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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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인천학 연구소가 펴낸 인천에 관한 역사서. 『간추린 인천사』는 인천이라는 도시의 문화와 정체성을 한 눈에 가름하게 해주는 책이다. 선사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인천 지역사를 체계화한 역사 서적으로 희귀한 사진과 자료를 수록하고 있어 지역사를 연구하거나 인천 지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간추린 인천사』는 인천에서 활동 중인 언론인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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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거쳐 연수구 동춘동의 외암도 사거리와 부평구 부평동의 굴다리 오거리를 잇는 도로. 경원 대로는 인천광역시의 부평구, 남동구, 미추홀구 및 연수구를 S자 형태로 지나는 전체 길이 약 14.45㎞의 도로로, 인천의 주요 대로 중 하나이다.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의 굴다리 오거리에서 출발하여 산곡동과 십정동을 지나 남동구 간석동으로 이어지며, 미추홀구에서 주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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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했던 인주 이씨(仁州李氏)로 인해 붙여진 인천 지역의 옛 명칭. 경원군(慶源郡)은 인천의 옛 명칭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던 인주 이씨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인주 이씨가 왕실의 외척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이허겸(李許謙)의 손자인 이자연(李子淵) 때의 일이었다. 이자연의 세 딸이 모두 문종(文宗)의 비로 뽑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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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김종(金宗)을 입향조(立鄕祖)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과 주안동에 세거하던 성씨.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더불어 김씨의 2대 주류를 이루는 대보공(大甫公) 알지계(閼智系) 가운데서도 그 대종을 이루는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파계(派系)가 복잡다. 은열공파(殷說公派), 태사공파(太師公派),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 영분공파(永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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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한국사 시대 구분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하였다. 첫째 왕조에 의한 구분, 둘째 시간 길이[遠近]에 의한 구분, 셋째 사회 구조·성격의 발전 과정에 의한 구분이다. 이 가운데, 시간의 길이에 따른 시대 구분, 즉 ‘3분법’으로 고대·중세·근대 시대 구분의 기준을 삼는 방법은 원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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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 9세기 말 신라의 국력이 쇠약해져 각지에서 군웅들이 할거하였고 이는 곧 후삼국의 정립으로 이어진다. 이 중 태봉을 세운 궁예(弓裔)[857(?)~918, 재위 901~918]의 장수로 있던 왕건(王建)[877~943, 재위 918~943]이 궁예를 몰아내고 918년 고려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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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소재 문학산 진중에 머물면서 『소성진중일지(邵城陣中日誌)』를 집필한 무관. 본관은 능성(稜城)이다. 시조는 고려 때 벽상 삼한 삼중 대광 검교 상장군(壁上三韓三重大匡 檢校上將軍)을 지낸 구존유(具存裕)이며, 구존유의 23세손이다. 아버지는 구정식(具廷植), 할아버지는 구병희(具秉禧), 증조할아버지는 구관석(具觀錫)인데, 이들이 과거에 급제하거나 벼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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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ㆍ고려ㆍ조선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를 포함한 지방 제도. 군현제는 한반도에 일찍부터 전해져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에는 초기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주변 소국을 점령할 때마다 군현(郡縣)을 설치한 것으로 나오나, 일반적으로 이는 인정되지 않는다. 통상 한국에 군현제의 등장은 신라 지증왕(智證王)[437~514] 때 주요 군사 지역에 주(州)를 두고 그 장관으로 군주(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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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돌아가신 분의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祭祀). 제사는 차례(茶禮), 시제(時祭)[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가묘에 지내는 제사 또는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기제(忌祭) 또는 기제사(忌祭祀), 불천위제(不遷位祭)[나라에 큰 공적을 세우거나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이들에게 내려지는 불천위를 받은 이의 기제사]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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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를 포함한 인천 지역의 고구려 때 지명. 