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부 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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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에 편찬된 인천부를 포함한 경기도 지역의 읍지. 경기도 35개 군현의 읍지를 총합한 편찬물로, 6책의 필사본이다. 편찬 시기는 읍지의 서명에 ‘동치(同治) 10년’으로 연호를 밝힌 경우가 있어서 1871년(고종 8)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각 군현별 읍지의 가장 마지막에 해당 지역 지방관의 수결(手決)이 있어서 각 군현에서 제작한 읍지를 합편한 것임을 알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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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의 옛 모습을 그린 전통 시대 지도의 총칭. 고지도는 작성 연대가 오래되고[전통 시대], 투영·제작법이 현대의 지도와는 구별되는 회화적(繪畫的) 성격을 지닌 과거의 지도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 지도는 주로 국방이나 행정의 목적으로 제작되어, 국가 통치의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었다.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이미 지도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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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일. 관광이라는 말은 『역경(易經)』의 “관국지광 이용빈간왕(觀國之光 利用貧干王)”이라는 구절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이 구절에서 관광은 한 나라의 자연, 풍광, 문물, 제도, 풍습 등을 보고 느낌으로써 견문을 넓히고 경험을 쌓는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서양에서 관광이라는 용어는 ‘Traveling’,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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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달부(達夫)이다. 아버지는 김상겸(金尙謙), 할아버지는 김석경(金碩卿), 증조할아버지는 김한수(金漢秀)이다. 어머니는 정건(鄭鍵)의 딸이다. 김민선(金敏善)[1542~1592]은 1542년(중종 37)에 경기도 부평 도호부 지역에서 태어났다. 1564년(명종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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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부에 묘소가 있다고 전하는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현보(賢甫)이다. 아버지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김신민(金新民), 할아버지는 김중성(金仲誠), 증조할아버지는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이다. 어머니는 홍수명(洪守命)의 딸이다. 김승경(金升卿)[1430~1493]은 1453년(단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6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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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중례(仲禮), 호는 청사(淸沙) 또는 허주자(虛舟子),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김구(金構), 할아버지는 김징(金澄)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극형(金克亨)이다. 어머니는 돈녕도정을 지낸 이몽석(李夢錫)의 딸이다.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김치인(金致仁)이다. 김재로(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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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었던 섬. 낙섬은 수십 년 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던 섬으로 원래 이름은 원도(猿島)이다. 조선 시대에는 원도에서 서해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섬의 형태가 원숭이 모양이어서 이름이 원도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낙섬이라는 명칭은 이 주변이 온통 갯벌과 염전으로 뒤덮여 있던 시절,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낙섬’이라 불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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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일명 신기촌 일대에 있었던 큰 연못. 조선 시대 발간된 여러 종의 인천 지지(地誌)자료를 살펴보아도 대제(大堤)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천 조에 ‘대지(大池)’가 소개되어 있고, 그 풀이에 ‘대(大)는 방언의 한(韓), 한(漢), 한[干]과 음과 뜻이 같다’라 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여지도서(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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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다고 전해지는 비류(沸流)의 무덤. 미추왕릉(彌鄒王陵)의 존재를 전하는 문헌 기록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4 여지고(輿地考) 2 비류국 조(沸流國條)에는 관아에서 남쪽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해변 가까운 구릉에 미추왕릉이 있다고 하였다. 한편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총묘 조(塚墓條)에서는 미추왕릉이 남산, 곧 지금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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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에 묘소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이며, 자는 중길(仲吉), 호는 한천(寒泉) 또는 삼곡(三谷)이다. 아버지는 장령 박사공(朴思恭)이고, 어머니는 윤징(尹澂)의 여식인 무송 윤씨(茂松尹氏)이다. 심우선(沈友善)의 딸인 청송 심씨(靑松沈氏)와 혼인하였다. 박경신(朴慶新)[1560~1626]은 15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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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에 묘소를 조성했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초명은 상덕(相德), 자는 여수(汝受)이다. 아버지는 진사 박흥원(朴興源)이고, 어머니는 종실(宗室)인 청릉군(靑陵君) 이모(李模)의 딸이다. 그리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역임한 박종악(朴宗岳)과 동기간이다. 박종덕(朴宗德)[1724~1779]은 1746년(영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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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 읍지(仁川府 邑誌)』 인물 조에 등장하는 열녀 이씨의 남편이자 조선 후기에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윤보(潤甫), 호는 규봉(圭峰)이다. 아버지는 심대형(沈大亨), 할아버지는 심암(沈岩), 증조할아버지는 심의겸(沈義謙)이며, 외할아버지는 한중겸(韓重謙)이다. 심연(沈演)[1587~1646]은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한 후, 1624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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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인천에 관한 지리지인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의 인물조 충신에 보이는 무신. 본관은 낙안(樂安), 오연(吳連)의 생몰년은 미상이다. 오연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에 호성 공신(扈聖功臣) 3등(三等) 석성군(石城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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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던 조선 시대 국왕의 안위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제단의 터. 원도(猿島)는 낙섬이라 불리던 인천의 섬으로 여기에는 조선 시대 왕의 안위와 백성의 안녕을 위하여 악해독(嶽海瀆)[나라에서 신성하게 여겨 제사를 지내던 큰 산과 바다와 강] 등의 산천에 봄, 가을로 제사하던 곳의 하나이다. 원도의 제사는 지방 관아에서 주재하는 주현제(州縣祭)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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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이고, 자는 화보(和甫)이다. 아버지는 행군기시 주부(行軍器寺主簿)를 지낸 통훈대부(通訓大夫) 이사성(李思誠)이다. 이조(李調)[1521~?]는 서울에 거주하였고, 1561년(명종 16) 식년시(式年試)에 3등(三等) 38위로 합격하였다. 이조의 활동을 확인할 만한 기록은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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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용정 근린공원에서 조선 시대 때 지내던 원도사제를 재현하는 행사. 