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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680
이칭/별칭 안연(安連)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상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외교관|선교사|의사
성별
대표경력 제중원 원장|주한 미국 공사
출생 시기/일시 1858년 4월 23일연표보기 - 호러스 알렌 출생
수학 시기/일시 1881년 - 호러스 알렌 웨슬리 대학 신학부 졸업
수학 시기/일시 1883년 - 호러스 알렌 마이애미 의과 대학 졸업
활동 시기/일시 1885년 3월 12일연표보기 - 호러스 알렌 제중원 원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887년 9월 - 호러스 알렌 제중원 원장 퇴임
활동 시기/일시 1901년 10월 1일 - 호러스 알렌 주한 미국 공사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05년 6월 9일 - 호러스 알렌 주한 미국 공사 퇴임
몰년 시기/일시 1932년 12월 11일연표보기 - 호러스 알렌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4년 - 호러스 알렌 훈1등 및 태극 대수장 수상
출생지 호러슬 알렌 출생지 - 미국 오하이오
거주|이주지 호러스 알렌 이주지 - 서울
학교|수학지 웨슬리 대학 - 미국 매사추세츠 주
학교|수학지 마이애미 의과 대학 - 미국 마이애미 주
활동지 호러스 알렌 활동지 - 서울
묘소 호러스 알렌 묘소 - 미국 오하이오

[정의]

개항기 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별장을 지었던 미국 외교관 및 선교사.

[활동 사항]

호러스 알렌(Horace Newton Allen)[1858~1932]은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1881년 웨슬리 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883년 마이애미 의과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10월 북장로회 의료 선교사의 신분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1년간 활동하다가 1884년 9월 인천을 거쳐 서울에 상주하는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되었다.

갑신정변 당시 민영익(閔泳翊)을 치료한 것이 계기가 되어 1885년(고종 22) 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학 의료 기관인 왕립 광혜원(王立廣惠院)을 설립한 알렌은 3월 12일 제중원(濟衆院)으로 명칭을 바꾸고 초대 원장이 되었다. 알렌의 명성이 높아져 하루에 최고 260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였으나 1887년에 미국 전권 대사 박정양(朴定陽)의 수행원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1890년에 주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으로 다시 내한한 호러스 알렌은 외교관으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1897년에는 주한 미국 공사 겸 서울 주재 총영사를 역임하였다. 외교관으로서 호러스 알렌은 제국주의 미국의 경제 침탈을 돕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호러스 알렌은 1895년에는 운산 광산(雲山鑛山)의 채굴권, 1896년에는 경인 철도(京仁鐵道) 부설권을 모스에게 주선하였다. 1897년에는 전차 및 전등 등의 선치권을 미국에 넘겨주는 한편, 우리나라 하와이 이민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호러스 알렌은 1901년부터 1905년까지 미국 공사로 활동하였는데, 1902년 3월 직접 미국 하와이를 찾아 사탕수수 재배자 협회와 한인 노동자의 이민 문제에 대해 협의를 하고 이의 실행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편 호러스 알렌은 우각현(牛角峴),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07번지에 별장을 지었다. 이곳은 나지막한 산 정상이기에 청명하고 시원하여 여름휴가를 보내기에 적당하였다고 전하며, 사람들은 이 지역을 알렌 골짜기[Allendale]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별장은 흰색 2층 서양식 건물로 한 모퉁이를 둥근 탑으로 쌓아 올려 작은 돔의 형식이었다. 건축 면적은 1층 157.9㎡, 2층 44.3㎡로 총 202.2㎡이며, 이 외에 30.6㎡의 관리인 주택과 29.8㎡의 창고 등 2개의 부속 건물이 있었다.

호러스 알렌은 1905년 일본과 미국 간의 비밀 협약인 ‘가쓰라-태프트 조약’에 반대하다가 미국 정부에 의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가쓰라-태프트 조약은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묵인하는 대신 미국은 일본의 조선 통치를 승인하는 약속이다. 알렌은 일본 세력의 저지를 주장했으나 루즈벨트 대통령은 러시아의 견제를 위해 일본을 이용하고자 하였다. 그 후 호러스 알렌은 의사 생활을 하다가 1932년 12월 11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알렌은 1892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 잡지인 『The Korean Repository』를 창간하였으며, 1900년에는 영국 왕립 아시아 학회 한국 지부를 결성하는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저서로는 『Korean Tales』, 『Things Korean』, 『The Awakening of Korea』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호러스 알렌은 1904년 고종으로부터 훈일등(勳一等) 및 태극 대수장(太極大綬章)을 수여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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