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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346
한자 馬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
집필자 이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B.C. 2세기 초 또는 B.C. 3세기 말 - 마한 왕국의 건립 또는 마한 성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4세기 이후 - 마한의 잔여 소국 백제에게 평정

[정의]

삼한(三韓)의 하나로,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경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을 포함해 한강 유역과 지금의 충청도·전라도에 분포되어 있던 여러 정치 집단의 통칭.

[개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에는 마한(馬韓) 지역에 위치한 54개 소국의 명칭이 열기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 작은 것은 수천 가(家)였다고 한다.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 작은 곳의 지배자는 읍차(邑借)라고 하였다.

[영역]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에는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와 접하여 있다.”라고 하였으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한(韓)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경하니 (중략) 마한은 서쪽에 위치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들로 보아 마한이 한반도 서남부, 즉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주로 위치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립 시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후(侯) 준(準)이 참람하게 왕이라 일컫다가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衛滿)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다. (중략) 준왕은 그의 근신과 궁인들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바다를 경유하여 한의 지역에 거주하면서 스스로 한왕이라 칭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서 준왕이 바다를 경유하여 한의 지역으로 내려 온 시기는 기원전 198년이다. 이에 근거하여 기원전 2세기 초, 준왕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마한 왕국을 세웠다고 보는 견해가 존재한다. 반면 마한은 준왕이 남하해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기도 하여 기원전 3세기 말에는 마한이 성립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소멸 시기]

『일본 서기』 권9, 신공왕후 49년 조에는 “또한 군사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古奚津)에 이르러 남만의 침미다례(忱彌多禮)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니, 그 왕 초고(肖古)와 왕자 귀수(貴須)가 또한 군사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그때에 비리(比利), 벽중(辟中), 지반(支半), 고사(古四)의 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공왕후 49년은 서기 249년에 해당하지만, 초고왕귀수왕이 각기 근초고왕근구수왕에 해당하기 때문에 신공기(神功紀)의 기년(紀年)은 120년을 더해야 한다. 따라서 이 기사는 서기 360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록에 근거하여 4세기 이후에 마한의 잔여 소국들, 즉 전라도 일대가 백제에게 평정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인천과 마한 목지국]

『삼국지』 동이전에는 “진왕(辰王)은 월지국(月支國)을 다스렸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삼국지』에서는 월지국(月支國)으로 되어 있으나 『한원(翰苑)』에 인용된 『위략(魏略)』이나 『후한서』 등에는 목지국(目支國)으로 명기되어 있다. 따라서 ‘월(月)’은 ‘목(目)’의 오자임이 분명하다. 목지국은 마한 소국 가운데 한때 가장 강한 위치에 있었으나 현재 목지국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정약용은 『강역고(疆域考)』를 저술하면서 준왕의 남하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는 익산을 목지국으로 비정하였고, 이후 이병도는 직산에 비정하였다. 한편 천관우는 목지국을 인천 즉 미추홀로 비정하였다. 천관우는 진왕을 백제의 왕으로 해석하여 “진왕이 목지국을 다스렸다.”라고 하는 것은 온조계가 아닌 비류계의 고이왕(古爾王)이, 그 전래의 본거지인 인천을 중심으로 하여, 지금의 서울 강남의 백제국(伯濟國)을 포함한 당시의 백제 전역[임진강 이남의 경기도 지역과 그 주변으로 추정]을 지배한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근거로 ‘미추’가 ‘목지’의 동음이자임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인천 지역을 목지국으로 비정하는 설은 크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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