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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 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345
한자 鐵器時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이세호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철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어 쓴 시대.

[개설]

고고학에서의 시대 구분은 19세기 덴마크 국립 박물관의 C. J. 톰센[1788~1865]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1836년에 간행된 덴마크 국립 박물관 안내 책자에서 무기와 도구를 만드는 데에 사용된 도구에 따라 돌, 청동, 철의 순서로 계승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후 그의 제자인 V. 보르사에[1821~1885]가 층위적인 발굴을 통해 이를 보완하면서 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철기 시대 등으로 나누는 3시대법이 완성되었다. 우리나라 고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 전후 시기까지를 초기 철기 시대, 기원 전후부터 서기 300년까지를 원삼국 시대(原三國 時代)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를 합쳐 철기 시대로 부르기도 한다.

철기 시대 전기는 두 시기로 구분되어 왔다. Ⅰ기는 Ⅰ식 좁은 놋단검[한국식 동검], 고운 무늬식 잔무늬 거울, 동도끼[구리도끼], 동꺾창[두 갈래 날로 된 구리창], 동모[구리창], 동끌[구리 끌] 등의 청동기류와 철부[쇠도끼]를 비롯한 주조[재료를 열로 녹이고 틀에 부어 물건을 만드는 방법] 철제 농·공류, 그리고 단면 원형의 덧띠 토기와 700~850℃ 사이에서 구워진 경질 민무늬 토기를 특색으로 한다. Ⅱ기는 Ⅱ식 좁은 놋단검과 단조[쇠붙이를 두들기거나 눌러서 모양로 만드는 방법] 철기가 등장하고, 잔무늬 거울 대신 말이나 마차에 쓰이는 연장이 무덤에 함께 묻히고, 덧띠 토기의 단면 형태는 삼각형으로 바뀐다. 다음으로 철기 시대 후기는 기원 전후부터 서기 300년까지를 가리키는데, 이는 초기 삼국 시대에 해당한다.

[현황]

인천 지역에 역사 시대의 유적으로는 백제와 연관된 유적이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발굴·조사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토기·기와의 겸업 가마가 조사된 불로동 유적, 한강 유역에서 최초로 주술 도구가 확인된 동양동 유적 등이 있다. 인천 지역의 검단, 동양동, 불로동, 원당동 등지에서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유적 등이 발굴되고 있는데,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이 지역은 철기 시대에도 주요 거주지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인천의 남부 지역은 인천광역시 중구 운남동에 있는 운서 초등학교 동편 유물 산포지, 반길안 유물 산포지, 석곽묘 유적,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에 있는 옛 영종진 터,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에 있는 유물 산포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인천 월드컵 경기장 부지 등에서 두드림무늬 토기가 수습되었다. 두드림무늬 토기는 철기의 보급과 더불어 새로이 등장하는데, 이는 종래의 ‘김해식 토기’를 대체한 명칭이다. 전국계 토지 생산 체제의 영향으로 새로운 토기 제작 기술이 토기 생산에 채용되는데, 두들개에 의한 두드림무늬의 새김과 회전판의 사용, 굴가마의 채용 등이 특징이다.

또한 영종도 송산 유적에 형성된 문화층은 3개 층인데, 표토층인 1층은 초기 철기에서 고려 시대층이다. 이외에도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동 머그미 석곽묘,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학동 석곽묘군은 초기 철기 시대 분묘로 구분된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문학산 주변에서 신석기 시대 유물과 청동기 시대 지석묘 등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철기 시대에도 문학산 주변이 생활 근거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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