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314 |
---|---|
한자 | 柳德洞德興-堂山祭 |
이칭/별칭 | 유덕동 덕흥마을 동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수경 |
의례 장소 |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 454번지 덕흥공원 |
---|---|
성격 | 마을 공동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열나흗날 |
신당/신체 | 할머니당산[느티나무] |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 덕흥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에 모시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유덕동 덕흥마을 당산제는 동작과 서작으로 나누어 6~10곳의 당산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시던 마을 제의이다. 현재는 정월 열나흗날에 동작의 상당이었던 할머니당산에서만 제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덕흥마을은 광주천과 극락강이 합류하는 부근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마을은 약 500여 년 전에 성촌되었다고 하는데, 당산제는 약 270여 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도 중단되지 않았으나, 1960년대 당산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 폐지 후 도둑이 많아지고 싸움이 자주 일어나 다시 지내기 시작하였으나, 1980년대 들어와서 당산제가 많이 축소되었다가 1990년 후반에 또다시 중단되었다. 이후 2018년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당산제를 복원하여 지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덕흥마을의 당산은 본래 12당산이 있었다고 전하나 1987년 조사 시 확인할 수 있는 당산은 10곳이었다. 마을을 동작과 서작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동작에는 상당[할머니당산], 하당 2곳[자손당산, 삼신당산], 당샘이 있었다. 서작에는 상당[할아버지당산], 하당 2곳[작은할머니당산, 자손당산], 당샘, 우마당[우당산], 짐대가 있었다. 당시에도 10곳의 당산을 다 모시는 것은 아니었고, 동작에서 상당과 하당 2곳을 모시고, 서작에서 상당과 하당 2곳, 그리고 동작과 서작에서 공동으로 우마당을 모시고 있었다.
동작의 상당인 할머니당산은 수령 약 450여 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이다. 마을의 야트막한 덕산 정상에 있는데, 2012년 소방도로 신설 시 덕산을 절개하고 덕흥공원을 조성하면서 뿌리 일부가 훼손되어 고사(枯死)하고 있다. 할머니당산에서 2018년 복원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서작의 상당인 할아버지당산은 본래 마을 내에 있던 매우 큰 팽나무였으나 1960년대에 고사하였고 작은 팽나무를 심어 당산으로 모시고 있다. 우마당인 우당산은 현재 경로당 옆에 있으며, 1980년대 초반에 심은 팽나무이다. 짐대는 장대 위에 기러기를 세워 이를 진떼[짐대]라 하고 그 부근을 진떼거리라 하였는데, 소의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마을에는 샘이 여러 개 있어 당일 아침에 모든 샘을 퍼내고 깨끗이 청소를 하였다. 그러나 당샘으로는 동작과 서작의 각 한 곳만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절차]
과거 유덕동 덕흥마을 당산제의 절차를 살펴보면, 정월 초이렛날 마을회의를 열어 화주 1명, 헌관 3명, 축관 1명, 공원 2명, 황토관 1명 등을 뽑는다. 공원과 황토관은 다른 마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제관(祭官)인데, 공원은 화주를 도와 제물(祭物)을 구입하고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고, 황토관은 황토를 놓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제관을 뽑을 때는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을 보아서 탈이 없는 사람으로 선정한다. 제관이 선정된 초이렛날 외부로 통하는 마을 길과 제관들의 집에 금줄을 친다. 당산에는 치지 않는데, 이는 마을의 통로를 차단하였기 때문이다. 황토는 열사흗날 당산에 놓는다. 덕흥마을에서는 당산제 운영을 위해 목청계라는 마을 조직을 운영하였다. 아직 태어나기 전 아이까지 모든 마을 사람들이 가입되며 인구전을 납부하도록 한다. 제물(祭物)은 동작과 서작이 각자 장만하되, 우마당 제물을 동작과 서작에서 격년으로 준비하였다. 제물과 기물은 제의(祭儀) 당일 오전에 화주와 공원이 양동시장에 가서 새것으로 준비한다. 상당 제물은 돼지머리, 떡시루, 삼색과, 나물, 대추, 곶감, 문어포 등을 준비한다. 하당에는 여기에서 돼지머리를 빼고 생선을 추가한다. 제주는 반드시 화주집에서 준비한다.
정월 열나흗날 점심 이후 농악 가락을 맞추어 보는 것으로 당산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의가 동작과 서작에서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나발로 신호하여 동시에 시작한다. 진설을 하고 '분향재배→초헌→개반삽시→아헌→독축→종헌' 순으로 제의를 진행한다. 제의 후 헌식하고 소지를 올린다. 상당의 제가 끝났음을 알리는 나발소리를 신호로 각 가정에서도 차례를 지내고, 다시 동작과 서작은 나발로 신호를 맞춰 하당으로 향한다. 하당의 제가 끝나면 상당에서는 하지 않았던 음복을 한다. 하당 제가 끝나면 다시 제물을 챙겨 우마당으로 간다. 이때는 동작, 서작이 함께 모여 제를 지낸다. 우마당의 신격은 소이기 때문에 나물 위주로 제물을 차린다. 상당, 하당의 엄숙한 분위기와는 달리 큰 소리를 내고 춤을 추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도 나와 함께 음복을 하기도 한다. 이후 동작, 서작은 각각 마당밟이를 정월대보름 아침까지 지속한다.
2018년 복원 당시의 상황은 중단 전과 동일하게 정월 열나흗날에 시행되었으나 밤이 아닌 오후에 시행되었다. 식전 행사를 열어 농악을 공연하고 관람객들에게 소원지를 작성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실제 당산제는 오후 4시 40분부터 6시까지 진행되었으며, '진설→초헌→독축→재배→메올리기→아헌→재배→종헌→첨작→소지→음복→헌식' 순으로 진행되었다. 제의는 할머니당산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부대 행사]
삼우날이 되는 정월 17일 새벽에 화주가 밥과 미역국만 들고 당산에 올라가 절을 하고 온다. 이날 오전에 목청계를 열어 당산제 경비를 결산하고 품삯 등을 정한다. 결산이 마무리되면 당산제 때 마당밟이를 못하였던 집을 돌아다니며 한 집도 빠짐없이 마당밟이를 하고, 동작과 서작으로 나눠 줄다리기를 하였다고 한다.
[현황]
유덕동 덕흥마을 당산제를 재현하여 마을 축제로 발전시키고자 2018년 서구문화원의 주도로 복원되었다. 2018년 당시에는 6백만 원의 예산을 들여 관람객들을 모을 수 있도록 농악 공연, 소원지 쓰기, 음식 나누기 등을 부대행사로 진행하였다. 이후 매년 정월 열나흗날 당산제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