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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기계 제작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822
한자 仁川機械製作所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염전로 27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주식회사
설립자 장만순
이전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인천 기계 제작소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에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천 기계 산업 단지 이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5년 - 인천 기계 제작소 농업용 물뿌리개 일본 수출
최초 설립지 인천 기계 제작소 - 인천광역시 중구 북서동
주소 변경 이력 인천 기계 제작소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염전로 270[도화동 699]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었던 산업 기계 제조업체.

[설립목적]

인천 기계 제작소는 일본인 귀속 재산 불하 기업으로 금속 공작 기계 및 산업 기계 생산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에 있던 인천 기계 제작소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인천 기계 산업 단지에 초기 입주하여 1980년대 중반까지 산업 기계를 제작하였다. 설립자 장만순은 1960년대 말 경인 기계 협동 조합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인천 상공 회의소와 함께 현 인천 기계 산업 단지 개발 계획을 주도하여 성공적으로 산업 단지를 조성한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인천 기계 산업 단지의 부지 확보를 위한 주안 염전 매립과 조성 자금 확보, 공장 유지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주도하였다.

매립이 완료된 후 1973년 인천 기계 산업 단지에 입주하여 금속 공작 기계, 산업 기계를 생산하였다. 농업용 물뿌리개를 개발, 제작하여 1974년 일본 규슈 소재 유다카 회사에 520개[2,300달러]를 수출하고, 1975년 2차로 8,000개[3만 2000달러]를 수출하는 등 1970년대에 수출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1984년 이후부터 『공업 공단 총람』에 생산 활동과 관련한 현황 및 실적이 나타나지 않아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심각한 경제 침체기에 자금 압박으로 경영 위기에 처하여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추측된다.

[현황]

인천 기계 산업 단지 관리 공단이 보관하고 있는 내부 자료에 의하면 인천 기계 제작소는 1991년 2월까지 입주 업체로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기계 산업 단지 개발 사업을 주도하였던 기업체였으나 2012년 이후 지역 상공 단체 명단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등기도 청산 종결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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