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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276
한자 風水地理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집필자 원종수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땅에 관한 이론.

[개설]

풍수지리는 한국의 공간적인 전통문화 중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뿌리가 깊고, 문화 경관의 입지나 주거지 선정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미쳐 왔다. 자연 환경의 질서와 이치를 생명의 원리로 인식하고 이를 논리 정연한 학문적 체계로 이해하며, 땅에 대한 이치를 분석·평가해 이를 과학으로 정립하려는 견해가 바로 풍수지리이다.

풍수라는 단어는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비롯된 것이며, 장풍득수라는 말은 배산임수(背山臨水)와도 통한다. 즉, 바람[風]은 가두고 물[水]은 얻을 수 있는[得水] 곳을 가장 기가 왕성한 곳으로 본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풍수를 살피는 일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삶을 이루었던 주민들의 생활과 태도를 이해하는 일이며, 지역 주민들이 해당 지역의 구체적 환경에 어떻게 이상적으로 적응하고 최적의 입지 조건을 구비하고자 노력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풍수적 특성]

인천광역시 경내 한남정맥 중 제일 긴 지맥은 만월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미추홀구 지역의 수봉산, 승학산, 문학산[232m]을 이루고 다시 연수구 지역의 청량산으로 이어진다.

수봉산을 중심으로 도화동, 용현동, 숭의동이 위치하고 있으며, 문학산인천도호부의 남쪽에 있다 하여 남산, 학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 학산,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어서 봉화독산이라고 불렸으며, 이 밖에도 성산, 배꼽산 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미추홀구 지역의 진산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학산은 이미 기원전부터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 건국설화에 비류미추홀에 도읍했다는 사실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여지도서(與地圖書)』 인천도호부 고적 조에는 “문학산 정상은 미추왕(비류)의 고도(古都)”라 하였고, 안정복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문학산 위에는 비류의 성기(成基)가 있고 성문의 비판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성내에는 비류가 파놓은 우물이 남아 있다.”라고 서술하면서 “『동국여지승람』에 그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을 개탄한다.”라고 아쉬워했다. 『세종대왕실록』에도 “인천에 성이 있어 이곳을 미추홀 고성 혹은 남산 고성이라고 불렀는데 성내엔 작은 샘도 있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렇듯 문학산은 비류백제 때부터 인천 지역에서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다.

문학산 정상에 처음 비류가 쌓았던 성은 여러 차례 보강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1492년 임진왜란 때 인천 부사 김민선이 성을 수리하여 사민을 거느리고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당시 왜군들은 문학산성 동문 밖 1백여 보 떨어진 곳에 주둔했는데, 수리봉 부근에는 왜적들이 쌓았다는 왜성 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문학산성은 약 220m 정도가 남아 있어 인천광역시 기념물 1호로 지정돼 있다. 문학산 정상에는 김민선 장군의 영혼을 기리는 사당인 안관당이 있었다. 인천도호부 주변 마을 사람들은 매년 두 번씩 제사를 올렸으며, 일제 강점기 때 안관당이 불타 버린 뒤에도 안관당제를 유지해 왔으나, 문학산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미추홀구 지역의 풍수적 기운은 문학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산과 잇닿은 승학산에는 향교와 인천도호부가 자리 잡고 있다. 승학산을 중심으로 관교동, 주안동, 문학동이 위치하고 있고, 승학산문학산은 서로 마주보며 안산과 주산을 이루고 있어 이 지역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풍수적으로 가장 보국이 잘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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