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04
한자 劉克良
이칭/별칭 중무(仲武),무의(武毅)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오정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연안(延安)
대표관직 인천 부사|전라 좌수사
활동 시기/일시 1591년연표보기 - 유극량 전라 좌수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91년 4월연표보기 - 유극량 인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91년 11월 - 유극량 인천 부사 퇴임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유극량 사망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숭절사 - 경기도 개성

[정의]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무신.

[가계]

연안 유씨(延安劉氏)의 시조이다. 자는 중무(仲武). 어머니는 재상 홍섬(洪暹)의 노비였으나 홍섬의 배려로 면천하여 무과에 급제하였다.

[활동 사항]

유극량(劉克良)[?~ 1592]은 1591년(선조 24)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가 되었고, 곧 조방장(助防將)[주장(主將)을 도와서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으로 전임하였다. 1591년 4월에 인천도호부로 부임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죽령(竹嶺)을 방어하다가 패배하자, 군사를 영솔해 방어사(防禦使) 신할(申硈)의 부장이 되어, 대장 신할과 도순찰사 한응인(韓應寅) 등과 함께 임진강(臨津江)을 방어하였다.

유극량은 임진강 남안에 이른 적병을 대장 신할이 강을 건너 공격하려 할 때 “적이 우리 군사를 유인하고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5~6일간 우리 군사의 힘을 길러 사기가 올라간 다음에 적을 치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 신할과 “뜻이 같지 않더라도 어찌 뒤떨어질 수 있으랴.”라고 하고, 군사를 수습해 거느리고 선봉에 서서 강을 건넜다. 그러나 미처 강을 다 건너기도 전에 적 복병의 공격으로 좌위장(左衛將) 이천(李薦)이 강 상류에서 패하고, 신할도 전사하였다. 이때 유극량은 강을 건너 여러 명의 적을 죽였으나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유극량은 경기도 개성 숭절사(崇節祠)에 제향되었고, 병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