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2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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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剛山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우선 |
[정의]
작곡가 최영섭이 한상억의 시를 바탕으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작곡한 가곡.
[개설]
「그리운 금강산」은 전 국민이 애창하는 작곡가 최영섭[1929년 11월 28일 강화군 출생]의 대표작이다. 이 노래는 1961년 6․25 전쟁 발발 11주년을 맞아 서울 중앙 방송국[현 한국 방송 공사]이 “조국 강산을 소재로 가곡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어 달라.”라고 하며 위촉한 작품으로 인천광역시 강화 출신의 시인 한상억의 시를 바탕으로 최영섭이 8월 26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자택에서 완성하였다.
[공연 상황]
「그리운 금강산」은 여러 한국 성악가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무대에서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의 세계 3대 테너가 불러 많은 호응을 받은 바 있다.
1972년 남북 적십자 회담 대표단을 보낼 때 중앙 정보부와 KBS 등 당국이 대한 적십자사 여성 대표의 건의에 따라 ‘짓밟힌 자리’를 ‘예대로 인가’로, ‘우리 다 맺힌 원한’을 ‘슬픔’으로, ‘더럽힌 지 몇몇 해’를 ‘못 가본 지 몇몇 해’로 고쳤다.
1985년 남북 예술단 상호 방문 때 평양에 간 성악가 이규도 교수[당시 이화 여자 대학교 음악 대학 학장]가 고친 가사대로 연습은 했지만, 6·25 전쟁 때 아버지를 따라 월남한 사람으로서 평안남도에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 당하다가 내려왔는데, 고친 가사대로 도저히 부를 수 없다고 결심하고, 모란봉 극장 무대에 올라가선 ‘짓밟힌 자리’, ‘우리 다 맺힌 원한’, ‘더럽힌 지 몇몇 해’ 등 원본 가사대로 불렀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보복이 두려워 예술 공연단 일행이 평양 시내 관광에 나설 때 합류하지 않고 호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내용]
「그리운 금강산」은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북쪽에 있어 지금은 갈 수 없는 금강산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전체 2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사는 다음과 같다.
누구의 주재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그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 봉오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아래 산해만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그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의의와 평가]
「그리운 금강산」은 남북 분단의 아픔을 음악으로 표현하여 애틋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드러내었다. 새얼 문화 재단은 2000년 8월에 인천 종합 문화 예술 회관 광장에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를 건립하고, 인천광역시장과 시민을 초대하여 헌납식을 거행하였다. 이 노래비는 높이 6m, 무게 60톤의 오석(烏石)을 소재로 했으며, 「그리운 금강산」의 악보, 가사와 함께 ‘…금강산을 오가는 배편은 놓이었으나 우리 산하는 여전히 두 동강이 나 있는 오늘, 온 겨레가 한 가족이 될 날을 간절히 염원하노니…’라는 건립문이 새겨져 있다.
이후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개화리 개화 예술 공원과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 산6-1의 강화 평화 전망대에도 노래비가 건립되어 전국에 총 3개의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