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부터 1910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 1392년 조선이 개국하였지만 아직은 전 시대인 고려 시대의 행정 제도를 정비하지 못하였다. 인천이라고 하는 지명은 조선이 개국하여 1413년(태종 13) 지방 행정 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질 때까지 등장하지 않으며, 인주(仁州)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군현제의 정비는 고려 시대 때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속현의 주현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한 인천의 읍격(邑格) 변화. 우리나라에서 지방 행정 제도로서의 주·군·현이 등장한 것은 신라 중대였다. 하지만 주·군·현이 한 고을의 등급을 나타나는 것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이때 고려 태조 왕건이 자신을 지지하거나 도움을 준 읍들에 대해 읍호를 주(州)로 승격시키고, 자신을 배반하는 호족이 나오는 경우 해당 출신 읍을...
조선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지역의 지방 관아 또는 행정 구역 이름. 고려 시대 수주(水州)의 한 속현이었던 소성현은 인주 이씨가 왕실의 외척이 되면서 비로소 인주(仁州)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고려 말에 이르면 경원부(慶源府)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경원부는 1392년(공양왕 2)에 경기도를 확장하고 좌도와 우도로 도를 나눌 때, 양광도(楊廣道)에서 경기로 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이 속해 있었던 조선 시대의 면. 다소면(多所面)은 ‘농사를 짓는 곳이라 물이 많다’는 뜻의 ‘다수(多水)’에서 비롯됐다는 등의 해석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 다소면이 생긴 것은 조선 시대 면리제가 시행되면서부터이다. 영조(英祖) 때의 『여지 도서(輿地 圖書)』 ‘인천도호부’에 의하면 다소면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과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이 소속되었던 조선 시대의 면. 부내면(府內面)은 ‘부내(府內)’, 즉 ‘부(府)의 안쪽’이라는 뜻으로 직역할 수 있는데 이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인천도호부 관아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 면리제가 시행됨에 따라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다소면(多所面)과 부내면이 생겼다. 부내면에는 청사가...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는 인천도호부에 설치된 지방 군사 조직. 조선 전기에는 함경도·평안도 등의 북방 국경 지대는 군익도(軍翼道) 체제로 국경 방어에 임하였고 그 밖의 남방 지대는 연해(沿海) 요지에 진(鎭)을 설정해 영진군(營鎭軍) 혹은 기선군(騎船軍)을 두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반면, 내륙 지방은 모든 지방 수령에게 병마직(兵馬職)을 겸하게 했으...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淸)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이상재(李尙載)[1607~1636]가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鄭世䂓)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출정하여, 인조가 피란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향하여 진군하다가 용인에서 적의 협공을 받아 전사하였다. 1627년 후금(後金)[뒤의 청]의 조선에 대한 1...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벌어진 조선과 일본의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1597년에 시작된 일본의 재침입을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당시 자신들의 연호를 따서 ‘분로쿠(文祿)·케이초(慶長)의 역(役)’이라 하고, 중...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인천도호부를 옛 제물진(濟物鎭)으로 옮기자는 유생 조익(趙翼)의 상소문. 조익은 조정익(趙廷翼)의 5대손이다. 조정익 부처(夫妻)는 강도(江都)[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순절(殉節)하였고, 고조(高祖) 할아버지 조유(趙猷)는 병자호란의 사무친 한을 안고 싸워서 지킬 방법과 미리 준비하여 막을 계획을 강구(講究)하였다. 조익은 집안에 전래하는 것을 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