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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287
한자 徐一成
이칭/별칭 서일성(徐一星),서일성(徐日星)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손민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연극배우
성별
대표경력 문화 공작단 단장
출생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서일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0년대 - 서일성 극예술 연구회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40년대 - 서일성 조선 연극 협회 임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40년대 - 서일성 예원좌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서일성 조선 연극 협회 주관 연극 경연 대회에서 연기상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50년연표보기 - 서일성 사망
출생지 서일성 출생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연극배우.

[활동 사항]

서일성[1906~1950]은 20세기 초중반 당대 최정상의 연극배우이다. 서일성에 대한 기록은 상세하게 남아 있지 않고, 남아 있는 기록조차도 정확하다고 할 수 없다. 하물며 한문 이름도 徐一成, 徐一星, 徐日星이라는 기록이 혼재하고 있고, 출생은 1906년이라 하거나 미상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서일성이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서 태어나 인천 상업 학교[현 인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하지만, 학적부에 이름이 확인되지 않아 서일성이 인천 상업 학교를 다녔는지는 불분명하다.

서일성은 유랑 극단을 따라다니며 연극을 배우다가, 1925년 토월회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서일성은 큰 체구에 발성이 뛰어났고,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1930년대에는 극예술 연구회에 참가하였고 애관 극장, 동양 극장, 연극 시장, 아랑, 백화 등의 극장 및 극단에서 활동했다. 1940년대 그는 변사들이 주축으로 활동하던 예원좌로 스카우트되었다. 당시 김조성은 서일성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1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서일성이 얼마나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서일성은 조선 연극 협회 임원으로 활동하였고, 1942년 조선 연극 협회가 주관한 연극 경연 대회에서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광복 직후에는 좌익 계열의 극단인 낙랑 극회를 조직하였고, 조선 프롤레타리아 연극 동맹이 조직한 문화 공작단의 단장을 맡기도 했다.

6·25 전쟁이 발생하기 전 서일성은 고향인 인천에 와서 장사를 했다. 이때 지역 경찰서의 문화 분과 명예 위원을 역임하였다. 이런 경력 때문에 그는 전쟁 기간에 주안에서 조선 인민군에 의해 총살당했다고 전한다. 한편 그가 처가가 있는 충청남도 서산 혹은 논산에서 숨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친일 인명사전 편찬 위원회가 쓰고 민족 문제 연구소가 출간한 『친일 인명사전』[2009]의 문화/예술 분야에 수록되어 있다.

[저술 및 작품]

서일성이 출연한 작품으로는 「부활」, 「오로라」, 「춘향전」, 「박쥐의 집」, 「백의민족」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서일성은 1942년 조선 연극 협회가 주최한 연극 경연 대회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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