통일 신라 한주 소성현(邵城縣)의 고구려 때 지명으로 다른 기록에는 미추(弥鄒, 彌鄒) 혹은 미추홀(彌鄒忽)이라고도 나온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주몽(朱蒙)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인 유류(孺留)가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沸流)와 온조(溫祚)는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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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사진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옛 인천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 그 기원은 백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관교동과 문학동을 중심으로 인천도호부 관아와 인천 향교가 있던 곳으로 선비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문화·예술은 상당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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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남구 학산 문화원[현 미추홀 학산 문화원]이 미추홀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소개하기 위하여 펴낸 만화책. 『미추와 함께 떠나는 시간 여행』[전 2권]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로 158에 있는 남구 학산 문화원[현 미추홀 학산 문화원]에서 펴낸 만화책이다. 제1권은 2005년에 출판되었다. 인천 역사 문화 연구회 회장이면서 교육 여행 하늘과 땅 대표인 김희주가 글을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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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가 도읍지로 정했던 지역. 백제의 시조인 온조와 그의 형인 비류는 고구려로부터 남하하였는데, 형인 비류는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고 동생인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초기 백제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미추홀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로 비정되고 미추홀의 중심 유적으로 믿어지는 것이 문학 산성이다. 하지만 문학 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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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전해오는 생활과 풍습. 민속은 민간에 전승되는 기층문화 혹은 잔존(殘存) 문화로 ‘민간의 전승’ 또는 ‘민간의 풍속’이란 말의 줄임말이다. 민속은 민중의 생활인 동시에 그 생활의 지속 또는 반복에서 이루어지는 공통의 습속을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민속은 세시 풍속이나 의례, 신앙, 언어, 노동 등 삶의 전 분야를 포괄하고 있으며, 또한 특정 지역의 민속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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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했던 인주 이씨(仁州李氏)와 깊은 관련을 맺고 번성하던 불교 종파. 통일 신라 때 성립되어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는 화엄종(華嚴宗)과 함께 교종의 2대 종파가 되었다. 13종(宗)의 하나이다. 중국에서 일찍이 현장삼장(玄奘三藏)이 인도에서 무착·세친(世親)의 정통 교학을 계현(戒賢)에게서 받아 당(唐)나라에 전했다. 중국의 법상종(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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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목(李希穆)을 시조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세거 성씨. 부평 이씨(富平李氏)는 이희목을 시조로 하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문학동·학익동·주안동·용현동 등지에 세거하였던 성씨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던 이세주(李世冑),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원도(猿島)[인천광역시 중구에 있었던 섬. 지금은 육지와의 사이가 매립되었다.]에 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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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우리나라 불교는 삼국 시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며, 신앙과 지배 이념으로 기능하면서 발전하였다. 삼국 중 불교가 가장 먼저 전래된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 전진(前秦)의 순도(順道)에 의해 불교가 공인되었다. 그러나 이미 유학이 유입되고 교육 기관인 태학이 성립되어 있어 불교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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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출신의 왕비. 사숙 태후(思肅太后)는 고려 13대 선종(宣宗)의 왕비이며, 헌종(獻宗)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사숙 태후는 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국원공(國原公)으로 있을 때 혼인하여 연화 궁비(延和宮妃)에 봉해졌고,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태후가 되었다. 태후가 되고 사숙 태후가 거처하던 집을 중화(中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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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서낭신을 모셔 놓은 당. 서낭당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만들어 놓은 당이다. 당의 형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돌무더기만 해 놓은 곳도 있고 서낭목과 돌무더기를 함께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서낭님을 모셔 놓은 신당의 형태도 있다. 