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태어난 정치인. 조선 개국 공신이며, 사패지(賜牌地)[임금이 내려 준 논밭]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인 여의실(如意室)[속칭 여우실]과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남동 소방서 일대인 물우산(勿右山)을 받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다. 초대 인천시 교육 위원을 지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거주했던 인천 초대 직선 시장. 인천 최초의 직선 시장을 한 법조인 출신 정치인으로, 행정 일선에서 민주 질서를 지키는 데 솔선수범하였고, 국회의원을 지냈다. 성균관 주사를 지낸 김동일(金東一)과 어머니 김해 김씨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묵헌(默軒),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초명은 영복(永卜)인데, 정렬(正烈)로 개명했다. 1907년 10...
개항기 때 인천을 개항 지역으로 선정한 일본의 정치가 겸 외교관.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1842~1917]는 일본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오카야마[岡山)] 현에서 출생하였다. 1867년 해외 유학을 떠나 프랑스·영국·미국을 거쳐 1868년 귀국하였다. 1871년 9월 조선 대리 공사로 부임하였고, 1880년 변리 공사가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하나부사...
인천광역시의 상공업계나 정치계, 사회계에서 활약한 인물. 내리 교회 창설 요원인 아버지 하운기와 어머니 배 씨 슬하에서 태어났다. 김동자와 결혼하여 3남 4녀를 두었는데,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3남 하예용이 6·25 전쟁 때 실종되었는데 하예용의 아들 하달웅이 20여 년 동안 하상훈 슬하에서 자랐다고 한다. 하상훈(河相勳)[1881~1964]은 영화 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2...
개항기 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별장을 지었던 미국 외교관 및 선교사. 호러스 알렌(Horace Newton Allen)[1858~1932]은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1881년 웨슬리 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883년 마이애미 의과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10월 북장로회 의료 선교사의 신분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1년간 활동하다가 1884년 9월 인천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태어난 사업가이자 교육가. 김경하(金敬夏)[1911~1967]는 조선 개국 공신이며, 사패지(賜牌地)[임금이 내려 준 논밭]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인 여의실(如意室)[속칭 여우실]과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남동 소방서 일대인 물우산(勿右山)을 받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계림군(鷄林君) 김균(...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위치한 송암 미술관의 설립자 겸 OCI 그룹의 창업자.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박화실과 결혼하여 OCI[옛 동양 제철 화학] 대표 이사 이수영, 삼광 유리 대표 이사 이복영, 유니드 대표 이사 이화영을 비롯하여, 3남 3녀를 두었다. 이회림(李會林)[1917~2007]은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1937년 건복 상회를 설립하였고, 1951년 개풍 상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활동한 언론인.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다. 김응태(金應泰)[1921~1995]는 1921년 7월 23일에 태어나 인천 영화 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그 후 2년이 지나서야 인천 공립 상업 보습 학교[현 인천 남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졸업 후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인천 우체국에서 우편 서기보로 근무했으며, 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