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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 이씨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614
한자 廢妃李氏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왕비
성별
본관 인주[지금의 인천시]

[정의]

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출신의 왕비로 이자겸의 셋째 딸과 넷째 딸..

[가계]

증조할아버지는 이자연(李子淵)[1003~1061]이며, 할아버지는 경원백(慶源伯) 이호(李顥)이고, 아버지는 예종(睿宗)인종(仁宗)의 장인인 이자겸(李資謙)[?~1126]이다. 여자 형제로 예종의 비(妃)가 되는 순덕 왕후(順德王后)가 있고 남자 형제로는 이지미(李之美), 이공의(李公儀), 이지언(李之彦), 이지보(李之甫), 이지윤(李之允), 이지원(李之元), 이의장(李義莊)이 있다.

[활동 사항]

이자겸은 다른 성씨에게 왕비 자리를 내주면 권력이 분산될 것을 염려하여 그의 둘째 딸은 예종에게 시집을 보내고, 셋째 딸과 넷째 딸은 인종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러나 1126년(인종 4)에 이자겸인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차지하려 난을 일으켰을 때 부하 척준경(拓俊京)[?~1144]의 배신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인종이자겸이자겸의 처 최 씨, 아들 이지윤을 영광으로 유배하고, 이지미를 합주, 이공의를 진도, 이지언을 거제, 이지보를 삼척, 이지원을 함종, 이의장을 삼척으로 각각 유배하였으며 그 외 함문지후 박표 등 일당 30여 명과 관사노 90여 명을 원지(遠地)에 유배하였다. 그리고 이자겸의셋째 딸과 넷째 딸도 모두 왕비에서 폐비되었다.

이자겸의 셋째 딸인 폐비 이씨[?~1139]는 고려 제 17대 인종의 왕비로 넷째 딸 폐비 이씨[?~1195] 이자겸이 축출되고 난 후 1126년(인종 4년) 음력 6월 20일[3], 신하들이 '궁주는 왕의 종모(從母)이니 왕비가 될 수 없다.'라고 간언하여 언니 폐비 이씨와 함께 폐위되었다. 1195년(명종 25년)에 소생 없이 죽었다. 그녀의 장례는 왕후의 예에 맞춰 진행되었다. 하지만 4녀인 폐비 이씨(廢妃 李氏)이자겸이 독병·독약 등을 올려 두 번이나 인종을 해하려고 할 때마다 밀백과 복완으로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한 공로가 있어 인종이 전택과 노비를 하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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