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220
한자 建築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금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축물 천도교 인천 교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3동 104호 11/2지도보기
건축물 만인 액자 전문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80 3호
건축물 대성 산업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776 2호지도보기
건축물 은혜 교회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5동
건축물 충남 목공소 외 업무 시설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24 37호
건축물 숭의동42번지 일대 집합 주택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42 145 일대
건축물 숭의동 168번지 일대 집합 주택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8-22호 일대
건축물 숭의동 166번지 일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6 31호
건축물 용현동 463 주택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463 48호
건축물 용현동415 창고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415-24호지도보기
건축물 용현동 475 주택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475 42-49, 488 일대지도보기
건축물 보성 스틸 외 공장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510
건축물 학익동 15-12 주택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15 12호
건축물 인천 향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117지도보기
건축물 인천도호부 관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282-2지도보기
건축물 문학동 376-4 주택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376-4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이나 구조물을 세우거나 설계하고 만드는 기술이나 건축물.

[개설]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은 모더니즘으로서의 근대 건축이 아니라, 개항 이후에 유입된 서양식 건축 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외래 건축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 유입된 근대 건축은 주로 개항장인 부산, 원산, 인천에서 이루어졌다. 부산과 원산이 주로 일본식이나 일본 의양풍(儀洋風) 건축물로 세워진데 반해, 인천은 일본인 외에도 서양인과 중국인이 자국 양식의 건축물을 세움으로써 기존의 건축 양식과 새로운 다양한 건축 양식이 반복되면서 건축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인천에서는 개항 이후 약 20여 년간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외래 건축물이 세워졌으며, 서울은 1905년 경인 철도가 건설되면서 근대 건축물이 건축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시발지이자 중심지는 인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인천의 건축 양식은 다국적이고 입체적인 건축 문화가 형성되어 갔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다. 그 후, 급속한 도시 발전으로 인천의 도시 개발과 도로 정비가 진행됨에 따라 도시의 건축물도 급속히 변화되었다.

[인천의 건축 양식]

개항 당시의 인천은 외래문화 수입의 관문이었기 때문에 근대 건축에서도 인천 고유의 문화와 이질 문화가 서로 대립되고 융합되면서 교합적 문화 생성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인천은 기존의 토착 문화 간의 융합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래의 근대 문물이 흡수되면서 혼재된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인천의 다양한 건축 양식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잡종성의 도시 건축 문화는 또 다른 고유한 장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천의 분포되어 있는 건축 양식은 과거 양식의 절충을 통하여 새로운 양식의 창조를 시도한 절충주의 건축, 목조를 사용하여 서양 양식을 모방한 일본식과 서양식 건축의 절충된 양식 ‘화양(和洋) 절충식’, 한국 전통 주택의 구조체를 유지하고 벽체를 벽돌로 개조한 한양(韓洋) 절충 양식, 팔라디언 양식과 조지언 양식, 영국 식민지식[매판 자본식] 외랑 건축 양식, 북유럽 게르만 문화권의 주택 양식, 영국의 신고전주의 건축, 일본 전통 도시 주택, 한국 건축가들의 문화 주택 등 다양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건축]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서울을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가 통과하고 있으며, 개항 전에는 제물포를 중심으로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고 인천도호부도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항기를 맞아 인천의 중심지가 조계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은 교외 지역이 되었다.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근대 건축물과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유하고 있는 건축물로 공장과 창고, 소규모 건축들이 남아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천도교 인천 교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3동 104호 11통 2반 소재지의 건축물로 1959년 9월 28일 건립되었다. 과거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준공하여 천도교 종교 집회장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의 앞부분을 시멘트 블록 구조로 증축하여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2. 만인 액자 전문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80번지 3호 소재지의 건축물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다. 만인 액자 전문점은 2호 연립 주택의 전면을 벽돌로 보강하고 경사 지붕을 가려서 평슬래브 집으로 보이게 하였다. 외부 마감을 돌 붙임으로 치장하여 2종의 서로 다른 형태를 사용하여 치장 무늬가 특이하고 상부의 아치형 창문은 사각 창문으로 개조하였다.

3. 대성 산업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776번지 2호의 건축물로, 1975년 4월 2일 건립되었으나 기존에 남아 있던 벽의 건물은 더 이전으로 보인다. 이 건축물은 창고 지대의 건축물을 공장으로 활용한 예로, 뒤쪽의 창고 건물을 신축하여 연결하여 사용하였다.

