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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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 9세기 말 신라의 국력이 쇠약해져 각지에서 군웅들이 할거하였고 이는 곧 후삼국의 정립으로 이어진다. 이 중 태봉을 세운 궁예(弓裔)[857(?)~918, 재위 901~918]의 장수로 있던 왕건(王建)[877~943, 재위 918~943]이 궁예를 몰아내고 918년 고려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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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ㆍ고려ㆍ조선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를 포함한 지방 제도. 군현제는 한반도에 일찍부터 전해져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에는 초기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주변 소국을 점령할 때마다 군현(郡縣)을 설치한 것으로 나오나, 일반적으로 이는 인정되지 않는다. 통상 한국에 군현제의 등장은 신라 지증왕(智證王)[437~514] 때 주요 군사 지역에 주(州)를 두고 그 장관으로 군주(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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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를 포함한 인천 지역의 고구려 때 지명. 통일 신라 한주 소성현(邵城縣)의 고구려 때 지명으로 다른 기록에는 미추(弥鄒, 彌鄒) 혹은 미추홀(彌鄒忽)이라고도 나온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주몽(朱蒙)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인 유류(孺留)가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沸流)와 온조(溫祚)는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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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가 도읍지로 정했던 지역. 백제의 시조인 온조와 그의 형인 비류는 고구려로부터 남하하였는데, 형인 비류는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고 동생인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초기 백제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미추홀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로 비정되고 미추홀의 중심 유적으로 믿어지는 것이 문학 산성이다. 하지만 문학 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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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했던 인주 이씨(仁州李氏)와 깊은 관련을 맺고 번성하던 불교 종파. 통일 신라 때 성립되어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는 화엄종(華嚴宗)과 함께 교종의 2대 종파가 되었다. 13종(宗)의 하나이다. 중국에서 일찍이 현장삼장(玄奘三藏)이 인도에서 무착·세친(世親)의 정통 교학을 계현(戒賢)에게서 받아 당(唐)나라에 전했다. 중국의 법상종(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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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한주(漢州)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買召忽縣)이었으나, 진흥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소성현(邵城縣)으로 개칭되었다. 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신문왕 5) 신라는 전국을 9주(九州)로 개편하였고 5소경(五小京)을 정비하였다. 신문왕의 지방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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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의관(醫官). 유후성(柳喉聲)은 침(鍼)으로 유명한 유의(儒醫)[의사이면서 유교의 교리에 통달한 사람]로 1642년(인조 20) 7월부터 12월까지 부평 부사(富平府使), 1644년(인조 22) 2월부터 4월까지 인천도호부 부사로 재직하였다. 유후성은 1646년(인조 24)부터 3년간 왕실의 전의(典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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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포함되었던 신라 때 한주(漢州)에 속한 군의 하나. 율진군은 본래 고구려 율목군(栗木郡)이었는데, 경덕왕이 개명하였으며, 영현은 곡양현(穀壤縣), 공암현(孔巖縣), 소성현이다. 율목군은 동사힐(冬斯肹)이라고도 하였다. 현재의 경기도 과천시이다. 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신문왕 5) 신라는 전국을 9주로 개편하였고 5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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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했던 부평 이씨 출신의 문신. 자는 숙필(叔弼), 호는 철애(鐵厓)이며, 본관은 부평(富平)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형조 정랑 이계록(李繼祿), 할아버지는 이덕일(李德一), 아버지는 이홍재(李弘載)이다. 이세익(李世翊)[1626~1705]은 조선 인조(仁祖)에서 숙종(肅宗)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다. 어려서 집이 가난하였으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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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했던 인주 이씨(仁州 李氏) 출신의 이자겸(李資謙)이 일으킨 난. 이자연(李子淵)[1003~1061]의 손자이며 인종(仁宗)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1126]이 1126년(인종 4)에 왕권의 약화를 틈타 왕위를 빼앗으려 했던 사건이다. 이자겸의 난은 이자겸이 지군국사(知軍國事)가 되어 사실상 왕을 대신해 실권을 차지하자, 왕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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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하는 인천 이씨(仁川 李氏)를 귀족의 반열에 올린 중시조. 인천 이씨[인주 이씨(仁州 李氏)]의 중시조이다. 나중에 반란을 일으킨 이자의(李資義)와 이자겸(李資謙)은 이허겸(李許謙)의 현손(玄孫)이다. 인주 이씨는 본래 김해 허씨였으나 그의 6대조인 허기(許奇)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안록산(安祿山)의 난으로 피난하는 현종을 호종한 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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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허겸(李許謙)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 지역의 세거 성씨. 인천 이씨(仁川 李氏)는 이허겸을 시조로 하여 고려 시대부터 인천광역시 지역에 세거하던 성씨이다. 고려 시대 문종(文宗)에서 인종(仁宗)까지 7대에 걸쳐 5명의 태후(太后)와 5명의 왕후(王后)를 배출하여 인천의 읍호(邑號) 승강(昇降)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세조(世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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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 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후선(後先)이다. 인조(仁祖) 때 좌의정을 역임한 정창연(鄭昌衍)의 손자이며, 이조 참판 정광경(鄭廣敬)의 아들이다. 정채화(鄭采和)[1611~1677]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천성이 효성이 깊고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재물을 다하여 이를 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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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이 임천(林川)이며, 자 양경(楊卿), 호 일봉(一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를 역임한 조원(趙瑗)이며, 할아버지는 조희진(趙希進)이다. 마전 군수(麻田郡守)를 지낸 조시형(趙時馨)과 심정양(沈廷揚)의 딸인 청송 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제로는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한 형 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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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고려 초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해당하는 지역의 사회 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 세력.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제도의 정비와 기구의 확대로 왕권의 통치권을 강화하던 왕실도 신라 중대 말에 이르러서는 진골 귀족 세력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경덕왕 대에 전국 주·군·현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고, 당나라 제도를 기준으로 하여 각 관서의 관서명과 관직명을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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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 출신이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효(孝)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유교의 도리 중 하나로 충과 함께 중요시하였다. 가계(家系)의 연속을 중요하게 여긴 전통 가족 제도 아래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자 관계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일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