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1108 |
---|---|
한자 | 金殷鎬自畵像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미술과 공예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정희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출신인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1926년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
[개설]
조선 시대 마지막 어진 화가(御眞畫家)로 명성이 높았던 김은호는 인천의 구읍지인 향교리[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서 음력 1892년 6월 24일 태어났다. 김은호는 1912년 서화 미술회[1911년에 설립되었던 미술 교육 기관] 화과(畵科)에 입학하여 조석진(趙錫晉), 안중식(安中植)의 제자로 전통 회화의 여러 기법을 배웠으며 서과(書科) 과정도 거쳤다. 김은호는 1925년 변관식(卞寬植)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하여 신 일본 화법을 배우고 돌아와 인물화와 화조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김은호는 1930년대부터는 낙청헌(洛靑軒)이라는 화숙(畵塾)을 열어 동양화가 2세대를 배출하는 등 후진 양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김은호는 1937년부터는 조선 미술 전람회 초대 작가에 올랐고,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초대 작가 및 심사 위원, 수도 여자 사범 대학 명예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김은호는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다 1979년 2월 7일 88세로 타계하였다.
김은호는 이충무공상(李忠武公像), 의기 논개상(義妓論介像), 신사임당상(申師任堂像)과 이이상(李珥像), 안중근 의사 영정(安重根義士影幀), 이영남 장군 사당(李英男將軍祠堂)의 영정 등 역사상의 주요 인물상을 무수히 제작하였다. 김은호는 창작과 후진 양성에 끼친 공로로 1962년 문화 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1965년에 3·1 문화상, 1968년에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형태]
「김은호 자화상」은 가로 36.5㎝, 세로 44.5㎝의 크기이며, 캔버스에 유화이다.
[내용]
「김은호 자화상」은 1925년부터 1928년까지, 김은호가 일본 유학 생활 중에 그린 작품이다. 캔버스에 그리는 유화의 기법과 특질을 파악하기 위하여 그려본 작품으로 두루마기를 입고 의자에 앉아 오른손을 의자 등받이에 올려놓고 있는 옆모습을 묘사하였다.
[특징]
「김은호 자화상」은 어떤 재료에도 구애받지 않는 김은호의 회화 기술을 보여주고 있으며, 김은호 예술의 독자적 양식에 신념과 확신을 굳혀 주었다.
[의의와 평가]
김은호는 조선 회화의 전통 화법을 현대 화단에 전수하고 보급시킨 가교 역할을 담당한 화가로서 한국 회화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