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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72
한자 鄭采和
이칭/별칭 후선(後先)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동래(東萊)
대표관직 인천도호부 부사
출생 시기/일시 1611년연표보기 - 정채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55년연표보기 - 정채화 사복 주부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58년연표보기 - 정채화 부사과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59년연표보기 - 정채화 평양 서윤·한성 판관·돈녕 판관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64년연표보기 - 정채화 의영 주부 부임하고 선공감 청정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65년연표보기 - 정채화 해주 목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69년연표보기 - 정채화 여산 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72년연표보기 - 정채화 서산 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76년연표보기 - 정채화 인천 부사 부임
몰년 시기/일시 1677년연표보기 - 정채화 사망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 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후선(後先)이다. 인조(仁祖) 때 좌의정을 역임한 정창연(鄭昌衍)의 손자이며, 이조 참판 정광경(鄭廣敬)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정채화(鄭采和)[1611~1677]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천성이 효성이 깊고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재물을 다하여 이를 도왔다고 한다. 또한 관직에 나아가서는 근면하고 성실하며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였다고 한다.

1627년의 정묘호란 이후 인조가 인재를 구하고자 하였을 때, 재행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천거되었으나, 당시는 나이가 어리다며 응하지 않다가, 현종 때 비로소 음서로 관직에 올랐다. 1655년 의영고(義盈庫)와 사복시(司僕寺)의 주부를 거쳐 1658년에 부사과에 제수되었고, 1659년에는 평양 서윤, 한성 판관, 돈녕 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1664년에는 의영 주부와 선공감 청정(繕工監 僉正)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에는 해주 목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여산 군수, 서산 군수 등을 지냈다. 1676년 5월 12일 인천 도호부 부사에 제수되어, 같은 달 20일에 부임하였으며, 이듬해 6월 5일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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