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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671
한자 天日試驗鹽田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배성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염전 터
건립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 천일 염전 시험장 조성
폐지 시기/일시 1909년 2월연표보기 - 천일 염전 시험장 폐지
소재지 천일 시험 염전 터 -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 558-7

[정의]

인천부 주안면 십정리, 현재의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에 있었던 천일 시험 염전 터.

[개설]

기후 및 지리적으로 천일염 생산이 어려웠던 일본은 조선이 천일제염(天日製鹽)을 시행하기 좋은 지형과 지질, 기후 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1906년 대장성(大藏省)[재정, 통화, 금융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일본의 행정 기관]의 오우기시[奧技師]를 초빙하여 천일제염의 시험 장소를 물색하였다. 1907년 인천부 주안면 십정리에 약 9,917㎡[1정보]의 천일 염전 시험장을 조성하였다.

이렇게 해서 설치된 염업 시험장은 농상공부 대신의 관리에 속하였으며, 소관 업무는 ‘염업의 개량, 발전에 관련된 조사와 시험’이었다. 당시 직원으로는 염업 시험장장 외에 기사 3명 기수 15명, 서기 10명 등을 두었다.

이 염업 시험소는 1909년 2월 폐지될 때까지 천일 염업이 주안 간석지에 적합한지 등을 시험하였고, 그 결과 1919년까지 주안 갯골을 따라 모두 8개 지구의 염전을 조성하였다.

[위치]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동 홈플러스 간석점 뒤편 6공단 입구 환경 업체에 천일 시험 염전 터가 있었다.

[현황]

천일 시험 염전 터를 포함하여 당시 건설된 주안 염전은 1968년 수출 공단 조성 사업으로 모두 매립되어 공단 지대가 되었으며, 현재 천일 시험 염전 터에는 낮은 표지석만 건립되어 있을 뿐이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인 주안 염전을 건설하기 위한 시험 염전 터로 이전까지 바닷물을 졸여서 소금을 만드는 자염(煮鹽)에 의존했던 우리나라의 소금 생산 방식을 천일염에 의한 대량 생산 방식으로 변모시킨 의의를 갖는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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