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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93
한자 申孝哲
이칭/별칭 명여(明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오정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본관 평산(平山)
대표관직 인천 도호부사
출생 시기/일시 1821년연표보기 - 신효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43년 - 신효철 식년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68년연표보기 - 신효철 영종진 첨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869년연표보기 - 신효철 인천 부사 부임
부임|활동지 영종진 - 인천광역시 중구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무신.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명여(明汝)이다. 아버지는 신태희(申泰羲), 할아버지는 신석붕(申錫朋)이며, 외할아버지는 이제원(李濟元)이다.

[활동 사항]

신효철(申孝哲)[1821~?]은 1843년(헌종 9) 식년(式年)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1868년(고종 5) 4월 남연군(南延君)[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묘 도굴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영종진(永宗鎭)의 첨사로 있으면서, 충청남도 덕산(德山) 주민들에게 쫓겨서 영종진 앞바다에 이른 독일인 오페르트(Oppert E. J.) 일행에게 문정관(問情官)으로 중군 이보능(李輔能)을 파견하여 그들의 소행을 추궁하였다. 그러나 오페르트 일행은 무례한 요구를 하며 부식을 조달하기 위하여 영종도에 상륙하여 약탈을 자행하려 하였고, 이에 교전하여 선원 한 명을 사살하고 한 명에게는 중상을 입혔다. 이 두 명의 목을 베어 동문(東門)에 내걸었으며, 마침내 오페르트 일행을 팔미도(八尾島) 밖으로 퇴거시켰다. 1869년(고종 6) 3월 인천 도호부사로 부임해서 1870년 윤10월 18일의 근무 성적 심사 때 진주 병사로 옮겨 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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