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5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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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廷夔 |
이칭/별칭 | 일경(一卿),귀천(歸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효섭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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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한산(韓山) |
대표관직 | 이조 참판|경기도 관찰사 |
출생 시기/일시 | 1612년 - 이정기 출생 |
활동 시기/일시 | 1648년 - 이정기 사간원 정언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56년 - 이정기 홍문관 수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61년 - 이정기 인천 도호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64년 - 이정기 경기도 관찰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66년 - 이정기 한성부 좌윤 및 우부빈객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69년 - 이정기 이조 참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71년 - 이정기 진휼청 제조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71년 - 이정기 사망 |
부임|활동지 |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 |
묘소|단소 | 이정기 묘소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번천리 |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일경(一卿), 호는 귀천(歸川)이다. 아버지는 도호부사를 지낸 이제(李櫅)이다.
[활동 사항]
이정기(李廷夔)[1612~1671]는 1639년 진사가 되고, 1648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으로 제수되었으며, 이후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의 벼슬을 거쳤다. 1656년 홍문관(弘文館) 수찬(修撰)으로 있을 때에는 민회빈(愍懷嬪) 강 씨(姜氏)의 누명을 벗게 하기 위해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정기는 이때 죽은 황해도 관찰사 김홍욱(金弘郁)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기도 하였다. 그 뒤 승지(承旨), 예조 참의(參議), 대사성(大司成)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종 초에는 대사간(大司諫), 이조 참의를 지냈다. 1661년 인천 부사로 부임하여 1663년까지 재임하였다. 1664년(현종 5)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주위로부터 모함을 받자 바로 사직하였다. 1666년 한성부 좌윤 겸 우부빈객(漢城府左尹兼右副賓客)이 되고, 1669년 이조 참판이 되었다. 1671년 한성부 좌윤으로 있을 때에 대기근이 일어나자 진휼청(賑恤廳)의 제조(提調)가 되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데에 전력을 다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정기의 저서로는 『월파만록(月坡漫錄)』, 『순외편(順外編)』이 있다.
[묘소]
이정기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번천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