원도(猿島)는 20세기 초까지 썰물 때면 걸어서도 왕래가 가능한 곳으로 ‘낙섬’이라 불렸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천 시민들이 해수욕과 낚시를 즐기던 곳이다. 이후 조성된 염전이 1966년까지 명맥을 유지하다 매립되어 대규모 택지 개발로 주택 단지가 들어서 원래의 모습이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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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 구(區)는 서울특별시, 5대 광역시 및 인구 5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설치되는 하부 행정 구역으로, 국가가 위임한 사무를 처리하는 보통 행정 구역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도화동(道禾洞), 숭의동(崇義洞), 용현동(龍現洞), 학익동(鶴翼洞), 주안동(朱安洞), 관교동(官校洞), 문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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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조선 시대 인천도호부의 관아. 인천도호부 관아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문학 초등학교 내에 있다. 인천도호부 관아의 건축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객사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기와의 ‘강희 16년’이라는 명문(銘文)으로 볼 때 1677년(숙종 3)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어 그 이전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는 정면 6칸, 측면 3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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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고 있는 1899년에 편찬된 인천부의 읍지. 전통 시대 관찬 지리지의 편찬은 국가의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고 각 지역의 환경, 역사적 상황을 파악하여 원활한 통치 행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조선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를 시작으로 하여 중종 대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완성하였고, 영조 대에는 전국적으로 읍지를 총합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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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인천 역사 문화 관련 사단 법인 연구소. 인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와 교육을 위한 학술 연구 단체로서 전문 연구원들의 활동이 그 중심축으로 설정되어 있다. 인천사 연구소는 인천사의 폭넓은 연구, 인천 관련 교육, 인천 관련 연구자들과의 적극적이고 폭넓은 교류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인천사 연구소는 2004년 12월 18일 인천광역시 남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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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관아에 자신이 직접 지은 시를 걸어 놓도록 했던 임금. 영조의 둘째 아들인 장헌 세자[사도 세자]와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인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2년 청원 부원군(淸原府院君) 김시묵(金時默)의 딸 효의 왕후(孝懿王后)를 맞아 가례를 치렀으며, 후궁으로는 의빈 성씨(宜嬪 成氏)[1753~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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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세거하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사람들이 모여 이룬 마을. 집성촌(集姓村)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마을을 가리킨다. 집성촌은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 이미 형성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촌락을 형성한 것은 17세기 이후로 보인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경우에는 인천 이씨, 부평 이씨 등 인천을 본관으로 둔 성씨들이 고려 시대부터 등장하므로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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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출신이거나 연고를 둔 자로서 국가와 왕을 위해 충성을 바친 사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문학산 주변에서 고인돌을 중심으로 한 청동기 시대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시대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와 연고를 갖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박약하여 충신을 살펴보기 어렵다. 다만, 『인천부 읍지(仁川府 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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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고려 시대 사찰 터.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학림사라는 절의 터이다. 1945년 5월 조사로 발견된 기와 조각의 명문을 통해 1317년(충숙왕 4)에 중수되었던 사찰로 보고 있다. 학림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등에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그 변천 과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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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인천광역시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학림사(鶴林寺)의 터에서 출토된 유물. 학림사는 1945년 5월 조사로 발견된 기와 조각의 명문(銘文)을 통해 1317년(충숙왕 4)에 중수된 사찰로 보고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등에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그 변천 과정은 알 수 없다. 학림사지 출토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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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할아버지는 한혜(韓惠)이며, 아버지는 한계미(漢繼美)이다. 한금의 부인은 세종의 총애를 받은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의 딸이며, 아들은 예조 좌랑(禮曺佐郞)을 역임한 한형신(韓亨信)이다. 한금(韓嵚)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세기 말에 편찬된 『인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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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는 인천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해 낸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향토지는 처음에는 향토사 개념으로 출발하여 그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서술하고 그 지역의 인물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방사를 하나의 독립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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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 이조이가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열녀 편에 등재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이 양천(陽川)이며, 자는 미숙(美叔)이고, 호는 하곡(荷谷)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허엽(許曄)이고, 할아버지는 허한(許澣)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허담(許聃)이다. 어머니는 둘째 부인인 강릉 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 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형(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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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 출신이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효(孝)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유교의 도리 중 하나로 충과 함께 중요시하였다. 가계(家系)의 연속을 중요하게 여긴 전통 가족 제도 아래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자 관계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일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