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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37
한자 權世經
이칭/별칭 백상(伯常)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오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安東)
대표관직 회양 부사|청주 목사|인천 부사
출생 시기/일시 1626년연표보기 - 권세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48년 - 권세경 사마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72년 - 권세경 회양 부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77년 - 권세경 청주 목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79년 - 권세경 인천 부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81년 - 권세경 인천 부사로 재직 중 고을의 재해로 파직
몰년 시기/일시 1704년연표보기 - 권세경 사망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묘소|단소 권세경 묘소 -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백상(伯常)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권순창(權順昌)이고, 할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권경기(權儆己)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활동 사항]

권세경(權世經)[1626~1704]은 1648년(인조 26)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66년(현종 7)에 낭청(郞廳)이 되었다. 1672년(현종 13)에 회양(淮陽) 부사(府使)를 지내고, 1677년(숙종 3)에는 청주(淸州) 목사(牧使)로 재직하였다. 관직에 있는 동안 정사를 공평하고 신중하게 처리했다 하여 칭송을 받았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는 청주 목사를 지내는 동안 “송사를 사사로이 하고 은결(隱結)을 강제로 받아 내어 사용(私用)으로 했다.”라는 사헌부의 의견에 따라 파직되었으나, “더러는 선치(善治)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대관이 아뢴 것을 반드시 다 믿을 수도 없다.”라는 허적(許積)·권대운(權大運)·오시수(吳始壽)의 건의로 다시 서용된 기록이 있다.

1679년(숙종 5)에는 인천 부사로 부임하여 재직하다가 1681년(숙종 7) 고을의 재해로 인해 파직되었다. 1689년(숙종 15)에 벼슬에서 물러났다.

후에 그의 장남이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됨으로써 승지에 추증되었다.

[묘소]

권세경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에 있다. 인근에 최석정(崔錫鼎)이 찬하고, 조상우(趙相愚)가 글씨를 쓴 묘갈(墓碣)이 적힌 비석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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