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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교동 토성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03
한자 官校洞土城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27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성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성지
소유자 인천광역시
관리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 관교동 토성 터 인천 시립 박물관에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관교동 토성 터 서울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소재지 관교동 토성 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273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마근대미 고개 주변에 있었던 토성 터.

[개설]

1949년 인천시립 박물관에서 조사한 문학 방면 고적 조사에서 처음 확인된 유적으로 당시의 자료를 인용하면 “주안 중앙 도자기 회사 채토장 위 산턱 일대는 ‘마근대미’라고 불리고 있다. 이것은 조선 시대 토성이었던 곳으로 이곳이 북방 요새였던 것이다. 지금은 토벽이 붕괴되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인천 시립 박물관에서 1956년에 간행한 『향토 인천의 안내』에서는 그 말미에 “또한 이 토성의 축조 연대에 있어서도 상고할 바 없으나 광주의 풍납리 토성과 같이 좀 더 오랜 역사를 가졌는지도 모른다.”라고 하여 그 축조 연대를 삼국 시대 백제 초기까지 추정하고 있다. 1990년에 서울 대학교 박물관에서 제2 경인 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지표 조사를 실시하면서 유희강(柳熙綱)의 설을 바탕으로 조금 더 나아가 ‘마근대미’라는 전래 지명을 ‘막은대미’의 음역이라 하며 말 그대로 승기천을 막아 관개하던 보(洑)가 있던 곳이고, 비류의 유적일 가능성까지 제기하였다.

[변천]

1980년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토성 터 주변으로 주안 쌍용 아파트를 비롯한 아파트 단지와 주거지가 조성되면서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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