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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385
한자 洪震墓碑
이칭/별칭 홍진 묘표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비
관련인물 홍진
재질 대리석
크기 65㎝[높이]|40㎝[너비]
관리자 인천광역시립 박물관
건립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 홍진 묘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84년연표보기 - 홍진 묘비가 국립 묘지로 이장함에 따라 인천광역시립 박물관으로 이전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77년 8월 27일 - 홍진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46년 9월 8일 - 홍진 사망
현 소재지 인천광역시립 박물관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525
원소재지 관교동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었던 인천의 독립운동가 홍진(洪震)의 묘비.

[개설]

홍진 묘표라고도 한다. 만오(晩悟) 홍진[1877~1946]은 충청북도 영동군 태생으로 대한제국 시절 한성 평리원 검사, 충청 검찰청 검사를 역임하고 3·1 운동 후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 정부 법무 총장, 내무 총장, 의정원 의장, 국무령을 역임하였다. 또한 1928년 김구(金九)[1876~1949], 이동녕(李東寧)[1869~1940] 등과 한국 독립당을 창설하여 최고 간부 중 한사람이 되었으며, 1938년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해 한국광복군이 결성되자 운영 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다가 해방 후 임시 정부 요인과 함께 귀국해서 1949년에 병사했다.

홍진의 인천과의 인연은 3·1 운동 당시 한성 임시 정부 수립안을 현 자유 공원인 인천의 만국 공원에서 선포하기로 한 일로부터 비롯되었다. 홍진은 독립 선언의 실천 방안인 한성 임시 정부 수립안을 주도했는데, 이 수립안을 4월 2일 만국 공원에서 한남수(韓南洙), 김사국(金思國), 이규갑(李奎甲) 등과 함께 선포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정에 의해 선포는 연기되었고, 결국 4월 8일 홍진이 상해로 망명한 상태에서 연합 통신을 통해 해외로 알리게 된다.

[건립 경위]

홍진이 3·1 운동 당시 한성 임시 정부 수립안을 인천의 만국 공원에서 선포하고자 한 것이 인연이 되어 1949년 사망한 이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묻히게 되었고, 홍진의 묘소 앞에는 홍진의 무덤임을 알리는 홍진 선생 묘비가 세워졌다.

[위치]

홍진 선생 묘비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었으나 1984년 홍진의 묘소가 국립묘지로 이장됨에 따라 인천광역시립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원래 인천광역시립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었으나, 지금은 수장고로 옮겨졌다. 따라서 홍진 선생 묘비는 인천광역시립 박물관의 허가를 받고 수장고로 가야 볼 수 있다.

[형태]

홍진 선생 묘비의 너비는 40㎝, 높이는 65㎝이며 재료는 대리석을 썼으며, 화강암으로 만든 단이 있다.

[금석문]

홍진 선생 묘비의 정면에는 “故晩悟洪辰先生之墓 大韓民國二十八年十一月九日建立”라고 쓰여 있고 후면에는 글자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 양 옆으로 무궁화가 한 송이씩 양각되어 있고 아래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다. 묘비 아래의 화강암 단에는 “청년(靑年) 동포(同胞)여 병(病)든 나라를 고치는 병원(病院)의 일꾼이 되자.”라는 1931년 길림(吉林)[중국 길림성(吉林省)에 있는 항구 도시]에서 홍진이 남긴 글이 새겨져 있다.

[현황]

현재 홍진 선생 묘비는 인천광역시립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어 정확한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만오 홍진은 구한말 대한제국의 관리로 일하다가 국가의 위기와 일제의 만행을 좌시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많은 활동을 한 인물이다. 특히 한성 임시 정부 수립안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한 것으로 보아, 홍진이 단순히 조선 왕조에 대한 충성심으로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을 위한 새로운 국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보인다.

특히 홍진의 묘소와 묘비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었다는 것은 인천 지역이 홍진의 생애에 매우 큰 의미가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홍진 선생 묘비는 이러한 홍진의 생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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