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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 오도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624
한자 以北五道民
이칭/별칭 이북 5도민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개념 용어(일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7년 3월 16일 - 황해회 인천 지부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8년 9월 - 인천 지구 평안도 도민회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3년 10월 - 인천 지구 함경도 도민회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6년 4월 17일 - 인천 지구 평안도 도민회 재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 1월 26일 - 인천 지구 평안남도 도민회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 4월 19일 - 인천 지구 평안북도 도민회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2년 -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연합회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2년 3월 4일 - 이북 오도 위원회 인천사무소 개소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 인천 지구 이북도민회 연합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수봉 공원 내에 망배단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4월 1일 - 인천 지구 함경북도 도민회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10월 26일 - 인천 지구 함경남도 도민회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8월 27일 -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청년 연합회 창립
행사 장소 망배단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숭의 공원지도보기

[정의]

8·15 광복 후부터 6·25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북한에서 남하하여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비롯한 인천광역시 전역에 정착해 거주하는 북한 출신 주민들.

[개설]

8·15 광복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인천 지역에는 북한으로부터 많은 주민이 남하하여 정착해 왔다. 특히 인천 지역에는 황해도에서 이주한 정착민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인천광역시에 거주하는 이북 오도민의 수는 대략 70여 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천 지역의 이북 오도민은 출신지에 따라 도민회를 결성하여 왔으며 현재 인천광역시에는 인천 지구 황해도 도민회, 인천 지구 평안남도 도민회, 인천 지구 평안북도 도민회, 인천 지구 함경남도 도민회, 인천 지구 함경북도 도민회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북 오도 위원회 인천 사무소]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이북 오도민에 대한 지원과 관리를 위해 1949년 5월 23일에는 이북 오도청이 개청되었다. 이후 1962년 7월 16일 ‘이북 오도 위원회 규정’을 공포하여 이북 오도의 사무를 관장하는 이북 오도 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였고 1967년에는 이북 오도 위원회와의 연락 사무 등 사무 처리에 필요한 시·도 연락 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인천광역시에는 1982년 3월 4일 이북 오도 위원회 인천 사무소가 이북 오도 위원회 경기 사무소로부터 분리하여 개소하였다.

이북 오도 위원회 인천 사무소는 인천 지역 이북 오도민 단체들을 지원·육성하는 사업을 비롯해 민원 업무 등을 처리하고 있다. 2012년 현재 이북 오도 위원회 인천 사무소는 행정 안전부에 소속되어 있다.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2012년 현재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는 모두 다섯 개 단체로, 인천 지구 황해도 도민회, 인천 지구 평안남도 도민회, 인천 지구 평안북도 도민회, 인천 지구 함경남도 도민회, 인천 지구 함경북도 도민회 등이다. 본래 1981년까지는 인천 지구 황해도 도민회, 인천 지구 평안도 도민회, 인천 지구 함경도 도민회 등 세 개 단체로 운영하여 오다가 1982년 인천 지구 평안도 도민회가 인천 지구 평안남도 도민회와 인천 지구 평안북도 도민회로 나뉘고, 같은 해 인천 지구 함경도 도민회가 인천 지구 함경남도 도민회와 인천 지구 함경북도 도민회로 나뉘면서 지금에 이른다.

1. 인천 지구 황해도 도민회

인천 지구 황해도 도민회는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결성된 단체로, 1947년 3월 16일 인천시청의 공보관에서 결성 대회를 개최하며 출범한 황해회 인천 지부를 전신으로 한다. 1947년 당시 초대 회장은 황해도 해주 출신 함효영이었고 인천 지역에 거주하는 황해도민 수는 1,780가구 정도였다. 황해회 인천 지부는 1963년 제4대 회장으로 유승원이 취임하면서 명칭을 인천 지구 황해도 도민회로 개칭하였다.

2. 인천 지구 평안도 도민회

인천 지구 평안도 도민회는 1948년 9월, 당시 인천시의 시장이었던 박학전과 경기 도립 병원 원장 김승수, 제물포 고등학교 교장 길영희 등이 중심이 되어 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자유 공원에서 200여 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출범하였다. 초대 회장은 문의희였다. 그러나 얼마 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1958년 당시 박학전 시장과 경기도 경찰국 이하영이 중심이 되어 을지 구락부(乙支俱樂部)를 결성하여 평안도 도민회를 대신하여 활동을 전개했으며, 이후 1976년 4월 17일 인천시청의 공보관에서 재건 평안도 도민회 창립총회를 갖고 인천 지구 평안도 도민회를 재조직하였다. 인천 지구 평안도 도민회는 1980년 초 인천 지구 평안남도 도민회와 인천 지구 평안북도 도민회로 분리되었다.

인천 지구 평안남도 도민회는 1979년 말 인천 지구 평안도 도민회 이사회에서 인천 지구 평안남도 도민회와 인천 지구 평안북도 도민회로 분리하는 안건이 의결된 후, 1980년 1월 26일 당시 인천시 중구 경동의 음식점 평화각에서 1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 지구 평안남도 도민회 결성식을 개최하며 출범하였다. 초대 회장은 경기 후생 병원 원장 이승휘였으며 간사장은 김영일이었다.

인천 지구 평안북도 도민회는 1979년 말 인천 지구 평안도 도민회 이사회에서 분리 안건이 의결된 후 1980년 4월 19일 당시 인천시 중구 경동의 음식점 동천홍(東天紅)에서 도민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 지구 평안북도 도민회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출범하였다. 초대 회장은 이희진이었다.

3. 인천 지구 함경도 도민회

인천 지구 함경도 도민회는 1953년 10월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수봉 공원에서 도민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 지구 함경도 도민회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출범하였다. 초대 회장은 이중설이었다. 인천 지구 함경도 도민회는 1988년 인천 지구 함경북도 도민회와 인천 지구 함경남도 도민회로 분리되었다.

인천 지구 함경남도 도민회는 1988년 10월 26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출범하였고, 초대 회장은 원중희였다.

인천 지구 함경북도 도민회는 1988년 4월 1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출범하였고, 초대 회장은 김길봉이었다.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연합회]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연합회는 1982년 인천 지구 황해도 도민회, 인천 지구 평안남도 도민회, 인천 지구 평안북도 도민회, 인천 지구 함경남도 도민회, 인천 지구 함경북도 도민회를 주축으로 하여 창립되었다. 창립 당시는 인천 지구 이북 오도민 연합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나, 이후에 경기도·강원도 등의 미(未)수복 지구에 속하는 도민회가 가입함에 따라 중앙의 이북 오도민 연합회가 이북 도민 연합회로 명칭이 바뀌면서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연합회로 이름을 바꿨다.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연합회는 1988년 12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수봉 공원 내에 망배단을 건립하여 해마다 설날, 한식, 추석 때에는 이곳에서 망향제를 열고 있으며 2006년부터는 매년 ‘이북 도민 고향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연합회의 회장은 각 도민회 회장들이 순번제로 1년 임기로 맡고 있으며 초대 회장은 인천 지구 평안남도 도민회 이승휘였다.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청년 연합회]

이북 오도민의 2세대를 중심으로 한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청년 연합회가 2011년 8월 27일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출범하였다. 인천 지구 이북 도민회 청년 연합회는 이북 오도민 2·3세대를 대상으로 하여 문화 행사, 안보 교육, 향토 교육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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