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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675
한자 時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집필자 김덕묵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5월 또는 10월에 5대조 이상의 조상을 받드는 제사.

[개설]

시제(時祭) 는 대개 시월에 조상의 산소에서 지내는 묘제이다. 보통 고조 고위(高祖考位)까지는 집안에서 기제를 지내지만 그 이상이 되는 오대조 이상은 묘제(墓祭)에서 봉사(奉祀)한다. 예서(禮書)에는 묘제는 연 4회, 즉 청명(淸明)[이십사절기의 하나. 춘분(春分)과 곡우(穀雨)의 사이에 들며, 4월 5일 무렵], 한식(寒食)[동지(冬至)에서 105일째 되는 날로서 4월 5일이나 6일 무렵], 단오(端午)[음력 5월 5일], 중양(重陽)[음력 9월 9일]에 한다고 되어 있으나, 대개 매년 10월경에 문중(門衆)[한 종가의 문중(門中)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산소 앞에서 행한다.

시제 는 겨울에 들기 전에 산소를 둘러보는 의미가 있으며, 겨울이 지난 후 해동이 되면 산소가 무탈한지 둘러보는 한식과 대비된다.

[변천]

시제 는 원래 사시제라고 하여 1년에 네 번, 춘하추동의 계절마다 고조 이하의 조상을 함께 제사하던 합동 제사의 하나이다. 시제는 고전 예법에서 정제(丁祭)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된 제사였다. 그러나 조선 시대 이후 해마다 사람이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인 기제(忌祭)가 중시되면서 시제의 중요성은 점차 퇴색되어 갔다. 4대조의 기일제를 행하게 되면서 각종 명절의 차례와 합해져 1년에 행하는 제사의 회수가 너무나 많아지게 된 것도 시제의 중요성을 약화시킨 원인이 되었다. 1년에 4번 제사를 거행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집은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과 같은 학자들은 1년에 두 번만 시행토록 권고하였다.

시제 는 사당에서 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당이 협소할 때는 정침(正寢)[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의 대청에서도 행해졌다. 일부에서는 10월에 묘지에서 행하는 묘제를 시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 사회가 도시화 되면서 유교 의례가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추세에 있다. 따라서 오늘날 시제를 지내는 집안도 그 수가 적어지고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사례를 보면, 도시화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을 주변에는 선산이 많이 있어서 시제를 흔히 볼 수 있었으며 대부분의 집안에서는 시제를 지냈다. 그러나 도시화 되면서 선산이 없어지는 곳도 있고 타지에 새로이 선산을 장만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납골묘가 생김에 따라 시제를 지낼 필요성이 사라진 집도 있다. 이에 따라 각 집안에 따라 이런 저런 이유에 따라 오늘날 시제를 지내는 집도 있고 지내지 않는 집도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주민인 이상분의 시댁에서는 최근까지 경기도 안산에 있는 선산에서 시제를 지냈으나 이상분의 남편인 당창영[1924년생]은 3년 전부터 시제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도시화 되어 많은 산소가 없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시제를 지내는 것을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나 지금도 토박이 주민들의 마을 주변의 선산이나 아니면 타지에 있는 선산에 가서 시제를 지낸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경주 이씨의 경우에는 문학산 군 부대 부근에 있는 선산이 개발되어 선산의 면적이 줄어들자 경기도 김포에 땅을 사서 선산을 더 확보하였다. 경주 이씨들은 마을의 공동묘지 대신 선산에 매장을 하였는데 지금도 매년 10월 10일 되면 문학산 등지의 선산에서 시제를 지낸다. 문학동의 계양 이씨들도 현재까지 시제를 크게 지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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