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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227
한자 文化藝術敎育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금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2년 - 인천 교육 대학에 문화 예술 교육으로서 무용반 창설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2년 - 문화 예술 교육 예총 경기도 지부 중·고등학생 촬영 대회 개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 인천 남구 지역 문화 예술 교육지원 센터 지정
협회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 인천 지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수봉안길 78[숭의동 7-5]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이루어지는 무용, 미술, 연극, 사진, 영화, 음악 등 문화 예술 분야의 교육 활동.

[개설]

근대식 학교의 설립과 교육 제도의 개편에 의해 전시대와는 다른 인간을 양성하게 되었는데, 특히 학교와 극장은 근대식 문화 예술을 양산하고 보급하는 수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1950년대 인천 문화 예술에서 두드러진 점은 학생들의 참여이다. 서울로 떠난 문화 예술인들로 주춤했던 인천에서는 학생들이 매년 실시되는 학생 예술제에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총 1,700여 명이 참가하는 높은 호응을 얻었고, 고등학교 미술 전시회는 큰 성과를 얻는 등 음악과 미술 분야는 경연 대회와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였다.

최근 인천의 문화 예술 교육은 대학교를 시작으로 각 지역의 문화원에서도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초기의 문화 예술 교육이 인천광역시 중구 지역의 개항장 중심이었기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관한 문화 예술 교육의 근거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다음은 초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화 예술 교육을 분야별로 정리한 내용이다.

[무용 교육]

1895년에 한국에서 신학교(新學校) 체제의 학교들이 설립된 이래, 1906년에 보통학교령이 공표되고, 1908년에 고등 여학교령에서 체제 교과에 유희를 포함시켜 공교육에 춤 교육이 시작되었고, 1914년에 학교에서 독립된 유희 교과를 가르치도록 하였다. 인천에서는 1892년에 개교한 영화 여자 보통학교[영화 초등학교의 전신], 1900년에 개교한 박문 (보통)학교[인천 박문 초등학교의 전신], 1907년에 개교한 인천 공립 보통학교[창영 초등학교의 전신]에서 율동과 유희를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학교 교과 내에서 유희와 무용이 존속하였으므로 인천에서 율동 형식의 무용 교육이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인천에서는 초중등학교에서 무용 전문 교육을 전국 최초로 단행하였으며, 1960년대에도 아동 및 초중등학교 무용 전문 교육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이후에 다수의 사설 무용 학원이 운영되어 춤 인구와 작품 창작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였다. 또한 1962년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던 인천 교육 대학[현재 경인 교육 대학]이 무용반을 창설하였고, 1972년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던 인천 전문대학에 무용과가 설치되었다.

[미술 교육]

근대 초기 인천의 미술 교육은 1910년 전후, 당시 인천부 창영동에 취헌(醉軒) 김병훈[1863~ 1939]이 가르치던 글방 의성 사숙(意誠私塾)에서 이루어졌다. 의성 사숙에서는 한문을 비롯한 사군자와 산수 풍경의 동양화를 가르쳤으며, 문하생으로 서화가 조벽가와 박정자, 정규성, 김종택, 최봉래 등이 있었다. 일제 식민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인천에서는 인천 공립 상업학교[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는 인천 고등학교의 전신]에서 1923년 도화·습지를 담당하기 위해 취임한 일본인 핫토리 에이이치[服部英一]가 미술을 처음 가르쳤으며, 1937년 개교 25주년을 맞이하여 교내 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음악 교육]

학교 설립과 함께 기독교 계열의 사립학교에서 가르친 창가는 주로 찬송가를 번역하거나 외국 민요를 가사만 바꾸어 부르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음악 교육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여중·영화 70년사』에서는 “음악을 그때는 창가라고 하였는데 주로 찬미가를 번역하여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송(宋)수산나, 한(韓)데이세 교사들이 풍금을 치면서 가르쳤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천의 경우, 음악 활동이 교회 이외의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20년 전후의 일이다. 특히, 1945년 10월 ‘조선 음악가 협회’가 결성되고 인천 시립 예술관에서 자주 연주회가 열렸으며, 학생들의 음악 동호회의 음악회와 학교별 연주회가 때때로 개최된 것으로 보아 당시 인천 지역에서 다수의 학교가 음악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사진 교육]

학교 교육 차원에서의 사진 교육의 상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1962년에 예총 경기도 지부 중·고등학생 촬영 대회 개최가 개최되었고, 촬영 대회에 학생 부문이 개설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의 동호회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학산 문화원을 중심으로 한 최근의 문화 예술 교육 경향]

이와 같이 문화 예술 교육에 있어서 무용, 음악, 미술 관련 교육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반해 연극, 영화, 사진 관련 교육은 거의 전무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에는 각 지역에서 지역 문화 예술 교육을 지원하는 거점을 마련하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미추홀 학산 문화원이 운영하고 있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미추홀구 지역 문화 예술 교육 지원 센터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 사회와 연계하는 문화 예술 교육 사업으로 출발하였다. 이 사업은 2007년부터 지역 문화 예술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문화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발굴하여 현장과 밀착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였으며, 지역 문화 예술 교육의 역량과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 문화 예술 교육의 기반이 조성되도록 지원하였다. 미추홀 학산 문화원은 문화 예술 교육 지원 센터를 통해 크게 네 가지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먼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학교 및 단체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문화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 아동 센터를 대상으로 ‘통합 문화 예술 교육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교사 모임 등의 연구 활동 및 문화 예술 동아리 육성 활동 등 자발적인 ‘문화 예술 교육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역 문화 예술 교육 기반 조성 및 활성화를 위한 사업으로 지역 문화 예술 교육 지원 센터와 연계하여 실행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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