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1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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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殷鎬 |
이칭/별칭 | 이당(以堂),양은(良殷)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손민환 |
성격 |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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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상산(商山) |
대표경력 | 어진 화가(御眞畵家)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6월 24일 - 김은호 출생 |
수학 시기/일시 | 1908년 - 김은호 인천 사립 인흥 학교 측량과 졸업 |
수학 시기/일시 | 1912년 - 김은호 경성 서화 미술원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25년 - 김은호 일본 도쿄 우에노 미술 학교에서 수학 |
활동 시기/일시 | 1915년 - 김은호 고종 어진 제작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김은호 제국 미술전 입선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김은호 순종 어진 제작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김은호 조선 미술 전시회 특선 |
활동 시기/일시 | 1955년 - 김은호 3·1 문화상 본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71년 - 김은호 대통령장 문화훈장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1979년 2월 7일 - 김은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9년 - 이당 기념관 개관 |
출생지 | 관교동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출신의 어진 화가(御眞畵家).
[개설]
김은호는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화가이다. 특히 김은호는 인물화의 대가로 불리며,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활동 사항]
김은호(金殷鎬)[1892~1979]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서 태어나, 인천 관립 일어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집안이 몰락하자 자퇴 후 인천 사립 인흥 학교 측량과에 입학하여 1908년 졸업하였다. 1909년 서울특별시 남대문 인근으로 집을 옮겨 이발소 잡역, 인쇄소 직공, 임시 측량 기사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김은호는 1912년 경성 서화 미술원(京城書畵美術院) 2기생으로 입학하여 3년간 수학하였고, 1915년 어진 화가(御眞畵家)로 채용되어 고종의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김은호는 1919년 3·1 운동 때는 ‘독립 신문’을 배포한 죄로 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 후 1925년 일본 도쿄 우에노 미술 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28년에는 순종의 어진을 제작하였다.
김은호는 인물화로 유명해지자 당대의 상류층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고,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하지만 1937년 발표한 「금차봉납도」가 친일 작품이라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김은호는 2009년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 인명 사전』 문화/예술 분야에 수록되어 있다.
김은호는 해방 후 1948년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 추천 작가 자격으로 출품하기도 하였으며, 그 뒤에도 계속하여 추천 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화단에 영향력을 끼쳤다. 김은호는 작품 활동은 물론 제자 양성에도 힘썼는데, 김은호의 제자들은 1937년 후소회(後素會)를 결성하여 한국 화단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
[저술 및 작품]
김은호는 1915년 고종의 어진, 1928년 순종의 어진을 그리는 등 어진화가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민영휘 초상」, 「수접미인도」, 「아이야 저리 가자」, 「춘향의 상」, 「이 충무공상」, 「논개상」, 「안중근상」, 「엘리자베드 여왕상」, 「승무(僧舞)」, 「간성(看星)」, 「군리도(群鯉圖)」, 「매란방(梅蘭房)」 등 수많은 작품들을 그렸다.
김은호의 작품은 북종 화법의 전통을 기반으로 독특한 채색 북화를 완성한 것으로, 당대 인물화 분야에서 최고의 화백으로 평가받고 있다.
[묘소]
김은호가 사망하자 세종 문화 회관 별관에서 한국 미술 협회장으로 장례가 거행되었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로 예정되었다는 부고 기사는 전하나 현재 그 위치를 찾을 수 없다.
[상훈과 추모]
김은호는 1924년 제국 미술전에서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1928년 조선 미술 전시회에서 특선을 수상하는 등 수 차례 수상하였다. 특히 1955년 3·1 문화상 본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1971년 대통령장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1979년 김은호의 제자들은 김은호의 예술혼을 기리고 그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에 이당 기념관을 만들었다. 이 기념관은 10년간 운영되었으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