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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291
한자 全元寬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손민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국악인
성별
대표경력 지방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출생 시기/일시 1938년 12월 11일연표보기 - 전원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94년 - 전원관 인천 무형문화재 제3호 「인천 근해 갯가 노래·뱃노래」의 어선 뱃노래 보유자로 지정
몰년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 전원관 사망
출생지 전원관 출생지 - 황해도 옹진군 봉구면 무도리

[정의]

인천광역시에서 활동하였던 인천 지방 무형문화재 제3호 「인천 근해 갯가 노래·뱃노래」의 기능 보유자.

[개설]

인천광역시는 바다에 접하고 있어 예로부터 어업 활동이 활발한 지역으로, 이에 따라 어업과 관련된 노동요도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갯가 노래와 뱃노래인데, 인천광역시는 1998년 이 노래들을 지방 무형문화재 3호로 지정하였다. 인천 무형문화재 종합 전수 교육관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건립될 예정이다.

[활동 사항]

전원관(全元寬)[1938~2010]은 「인천 근해 갯가 노래·뱃노래」의 기능 보유자 중 한 명으로, 1994년 지정되었다. 전원관은 뱃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한을 담은 노래를 전수했다. 옛 황해도 옹진군 봉구면 무도리에서 태어나 조상 대대로 뱃일을 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뱃노래를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전원관은 서해의 섬인 덕적도에서 선주로 일하며 뱃노래를 불렀고, 그 뱃노래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전원관의 보유 종목은 어선에서 주로 불리던 노 젖는 소리와 닻 감는 소리이다. 전원관는 「인천 근해 갯가 노래·뱃노래」의 보존 회장을 맡으며 정기 공연과 초청 공연을 진행하는 한편, 일반인에게도 뱃노래를 전수하였다.

원래 「인천 근해 갯가 노래·뱃노래」의 전승자는 「바디 소리」의 명창이었던 고초재(高初才)였다. 그가 타계하고 차영녀(車英女)가 갯가 노래[「나나리 타령」, 「군음 소리」]로, 1989년 송의신(宋義信)과 1992년 김병기(金炳基)가 시선 뱃노래로, 1994년 전원관과 조두영(趙斗永)이 어선 뱃노래 보유자로 지정되어 맥을 이어 왔다.

[저술 및 작품]

전원관의 뱃노래는 『인천의 무형문화재 자료집』 첫 번째 시디 13번 트랙에 「나무 타령」이 수록되어 있고, 『인천의 소리, 생명의 노래』 두 번째 시디에 ‘인천 근해 뱃노래’ 파트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MBC 한국 민요 대전 사업 10년의 결실로 만들어진 민요 선집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 다섯 번째 시디 ‘어로요’ 파트 1번 트랙에 「뱃고사 소리」와 4번 트랙에 「만선 풍장 소리」가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뱃노래 예능 보유자-전원관」 (『인천 일보』, 1998. 12. 9)
  • 인천 예총 국악 회관(http://www.kukakhall.co.kr)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MBC 민요 대전 -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http://www.urisor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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