민간에서는 서낭과 성황을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흔히 성황(城隍)이라고 하는 것은 고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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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백제, 신라가 중국으로 가기 위해 이용했던 서해의 항로. 백제가 중국과 교류하기 시작한 것은 근초고왕 때의 일이다. 백제는 372년(근초고왕 27)과 그 이듬해에 중국의 진(晋)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는 백제가 근초고왕 대에 이르러 마한의 잔여 세력을 복속하고 한반도 서남부의 대표적 세력으로 자리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공식적인 외교 관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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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에서 성씨(姓氏)가 발생한 근원은 고대 중국의 성씨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왕족을 중심으로 다른 씨족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호칭이 성(姓)으로 나타난 것인데, 처음에는 왕실 내지 귀족, 고급 관료층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개국(開國)과 국가 변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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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한주(漢州)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買召忽縣)이었으나, 진흥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소성현(邵城縣)으로 개칭되었다. 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신문왕 5) 신라는 전국을 9주(九州)로 개편하였고 5소경(五小京)을 정비하였다. 신문왕의 지방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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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집안으로, 고려의 제16대 왕인 예종의 비. 본관은 인천[인주(仁州)]. 당대의 세도가였던 이자겸(李資謙)의 둘째 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자연(李子淵)이다. 순덕 왕후(順德王后)[?~1118]는 16대 왕인 예종(睿宗)의 비(妃)이다. 처음 궁중에 들어갔을 때의 호는 연덕 궁주(延德宮主)이고, 소생으로 인종(仁宗)과 승덕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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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역사적 내력.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인천 일대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곳 중 하나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27년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옛 소년 교도소 서쪽 언덕 위에서 조선 총독부 박물관에 의해 발굴된 고인돌을 통해 이미 선사 시대부터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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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출신의 왕비. 연덕 궁주(延德 宮主)가 출생한 해는 미상이고, 사망한 해는 1139년(인종 17)이다. 고려 시대 세도가 이자겸의 셋째 딸이자 고려 17대 인종의 왕비로 인종의 모후 문경 태후(文敬太后)의 동생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폐비 이씨”로 기록되어 있다. 옛 인천광역시 남구 연수동[지금은 인천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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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전하는 왕전(王盷)의 문학산 유배 관련 이야기. 1990년에 인천 지방 향토 문화 연구소에서 발행된 『인천 지방 향토 사담』에 「왕자 왕전의 유배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왕전은 고려 13대 선종(宣宗)과 원신궁주 인천 이씨 사이에서 출생한 왕자이다. 원신궁주 이씨의 친정아버지인 이자수는 이자연의 손자로, 시중(侍中) 이정의 아들이다. 그는 호부 상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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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출신의 왕비. 원신 궁주(元信 宮主)는 고려 13대 선종의 왕비이다. 원희 궁비(元嬉宮妃)라고도 불린다. 선종과 혼인하여 왕자 한산후(漢山候) 왕윤(王昀)을 낳았다. 하지만 선종이 죽은 후 어린 헌종이 즉위하자 원신 궁주의 오빠 이자의(李資義)가 왕윤을 왕으로 삼으려 한 사건에 연루되어 숙종 즉위 후 한산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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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공자(孔子)를 시조로 하는 전통적인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유교(儒敎)는 중국 춘추 시대 말기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로, 시조인 공자의 이름을 따서 공교(孔敎)라고도 한다. 삼강오륜(三綱五倫)[유교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의 강령과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리로, ‘군위신강(君爲臣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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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세시 풍속. 유두(流頭)는 음력 6월 15일을 이르는 말로써,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는 뜻인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자이다. 