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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353
한자 漢山州
이칭/별칭 한주(漢州),신주(新州),남천주(南川州)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이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604년연표보기 - 한산주 설치
폐지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한산주 폐지
개정 시기/일시 604년 - 한산주 설치하며 남천주 폐지
개정 시기/일시 757년 - 한주로 개칭

[정의]

신라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조직.

[개설]

원래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을 포함하는 한산주 지역은 백제의 초기 도읍지 하남(河南) 위례성(慰禮城) 권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475년(개로왕 21) 백제 수도의 함락에 따라 고구려가 이곳에 한산군을 설치하였다. 그 후 551년에 백제 성왕(聖王)이 다시 이 지역을 회복하였으나, 진흥왕(眞興王) 14년(553)에 신라가 다시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진흥왕 18년에 신주를 폐지하고 한산주로 개칭하였으며, 다시 진흥왕 29년에 한산주를 폐지하고 남천주(南川州)를 설치하였다. 진평왕(眞平王) 26년(604)에 다시 남천주를 폐지하고 한산주를 설치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신라는 중고기(中古期)[23대 법흥왕~28대 진덕 여왕]의 발전 과정에서 진흥왕 대에 오늘날의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이곳에 신주를 설치하였다. 이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한 뒤에는 전국을 9주로 통치 체제를 정비하면서 한산주를 설치하여 행정적으로는 물론 군사적으로도 북방 방어의 중요한 임무와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한산주는 옛 광주(廣州)를 주치(州治)[지방의 중심지]로 하며, 중원경(中原京)과 27개 군, 46개 현이 편재되어 있었다. 또한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10정(停) 가운데 남천정(南川停)과 골내근정(骨乃斤停)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이와 더불어 만보당(萬步幢), 한산주서(漢山州誓), 한산변수당(漢山邊守幢), 한산주계당(漢山州罽幢), 한산주궁척(漢山州弓尺) 등의 특수 부대가 있었다.

신라의 중앙 정부가 한산주를 중시한 것은 군사적·대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대내적으로는 이곳이 한강 유역으로서 물산이 풍부하고 곡창 지대라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5, 잡지 제4, 지리 2 한주(漢州)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한주는 본래 고구려 한산군(漢山郡)이었는데, 신라가 빼앗았다. 경덕왕(景德王)한주로 고쳤다. 지금[고려]의 광주(廣州)이다. 영현(領縣)[고려 시대에 속현(屬縣)을 거느리는 군현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 둘이었다. 황무현(黃武縣)은 본래 고구려 남천현(南川縣)이었는데, 신라가 병합하여 진흥왕이 주(州)로 삼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 지금의 이천현(利川縣)이다. 거서현(巨黍縣)은 본래 고구려 구성현(驅城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용구현(龍駒縣)이다.”

[변천]

문무왕 15년(675) 매소성(買肖城) 및 칠중성(七重城) 전투에서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치고 676년 나당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한산주의 북쪽 경계는 대략 황해도 토산군(兎山郡)[황해도 금천군 토산면]·부평군(富平郡)[강원도 철원군 철원읍·김화읍] 선에 머물러 있었으나, 차츰 그 북방 한계선이 올라갔다. 효소왕 3년(694)에 송악성(松岳城)[경기도 개성시]과 우잠성(牛岑城)[황해도 금천군 우봉면]을 쌓았고, 성덕왕 12년(713)에 개성(開城)[경기도 개풍군 서면 개성리]을 쌓았다. 이후 경덕왕 7년(748)에 대곡성(大谷城)[황해도 평산군 평산면] 등 14군현을 설치하고, 경덕왕 16년에 이름을 한주로 고치고, 1소경, 27군, 46현을 영속(領屬)하게 하였다. 동왕 21년(762)에 오곡성(五谷城)[황해도 서흥군 서흥면], 휴암성(鵂巖城)[황해도 봉산군 동선면 선령리], 한성성(漢城城)[황해도 신천군 문무면 고현리], 장새성(獐塞城)[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지성성(池城城)[황해도 해주시], 덕곡성(德谷城)[황해도 곡산군 곡산면]의 여섯 개 성을 쌓고 태수(太守)를 두었다. 헌덕왕(憲德王)이 취성군(取城郡)[황해도 황주군 황주읍]과 토산현(土山縣)[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등 세 개 현을 설치하고 헌덕왕 18년(826)에 패강 장성(浿江長城)을 쌓음으로써 한주의 경계가 완성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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