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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94
한자 許篈
이칭/별칭 미숙(美叔),하곡(荷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오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양천(陽川)
대표관직 이조 좌랑|홍문관 교리
출생 시기/일시 1551년연표보기 - 허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68년 - 허봉 생원시 장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72년 - 허봉 친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74년 - 허봉 「하곡조천기」 저술
활동 시기/일시 1577년연표보기 - 허봉 홍문관 교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83년연표보기 - 허봉 종성으로 유배
몰년 시기/일시 1588년연표보기 - 허봉 사망
유배|이배지 허봉 유배지 - 함경도 종성군
유배|이배지 허봉 유배지 - 함경도 갑산군
묘소|단소 허봉 묘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사망지 허봉 사망지 - 강원도 김화군 생창역

[정의]

첩 이조이가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열녀 편에 등재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이 양천(陽川)이며, 자는 미숙(美叔)이고, 호는 하곡(荷谷)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허엽(許曄)이고, 할아버지는 허한(許澣)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허담(許聃)이다. 어머니는 둘째 부인인 강릉 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 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형(異腹兄)인 허성(許筬)이 있으며, 동생으로 허균(許筠)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활동 사항]

허봉(許篈)[1551~1588년]은 1568년(선조 1)에 증광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하고, 1572년(선조 5)에는 친시 문과(親試文科)에서는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조선 시대에 유능한 젊은 문신들을 뽑아 휴가를 주어 독서당에서 공부하게 하던 일인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허봉은 1574년(선조 7)에는 조선 시대에 중국 황제나 황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절인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외국에 보내는 사신 가운데 기록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으로 자청하여 명나라에 가서 기행문 「하곡조천기(荷谷朝天記)」를 썼다. 귀국 후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이조 좌랑(吏朝佐郞), 홍문관 응교(應敎) 등을 거쳐, 함경도 어사(御使)와 원접사(遠接使)[중국의 사신을 맞아들이던 임시 벼슬] 이이(李珥)의 종사관(從事官)을 지냈다.

허봉은 1575년(선조 8) 이조 좌랑으로 있을 때 정쟁 조정 사건인 을해 당론(乙亥黨論)이 일어나자 김효원(金孝元) 등과 동인(東人)의 선봉이 되어 심의겸(沈義謙) 등 서인(西人)과 대립했다. 1577년(선조 10)에 홍문관 교리(校理)가 되었다.

허봉은 1583년(선조 16)에는 송응개(宋應漑)·박근원(朴謹元) 등과 함께 병조 판서(兵曹判書) 이이를 탄핵하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처음에는 창원 부사(昌原府使)로 좌천되었으나 곧 배명(拜命)이 취소되고 함경도 종성군에 유배되었다, 이후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배소가 옮겨졌다. 이때 함께 탄핵을 논의했던 박근원, 송응개도 함께 유배를 떠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두고 계미 삼찬(癸未三竄)이라고 부른다.

허봉은 1585년(선조 18)에 영의정 노수신(盧守愼), 유성룡(柳成龍)의 주선으로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백운산․인천․춘천 등지를 돌아다니며 방랑 생활을 하다가, 선조 21년(1588) 평소의 과음으로 인하여 깊어진 한담(寒痰)으로 고생하다가 치료를 받으려고 상경하던 중 강원도 김화군(金化郡) 생창역(生昌驛)에서 38세의 나이로 객사했다.

허봉의 첩 이조이가 『인천부 읍지』 열녀 편에 등재되어 있다.

[학문과 저술]

허봉유희춘(柳希春)의 문인이다. 학문적으로는 아버지 허엽이황(李滉)의 영향을 크게 받아 도학에 관심이 깊었다. 1574년(선조 7)에 북경을 다녀오며 쓴 기행문 「하곡조천기」에 허봉의 도통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이황의 사상뿐만 아니라 이이의 『성학집요(聖學輯要)』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달(李達)·임제(林悌)·사명당(四溟堂) 등과 교유가 깊었으며, 시문에 능하여 저서를 많이 남겼다. 그의 시는 청신완려(淸新婉麗)하며, 특히 고가행(古歌行)은 성당(盛唐) 시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다. 이달허봉의 칠언 절구(七言絶句)에는 소동파(蘇東坡)의 구기(口氣)가 있으나 대체로 이백(李白)의 유법(遺法)을 얻었다고 칭찬했으며, 특히 장유(張維)허봉을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꼽았다고 한다.

허봉의 저서로 『하곡집(荷谷集)』, 『하곡 수어(荷谷粹語)』가 있고, 편서로 『해동 야언(海東野言)』, 『이산 잡술(伊山雜述)』, 『의례산주(儀禮刪註)』, 『북변 기사(北邊記事)』, 『독역관견(讀易管見)』 등이 있다. 『하곡집』, 『해동 야언』이 현전하며, 『하곡 수어』, 『이산 잡술』, 『북변 기사』, 『독역관견』, 『의례산주』는 모두 실전되었다.

[묘소]

허봉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다. 석물로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등이 설치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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