소두(疏頭), 수두(水頭)라고도 하는데, 소두란 머리를 감는다는 의미이며, 수두란 물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 곧 물맞이라는 뜻으로 모두 유두날의 행사와 관련이 있다.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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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포함되었던 신라 때 한주(漢州)에 속한 군의 하나. 율진군은 본래 고구려 율목군(栗木郡)이었는데, 경덕왕이 개명하였으며, 영현은 곡양현(穀壤縣), 공암현(孔巖縣), 소성현이다. 율목군은 동사힐(冬斯肹)이라고도 하였다. 현재의 경기도 과천시이다. 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신문왕 5) 신라는 전국을 9주로 개편하였고 5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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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했던 인주 이씨(仁州 李氏) 출신의 이자겸(李資謙)이 일으킨 난. 이자연(李子淵)[1003~1061]의 손자이며 인종(仁宗)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1126]이 1126년(인종 4)에 왕권의 약화를 틈타 왕위를 빼앗으려 했던 사건이다. 이자겸의 난은 이자겸이 지군국사(知軍國事)가 되어 사실상 왕을 대신해 실권을 차지하자, 왕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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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하는 인천 이씨(仁川 李氏)를 귀족의 반열에 올린 중시조. 인천 이씨[인주 이씨(仁州 李氏)]의 중시조이다. 나중에 반란을 일으킨 이자의(李資義)와 이자겸(李資謙)은 이허겸(李許謙)의 현손(玄孫)이다. 인주 이씨는 본래 김해 허씨였으나 그의 6대조인 허기(許奇)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안록산(安祿山)의 난으로 피난하는 현종을 호종한 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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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출신의 왕비. 인경 현비(仁敬 賢妃)는 고려 제11대 문종의 왕비이자, 고려 시대 대표적 세도 가문인 인주 이씨(仁州李氏) 출신인 이자연(李子淵)[1003~1061]의 둘째 딸이다. 인경 현비는 처음에 수녕 궁주(壽寧宮主)에 봉해졌다가 1082년(문종 36)에 숙비(淑妃)에 책봉되었다. 인경은 시호이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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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출신의 왕비. 인절 현비(仁節 賢妃)[?~1082]는 고려 11대 문종의 왕비로 자매인 인예 태후(仁睿太后), 인경 현비(仁敬 賢妃)와 함께 납비(納妃)되어 숭경 궁주(崇敬宮主)에 봉해졌다. 1082년(문종 36) 7월에 죽었으며 문종 사이에 소생은 없었다. 인절은 시호이다. 아버지는 이자연(李子淵)[1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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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인천광역시 지역의 옛 이름. 인주(仁州)는 인천의 옛 이름으로, 고려 인종 때 어머니 순덕 왕후(順德王后)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과거 숙종 때 소성현(邵城縣)을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시킨 것을 다시 승격시킨 것이었다. 이후 인주라는 명칭은 이자연(李子淵)[1003~1061], 이자겸(李資謙)[?~1126] 등 고려 전기 외척으로서 세도를 휘두른 이른바 인주 이씨(仁州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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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을 비롯한 인천 역사의 자랑거리들을 모아서 발간한 향토지. 인천 향토의 역사를 발굴하여 정리․기록하고 이를 통해 선조들의 지혜와 교훈을 얻고 배우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역사적 소명이자 책무이다. 이에 인천광역시는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고증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인천시사』, 『인천 개항 100년사』, 『연표로 읽는 인천 현대사』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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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허겸(李許謙)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 지역의 세거 성씨. 인천 이씨(仁川 李氏)는 이허겸을 시조로 하여 고려 시대부터 인천광역시 지역에 세거하던 성씨이다. 고려 시대 문종(文宗)에서 인종(仁宗)까지 7대에 걸쳐 5명의 태후(太后)와 5명의 왕후(王后)를 배출하여 인천의 읍호(邑號) 승강(昇降)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세조(世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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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편을 나눠 행해져 온 전통적인 활쏘기 시합.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행해져 온 전통적인 활쏘기 시합인 편사 놀이는 편을 어떻게 나누는가에 따라 사정(射亭)과 사정 간의 편사 또는 마을과 마을 간의 편사 등이 있다. 사정을 ‘활터’라 해서 사정과 사정 간의 편사를 터편사라고 부르고, 마을과 마을 간의 편사를 골편사[洞便射]라고 한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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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선무(蔡先茂)를 시조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과 학익동, 문학동에 세거하던 성씨. 