4. 은혜 교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5동 소재지의 건축물로 1962년 5월 30일 건축되었다. 은혜 교회는 개신교 교회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돌 쌓기로 외부 마감을 하고, 전면 탑 부분에 첨탑을 두지 않고 탑신의 상부에 배틀먼트를 설치하였으며, 탑의 앞면에 십자가를 넣은 건축물이다.

5. 충남 목공소 외 업무 시설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24번지 37호 소재지의 건축물들로 건축 연대는 미상이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일제 강점기에 설정된 필지에 조적조 2층 업무 시설을 건설하였다가 후에 산발적으로 증축 및 개축을 하였으며, 주변의 상가 건물도 유사한 방법으로 증축되었다.

6. 숭의동 42번지 일대 집합 주택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42번지 145호 외 일대의 건축물들은 일본식 나가야[長屋][일본식 연립 주택 또는 다세대 주택의 일종으로, 여러 세대가 나란히 이어져 있으면서 외벽을 공유하는 건물, 또는 긴 하나의 건물을 수평으로 구분하여 각각에 출입문을 만든 형식의 주택을 말한다.]가 많으며 주변 공장 지대의 종업원의 주거 시설로 보인다. 중국 남방 계열의 주택으로 2가구가 주거했으며 주변에 공장과 관사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장 근로자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7. 숭의동 168번지 일대 집합 주택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8번지 22호 외 일대의 건축물들로 1930년대 대동아 전쟁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는 집합 주택이 상당수 남아 있으며, 조선 알미늄의 사택으로 사용되었다는 증언이 채집되었다. 건축물은 일식 주택으로 바닥의 다다미를 나무 마루로 개조한 것 외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주변에 비슷한 연대의 사택과 중국식 주택, 한옥이 남아 있다.

8. 숭의동 166번지 일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6번지 31호 일대의 건축물들은 구조 형식으로 보아 해방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1960년대 건설을 시작하여 상업 건축들이 모여 있으며, 무속인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상주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9. 용현동 463 주택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463번지 48호의 건축물로 건축연대는 알 수가 없다. 주택의 앞쪽은 점포, 뒤쪽은 주택인 점포 주택으로 증축 및 개축으로 원형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광복 이후 부족한 주택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공동 주거의 형태로 보인다.

10. 용현동 415 창고(미추홀구-10)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415-24호의 건축물로 건축 연대는 미상이다. 이 창고는 일본의 전통적 창고로 일본인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인이 들여온 건축 수법 중 하나인 진흙을 다져서 벽과 구조물을 만드는 쿠라[창고] 만들기로 축조하였다.

11. 용현동 475 주택군

인천광역시 용현동 475번지, 488번지 일대의 주택군으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해방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근처의 공장 지대에 근무하던 일본인의 사택이 있던 지역으로 10여 채가 원형대로 남아 있고, 비슷한 규모와 형태의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것이 특징이다.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규모 사택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2. 보성 스틸 외 공장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510번지의 건축물로 원 건축명은 무릉 섬유 및 섬릉 전기이며, 해방 이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개수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섬유 공장과 모터 공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13. 학익동 15-12 주택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15번지 12호의 주택으로 1963년 건축되었다. 해방 이전에 근처의 인천 소년 교도소에 근무하던 일본인의 관사로 보이며 거의 원형이 보전되어 있다. 건축 양식은 일본인들이 네덜란드 주택의 영향을 받아 지은 화란식 주택의 일종으로 내부에 복도가 있고, 좌우에 방과 주방, 욕실, 화장실 등이 나누어져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4. 인천 향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117번지에 있는 인천 향교는 조선 세조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천 향교는 대성전, 동·서 양무[한국과 중국의 성현 위패를 모심], 동재, 서재, 명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15. 인천도호부 관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282-2의 건축물은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천도호부 관아는 1950년 문학 초등학교 건축을 위해 원래의 자리에서 이축되었으며, 개항 이전 시기의 이 지역 모습을 추측하는 데 단서를 제공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16. 문학동 376-4 주택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376-4번지의 건축물로 1910년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큰 규모의 한옥 목조 주택으로 유리문이 채용되면서 대청마루가 실내 공간화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료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10.11 문화재 명칭 변경으로 인한 현행화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도호부 관아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