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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56
한자 閔周冕
이칭/별칭 장오(章五),수월당(水月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여흥(驪興)
대표관직 인천 부사|경주 부윤
출생 시기/일시 1629년연표보기 - 민주면 출생
출생 시기/일시 1648년 - 민주면 식년시 진사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53년 - 민주면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60년 2월 6일연표보기 - 민주면 인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61년 6월 5일 - 민주면 인천 부사 파직
몰년 시기/일시 1670년연표보기 - 민주면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69년~1670년 - 민주면 『동경 잡기』 편찬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했던 문신.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장오(章五), 호는 수월당(水月堂)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를 지낸 민진량(閔晉亮)이고, 어머니는 첨정(僉正) 유대이(兪大儞)의 딸이다.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한 이시만(李時萬)의 딸 전주 이씨를 처로 맞았다.

[활동 사항]

민주면(閔周冕)[1629~1670]은 1629년(인조 7) 출생하여, 1648년(인조 26) 식년시(式年試) 진사에 합격하고, 1653년(효종 4) 알성시(謁聖試)[임금이 문묘에 참배한 뒤 실시하던 비정규적인 과거 시험] 갑과(甲科) 장원(壯元)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공조․예조․병조의 좌랑(佐郞), 춘추관 기사(春秋館記事), 황해도 도사(黃海道都事), 병조 정랑(兵曹正郞), 성균관 직강(成均館直講), 장흥 현감(長興縣監), 충청도 도사(忠淸道都事), 세자시강원[왕세자의 교육을 맡아보던 관아] 사서(世子侍講院司書),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하고, 1660년 2월 6일 인천 부사로 부임하였다.

민주면은 인천에서 복무하며 현재의 영종도인 자연도(紫燕島)에 대한 국방 시설을 엄중히 하여 후환이 없게 하였으나, 1661년 6월 5일 감사(監司)의 장계로 파직 당했다. 이후 길주 목사(吉州牧使)를 거쳐 광주 부윤(廣州府尹)으로 초수(超授)[곧 제 차서(次序)를 기다리지 않고 벼슬의 등급을 뛰어 올려 제수함]되었으며, 내직에 들어와서는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 장례원[공사(公私) 노비 문서의 관리와 노비 소송을 맡아보던 관아] 판결사(掌隷院判決事), 승정원 승지(承旨)를 역임하였다. 1669년 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부임해서는 궁핍한 부민(府民)에 대한 시혜가 돈독하여 부민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1670년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학문과 저술]

민주면은 경주 부윤으로 재임할 때 진사(進士) 이채(李埰)‚ 김건준(金建準) 등과 경주부의 읍지인 『동경 잡기(東京雜記)』를 편찬하였다. 종래 『동경 잡기』는 민주면 등이 『동경지(東京誌)』를 증보한 것이라고 이해해 왔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민주면 등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일부 내용을 기초로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여 편찬한 경주부의 읍지라고 한다.

이후 『동경 잡기』는 1711년(숙종 37)에는 남지훈(南至熏)이 재간하였고‚ 1845년(헌종 11)에 성원묵(成原黙)이 다시 증보‚ 정정하여 중간하였다. 1910년에는 조선 고서 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가 성원묵(成原默)의 판본을 인쇄본으로 간행하였는데, 1913년 최남선(崔南善)이 주관하던 조선 광문회(朝鮮光文會)가 다시 활자본으로 중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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