로 관제를 정비함과 동시에 757년(경덕왕 16) 전국의 지명을 한자화하였다. 이때 한산주한주로 개명하고 한주에 속한 각 군현의 지명도 모두 한자식으로 개명하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5, 잡지 4, 지리 2, 한주 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율진군은 본래 고구려의 율목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과주(菓州)이다. 영현이 셋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8, 경기, 과천현(果川縣) 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본래 고구려의 율목군인데(하나는 동사힐이라고도 한다) 신라 경덕왕이 율진군으로 고쳤고, 고려 초년에 과주(果州)로 고쳤으며, 현종 9년에 광주(廣州)에 예속시켰고,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본조 태종 13년에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예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삼았으며, 14년에 금천(衿川)과 병합하여 금과(衿果)라고 일컬었다가 두어 달 뒤에 파하였다. 세조 때에 금천으로 와서 현에 합하였다가 얼마 안 되어 각각 복구하였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6, 여지고 4, 군현 연혁 2, 경기, 과천군 조에는 “태종 14년 금천과 합하여 금과라 이름 하였다가 몇 달 만에 파하고, 세조 때에 또 금천과 합하였다가 얼마 안 되어 각각 복구하고, 고종 32년에는 군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율진군은 고려 초에 과주로 개명되었고, 현종(顯宗)이 광주(廣州)의 속군(屬郡)으로 삼았다. 조선 태종이 과천현으로 고쳤으며, 1414년(태종 14) 금천과 합하여 금과라 하였다가 몇 달 만에 취소하였으며, 세조 역시 금천과 합하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1895년(고종 32) 행정 구역 개편으로 인천부 관할 과천군이 되었으며, 1986년 과천시로 승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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