인천 채씨(仁川 蔡氏)는 채선무를 시조(始祖)로 하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학익동·문학동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였던 성씨이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의 한국 역대 인물 종합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인천 채씨의 고려 시대 문과 합격자로는 채보문(蔡寶文)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무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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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소재하는 인천 향교에서 선성(先聖)과 선사(先師)를 추모하기 위하여 봄·가을에 올리는 제례. 석전대제(釋奠大祭)는 성균관이나 향교의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文廟)에서 지내는 큰 제사로 예법과 음악이 존중되는 국가의 의례이다. ‘석전’이란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라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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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 구(區)는 서울특별시, 5대 광역시 및 인구 5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설치되는 하부 행정 구역으로, 국가가 위임한 사무를 처리하는 보통 행정 구역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도화동(道禾洞), 숭의동(崇義洞), 용현동(龍現洞), 학익동(鶴翼洞), 주안동(朱安洞), 관교동(官校洞), 문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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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지역의 지방 관아 또는 행정 구역 이름. 고려 시대 수주(水州)의 한 속현이었던 소성현은 인주 이씨가 왕실의 외척이 되면서 비로소 인주(仁州)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고려 말에 이르면 경원부(慶源府)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경원부는 1392년(공양왕 2)에 경기도를 확장하고 좌도와 우도로 도를 나눌 때, 양광도(楊廣道)에서 경기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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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이훈익이 인천의 성씨와 인물을 모아 엮은 향토지. 서계당(西桂堂) 이훈익(李薰益)[1916~2002]이 운영한 인천 지방 향토 문화 연구소에서 인천 지역의 뿌리 및 선조들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충효록(忠孝錄)』, 『인천 지방 향토사담(鄕土史談)』, 『인천 지지(仁川地誌)』에 이어 네 번째로 1991년 4월에 『인천(仁川)의 성씨·인물고(姓氏·人物考)』를 발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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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한 인천의 읍격(邑格) 변화. 우리나라에서 지방 행정 제도로서의 주·군·현이 등장한 것은 신라 중대였다. 하지만 주·군·현이 한 고을의 등급을 나타나는 것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이때 고려 태조 왕건이 자신을 지지하거나 도움을 준 읍들에 대해 읍호를 주(州)로 승격시키고, 자신을 배반하는 호족이 나오는 경우 해당 출신 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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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조선 시대 국립 교육 기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인천 향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인천 향교의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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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집안으로, 고려의 12대 왕인 순종의 왕비. 본관은 인천[인주(仁州)]. 아버지는 호부낭중(戶部郎中)을 지낸 이호(李顥)이고 오빠는 당대의 세도가인 이자겸(李資謙)이다. 고려의 12대 왕인 순종의 비인 장경 궁주(長慶 宮主)는 1083년 순종이 즉위하자 정의 왕후(貞懿 王后), 선희 왕후(宣禧 王后)에 이어 세 번째 왕비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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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는 중서(中書)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장순손(張順孫)이고, 예조 참의, 승지, 삼척 부사를 지낸 장자호가 증손이다. 장명원(張明遠)[?~?]의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광흥창 수(廣興倉守)를 지낼 때, 고려 시중(侍中) 문정공(文貞公) 행촌 선생(杏村先生) 이암(李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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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했던 인주 이씨 이예의 여식이자 선종(宣宗)의 왕비. 고려 13대 선종의 왕비로 이자연(李子淵)의 동생 이자상(李子祥)의 손녀이자, 이예(李預)의 딸이다. 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국원공(國原公)일 때 결혼하였다. 선종과의 사이에서 훗날 예종(睿宗)의 왕비인 경화 왕후(敬和王后)가 되는 연화 공주(延和公主)를 낳았다. 정신 현비(貞信 賢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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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 1392년 조선이 개국하였지만 아직은 전 시대인 고려 시대의 행정 제도를 정비하지 못하였다. 