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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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孝悅 |
이칭/별칭 | 성보(誠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은수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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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여흥(驪興) |
대표관직 | 인천도호부 도호부사|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
출생 시기/일시 | 1405년 - 민효열 출생 |
활동 시기/일시 | 1429년 - 민효열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64년 9월 - 민효열 인천 도호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467년 3월 - 민효열 인천 도호부사 이임 |
몰년 시기/일시 | 1482년 - 민효열 사망 |
부임|활동지 |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 |
묘소|단소 | 묘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동 웅천 |
[정의]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보(誠甫)이다. 아버지는 중추원(中樞院) 부사(副使)를 지낸 민대생(閔大生)이고, 어머니는 고려 말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허금(許錦)의 딸 양천 허씨(陽川 許氏)이다. 그리고 정언(正言)을 지낸 이안유(李安柔)의 딸 영천 이씨(永川李氏)를 처로 맞았다.
[활동 사항]
민효열(閔孝悅)[1405~1482]은 1429년(세종 11)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1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종부시(宗簿寺) 직장(直長)이 되었다. 이후 이조 좌랑, 예조 좌랑, 사간원 헌납, 형조 좌랑, 병조 좌랑을 역임했는데, 예조 좌랑으로 있던 1434년 외읍(外邑)의 공물을 대납한 일이 밝혀져 1441년 종신토록 관리가 될 수 없게 하는 폐고불서(廢錮不敍)에 처해졌다.
1453년(단종 1) 부친인 민대생의 상소로 다시 복관되어 봉상시 소윤에 임용되었다. 이어 첨지중추부사, 수원도호부 도호부사를 거쳐 1464년 9월 인천도호부 도호부사로 부임하여 1467년 3월까지 31개월간 지냈고, 1470년(성종 1)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동 웅천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세조의 즉위를 도와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올랐다. 1482년(성종 13) 묘비가 세워졌는데, 강희맹(姜希孟)이 비석에 새길 글을 짓고 정난종(鄭蘭宗)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