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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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詩-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상철 |
성격 | 추모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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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광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19년 1월 19일 -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 작가 김광균 출생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93년 11월 23일 -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 작가 김광균 사망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947년 6월경 -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 창작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47년 10월 -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가 『신천지』에 수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57년 -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가 실린 시집 『황혼가』 간행 |
배경 지역 | 배인철의 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 묘지에 묻힌 인천의 시인 배인철을 추모한 김광균의 시.
[개설]
김광균(金光均)[1919. 1. 19~1993. 11. 23]의 시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는 1947년 5월 서울 남산에서 불의의 총격을 받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수봉산 자락 주안 묘지에 안장된 시인 배인철에게 바치는 시다. 김광균은 젊은 시인 배인철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라고 탄식하였다.
김광균의 애도하는 마음이 짙게 배어 있는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는 배인철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 묘지에 안장한 지 20여 일 후인 1947년 6월경에 쓴 작품이다. 1947년 10월 『신천지』에 수록되고, 1957년 간행된 시집 『황혼가』에 실렸다.
[내용]
인천 출신으로 해방 후 활발한 사회 활동과 작품을 쓰기 시작한 배인철이 갑작스럽게 죽자, 안타까움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며 지은 추모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주안묘지 산비탈에도 밤벌레가 우느냐,/ 너는 죽어서 그곳에 육신이 슬고/ 나는 살아서 달을 치어다 보고 있다.
가물에 들끓는 서울 거리에/ 정다운 벗들이 떠드는 술자리에/ 애닲다./ 네 의자가 하나 비어 있고나./ 월미도 가까운 선술집이나/ 미국가면 하숙한다던 뉴--욕 하--렘에 가면/ 너를 만날까/ 있더라도 ˂김형 있소˃하고/ 손창문 마구 열고 들어서지 않을까./ 네가 놀러 와 자던 계동집 처마 끝에/ 여름달이 자위를 넘고/ 밤바람이 찬 툇마루에서/ 나 혼자/ 부질없는 생각에 담배를 피고 있다./ 번역한다던/ ˂리촤-드·라잇˃과 원고지 옆에 끼고/ 덜렁대는 걸음으로 어델 갔느냐.
철쭉꽃 피면/ 강화섬 가자던 약속도 잊어버리고/ 좋아하던 ˂존슨˃ ˂부라운˃ ˂테일러˃와
맥주를 마시며/ 저 세상에서도 흑인시를 쓰고 있느냐./ 해방 후 / 수없는 청년이 죽어간 인천 땅 진흙 밭에/ 너를 묻고 온 지 스무날/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특징]
시인으로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인천의 시인 배인철을 애도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후배 배인철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김광균의 깊은 슬픔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는 배인철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는 작품인 동시에 김광균 시인 자신에게도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자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배인철은 시인으로 다시 한 번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