인천이라고 하는 지명은 조선이 개국하여 1413년(태종 13) 지방 행정 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질 때까지 등장하지 않으며, 인주(仁州)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군현제의 정비는 고려 시대 때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속현의 주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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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으로, 인간 문제의 궁극적 해결에 관련을 맺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신앙 행위를 말한다. 기존 종교의 개념에서는 교조․교리․의례․교단․신도 등이 체계적인 형식을 갖춘 것만을 종교로 인정했으나, 최근에는 민간에서 의례를 중심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도 넓은 의미의 종교로 포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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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인류사에 있어서 다양한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핵심이 되어 왔음을 볼 때에도 그 생명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선사 시대의 사람들은 수렵과 어로 활동을 통해 얻은 동물과 물고기 따위에서 염분을 섭취하였다. 그러다가 한 곳에 정착하여 농경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은 곡물과 채소를 주식으로 하게 되었고, 부족한 염분의 섭취를 위해 소금을 만들어 먹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인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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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김정호(金正浩)에 의해 제작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부가 수록된 지도책.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의 『청구도(靑邱圖)』는 김정호가 전국 지도 제작 과정의 중간 단계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현전하는 것은 후대의 필사본이다. 김정호의 『청구요람(靑邱要覽)』에 실려 있는 ‘청구도 범례(靑邱圖凡例)’가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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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에 지내는 풍속. 음력 4월 8일을 초파일 또는 사월 초파일이라 하며, 석가탄신일·부처님 오신 날·불탄일(佛誕日)·석탄일(釋誕日)이라고도 한다. 이 날은 석가모니가 태어나 날이며, 불교에서 가장 큰 명절이다. 초파일에 모든 사찰에서는 축하 제례를 올리는 등 큰 행사를 치르며, 불교 신자[佛子]들은 사찰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저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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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풍속. 추석(秋夕)은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 가운데 하나로서, 한가위·중추절(仲秋節)·가배(嘉俳)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중추·중추절이라고 하는 것은 이 시기가 가을의 한가운데에 속하기 때문이며, 한가위와 가윗날이라는 표현은 신라 때 비롯된 순수한 우리말이다. 또 가배는 가위를 이두식 한자로 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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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했던 인주 이씨(仁州李氏)가 7대 동안 왕실의 외척이 되었음을 일컫는 말. 어(御)자는 엄밀하게 왕에게만 사용되는 글자로서 ‘어향(御鄕)’이라고 할 때 ‘왕의 고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또한 왕가의 선원대향(璿源大鄕)[조선 시대에 이씨 왕실의 본관을 높여 이르던 말], 황비의 내외향, 황조비와 황증조비의 내향, 왕비(王妃)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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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추운 겨울철에 눈이나 얼음판 위에서 팽이를 돌리며 노는 아이들 놀이. 팽이치기는 박달나무 등으로 만든 팽이를 가지고 얼음판에서 노는 겨울철 놀이이다. 팽이치기는 누구의 팽이가 오랫동안 돌아가느냐를 겨루는 것으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돌리기도 하고 서로의 팽이를 부딪쳐 누구의 것이 오랫동안 돌아가는지를 겨룬다. 팽이치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도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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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조직. 원래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을 포함하는 한산주 지역은 백제의 초기 도읍지 하남(河南) 위례성(慰禮城) 권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475년(개로왕 21) 백제 수도의 함락에 따라 고구려가 이곳에 한산군을 설치하였다. 그 후 551년에 백제 성왕(聖王)이 다시 이 지역을 회복하였으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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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고려 초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해당하는 지역의 사회 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 세력.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제도의 정비와 기구의 확대로 왕권의 통치권을 강화하던 왕실도 신라 중대 말에 이르러서는 진골 귀족 세력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경덕왕 대에 전국 주·군·현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고, 당나라 제도를 기준으로 하여 각 관서의 관서명과 관직명을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