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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516
한자 善仁學園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상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교 법인
설립자 백인엽
설립 시기/일시 1965년연표보기 - 선인 학원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선인 학원 국가 헌납
개칭 시기/일시 1994년연표보기 - 선인 학원 시·공립화
현 소재지 선인 학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235 일대

[정의]

1965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설립되었던 사립 교육 기관.

[설립 목적]

선인 학원은 인천 지역의 육영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변천]

선인 학원은 1954년 설립된 성광 학원[성광 상업 고등학교, 성광 중학교]을 1958년 8월 인수하였다. 학교 법인 선인 학원은 1965년 설립되어 2개 대학, 11개 중·고등학교, 1개 초등학교, 1개 유치원등 15개 학교로 확장하였다. 이들 학교는 인천 대학교, 인천 공업 전문 대학교[1980년까지는 인천 공업 전문대학교와 인천 체육 전문 대학교로 나뉘어 있었음], 인화 여자 고등학교, 선화 여자 상업 고등학교, 선인 고등학교, 항도 실업 학교, 항도 상업 기술 학교, 운봉 공업 고등학교, 운산 기계 공업 고등학교, 인화 여자 중학교, 선화 여자 중학교, 선인 중학교, 효열 초등학교, 진흥 유치원 등이다.

선인 재단은 한때 인천 대학교와 선인 고등학교 등으로 대표되는 인천 지역 최대의 사학(私學)이었다. ‘선인’이란 두 글자는 6·25전쟁 때 활약한 백선엽(白善燁) 장군과 그의 동생 백인엽(白仁燁)[1923~ 2013] 장군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비호 아래 교세를 확장하던 선인 학원은 1981년 설립자이자 상무 이사인 백인엽이 업무상 횡령, 배임 수재 등 혐의로 구속되고, 학교 법인 선인 학원은 건축법 및 중기 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었다.

선인 학원의 학교들은 가족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백선엽의 호 ‘운산’, 백인엽의 호 ‘운봉(雲峰)’, 백선엽·인엽 형제의 어머니의 호 ‘효열’, 아들의 이름 ‘진흥’을 따서 학교 이름을 붙였다.

선인 학원 설립자인 백인엽의 전횡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인근 주민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침해하고, 특히 부지 확장 과정에서 중국인의 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어 버려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백인엽은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교직원들을 무조건 해고하고, 교사들에게 예비군 군복을 입혀서 보초를 서게 하고 순찰을 돌게 했다. 또한 돈을 받고 부정 입학·편입을 시키고 심지어 졸업장을 팔기까지 하였다. 신문에서는 이러한 백인엽의 활동을 ‘인천의 무법자’라고 표현하였다.

부정 비리가 적발되어 백인엽 이사장은 선인 학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구속되었지만 석방 이후에도 계속 주인 행세를 하면서 배후 조종을 일삼았다. 이 때문에 1990년대 ‘범(汎)선인 학원 정상화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어 학원 정상화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는 인천의 시민운동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백인엽은 1993년 6월 ‘[인천 대학교의 학교 법인인] 선인 학원의 공립화를 조건으로, 설립자로서의 권한 일체를 인천직할시장에게 기증한다.’라는 내용의 기증서를 당시 최기선 인천직할시장에게 전달함으로써 선인 학원은 운영하던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전문대 등 열 세 곳과 함께 시립으로 전환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994년 시립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시립화 이후 인천 대학교를 비롯한 학교들이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2012년 인천 대학교는 국립 대학으로 법인화가 허가되었다.

당시 인천 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했던 이갑용 인천 대학교 부총장은 “설립 초기에는 개강하는 날부터 시위를 시작했기 때문에 수업은 늘 여름방학에 했다.”라며 “대표적인 문제 사학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백인엽은 인천 대학교를 설립한 지 2년 만인 1981년 1월 당시 교육부의 감사에서 2년 동안 선인 학원 산하 각급 학교[당시 16개]에 무려 9,900여 명을 불법으로 편·입학시키고, 공금 7억 5000여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되어 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선인 학원의 시립화 논의는 인천 지역 시민 사회 단체가 연대해 정상화 논의에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92년 4월 발족한 ‘선인 학원 사태를 우려하는 인천 시민의 모임’은 자체 조사를 통해 설립자인 백인엽이 재단 기금 79억 원을 불법으로 인출한 사실을 밝혀냈고, 당시 고려 대학교 교육 대학원 학장이던 유인종 전 서울특별시 교육감이 이 모임에 시립화 전환을 제안했다.

교육계에서는 인천 대학교 사례를 참고해 국가 환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비교적 쉬운 비리 사학을 공공화하되,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방 자치 단체의 여건을 고려하면 공립화보다는 국립화가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황]

사학에서 시작된 선인 학원은 인천 대학교가 국립화되고 나머지 학교는 공립화되었다.

[의의와 평가]

비리 사학의 공공화라는 의미에서 의의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지역 사회의 많은 사람이 사학의 비리와 부당함에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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