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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39
한자 權輳
이칭/별칭 자여(子輿)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오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
대표관직 사옹원 판관|한성부 판관|형조 정랑|안변도호부 도호부사|성주 목사|인천도호부 도호부사
출생 시기/일시 1458년연표보기 - 권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80년 - 권주 사마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91년 - 권주 도원수 허종에 의해 선전관으로 발탁
활동 시기/일시 1504년연표보기 - 권주 인천 도호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07년 - 권주 증광 별시 급제
몰년 시기/일시 1518년연표보기 - 권주 사망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부임|활동지 안변도호부 - 함경남도 영흥
부임|활동지 성주목 - 경상북도 성주군

[정의]

조선 전기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여(子輿)이다. 아버지는 금성 현령(金城縣令) 권수(權壽)이며,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 권격(權格), 증조할아버지는 권순(權循)이다. 어머니는 의영고사(義盈庫使) 한가구(韓可久)의 딸이다.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활동 사항]

권주(權輳)[1458~1518]는 1480년(성종 11)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여동생이 후궁으로 간택되어, 그 혜택으로 서부 참봉(西部參奉)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인척으로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병을 핑계로 사임하고 오래도록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였다. 1491년(성종 22)에 도원수 허종(許琮)에 의해 선전관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사축서 사축(司畜署司畜), 장례원 사평(掌隷院司評), 사옹원 판관(司甕院判官), 경상도 도사, 전라도 도사, 사직서 영(司稷署令), 한성부 판관, 형조 정랑,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부모 봉양을 위하여 외직을 희망하여 인천도호부사(仁川都護府使), 안변도호부사(安邊都護府使), 성주 목사(星州牧使)를 지냈다. 성주 목사로 있을 때 치적이 많아, 선산 부사 유희철(柳希輟), 금산 군수 문근(文瑾)과 더불어 ‘영남 삼랑(嶺南三良)’이라 불리며 명수령으로 꼽혔다.

1507년(중종 2)에는 증광 별시에 급제하여 사섬시 정(司贍寺正), 사복시 정(司僕寺正),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에 임명되었다가, 공주 목사(公州牧使)로 나갔다. 공주 목사로 부임하여 3년째 되는 해인 1518년(중종 13)에 병으로 관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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