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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24
한자 李箕獻
이칭/별칭 성관(聖觀)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심효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전주(全州)
대표관직 공조 참의|인천 부사
출생 시기/일시 1673년연표보기 - 이기헌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18년연표보기 - 이기헌 인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27년 - 이기헌 증광 문과 병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31년연표보기 - 이기헌 사헌부 장령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45년연표보기 - 이기헌 공조 참의 제수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자는 성관(聖觀)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대해(李大海)이고, 할아버지는 이주(李冑)이며, 아버지 이진하(李鎭夏)이고, 어머니는 박순(朴珣)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기헌(李箕獻)[1673~?]은 1718년 인천 부사에 부임하였으며, 1727년(영조 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1년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에 제수되었고, 1745년에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이르렀다.

이기헌은 1731년 전국 도처에서 도적의 환란이 일어남을 지적하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지방관을 파직할 것을 상소하였고, 1732년에는 국가 재정이 어려우므로 먼저 대궐에서부터 경비를 줄이고, 관사의 경비도 아껴야 함을 주청하였다. 이기헌은 이 외에도 삼국(三局)[훈련도감(訓鍊都監),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을 총칭하여 부르는 말] 보미(保米)[조선 시대 군사비 충당을 위하여 정군(正軍)에게 딸린 경제적 보조자인 보인(保人)이 정군으로 입역하지 않는 대신에 바치던 쌀] 운반의 효율적인 비용 절감 등 국가 재정에 관한 상소를 많이 올리는 등 현실 정치에 적극성을 가졌던 문신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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