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에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된 김구 주석 애도 행사. 1949년 7월 5일 서울 운동장에서의 영결식에 맞추어 당일 오후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당시 인천부 도원동]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 김구 주석을 애도한 집회이다. 김구(金九)[1876~ 1949]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이유는 김구와 한국 독립당을 중심으로 전개한 남한 단독 정부 수립...
1946년 5월 19일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인천 지부 주최로 개최된 신탁 통치안 반대 집회.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이승만이 1945년 10월 23일 결성한 독촉 중앙 협의회를 모체로 하여 결성된 전국적 규모의 우익 연합 단체로 1946년 2월 8일 조직되었다.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자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일제 강점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과 도화동 일대에 있었던 농원. 동일 농원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일대에 걸쳐 있었던 농원이다. 운영한 사람은 김주하로, 주로 배를 재배하였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와 주변 지역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과수원과 밭이 넓게 펼쳐져 있던 곳이었다.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던 과수원들로는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618[문학동 482]에 있는 문학 경기장은 ‘한국 축구 16강 성지’이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 역사 48년 만에 그토록 바라던 16강 진출의 꿈을 이룬 곳이다. 청동기 유적이 발견돼 지금의 인천광역시가 비류 백제의 도읍지인 미추홀임을 증명한 곳. 한때 인천 시민 구단인 프로 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이자, 인천에 연고지를 둔 프로 야구 SK...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 통치를 강압적으로 행사하던 시기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 역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은 191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 「도의 위치·관할 구역 및 부군의 명칭·위치·관할 구역」 변경에 따라 새로 신설된 부천군 다주면과 부천군 문학면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용현동·도화동·주안동이 부천군 다주면에...
1946년 7월 31일 반탁 학생 총 연맹을 비롯한 15개 학생 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우익 학생 운동 단체 전국 학생 총 연맹의 인천 지역 지부. 전국 학생 총 연맹은 1946년 7월 31일 발족하여 1949년 12월 29일 해체된 우익 학생 운동 단체이다. 전국 학생 총 연맹은 1946년 7월 12일 반탁 학생 총 연맹을 비롯한 13개 학생 단체와 28개교 대표 138명이 ‘전국...
1946년 8월 18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던 시민 운동회. 1946년 8월 18일 해방 1주년을 맞아 인천시 체육회와 인천 육상 경기 구락부 공동 주최로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당시 인천부 도원동]에 소재한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해방 1주년 기념 경축 운동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린 해방 1주년 기념 경축 운동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설치되었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의 화장장. 1887년 인천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묘지가 인천광역시 중구 율목동에 처음 세워졌으나, 시신의 화장을 위한 화장장은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때문에 율목동 서쪽 해변에서 관을 눕혀 화장을 하였는데 이에 대해 주민들의 불만이 매우 컸었다고 한다. 일본 거류민들의 불만이 팽배해지자 1888년 일본 영사관에서는 지금의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