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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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1870년대에 외국과 수교 관계를 맺고, 문호를 개방하면서 조선의 유교 중심 교육은 서구식 근대 교육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외국의 새로운 제도 및 기술을 도입하는 데 필요한 근대식 학교 교육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근대식 교육 기관은 1885년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Gerhard)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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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이 속해 있었던 조선 시대의 면. 다소면(多所面)은 ‘농사를 짓는 곳이라 물이 많다’는 뜻의 ‘다수(多水)’에서 비롯됐다는 등의 해석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 다소면이 생긴 것은 조선 시대 면리제가 시행되면서부터이다. 영조(英祖) 때의 『여지 도서(輿地 圖書)』 ‘인천도호부’에 의하면 다소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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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이 속했던 행정 구역 명칭. 1905년 통감부가 설치된 후, 일제는 종전까지 군(郡)을 중심으로 유지되어 왔던 지방 행정 체제를 해체하고 중앙 행정력이 지방 하부 단위까지 미칠 수 있도록 면(面) 중심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10년 「조선 총독부 지방관 관제」와 「면에 관한 규정」을 공포해 면을 최하급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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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던 자연 마을. 오늘날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지역은 구한말까지만 해도 비랑이 마을 또는 비랭이 마을이라고 불렸다. 비랭이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째는 비룡리(飛龍里)가 잘못 전해져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지금의 용현동의 상당 부분이 인천항 개항 뒤에 바다를 매립해서 생긴 땅으로 옛날 이 앞바다에서 “장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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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문학동 주민 센터에 따르면 2012년 1월 현재 예전의 산성 마을 지역에는 모두 1,209세대에 2,203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산성 마을은 문학산성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학동은 옛날에는 성촌(城村), 남산(南山)으로 불렸다. 1903년 8월에 서촌산성리(西村山城里), 남산리(南山里)로 구분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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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던 자연 마을. 쑥골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글자 그대로 쑥이 많은 곳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숯을 굽던 곳이라는 뜻으로 숯의 발음이 ‘숙’을 거쳐 ‘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물이 많은 골짜기라는 뜻으로 ‘수(水)골’이 숫골˃쑥골로 바뀌었다는 해석이다. 넷째는 숲이 우거진 곳이라는 해석이다. 다섯째는 벼를 대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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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의 행정과 민원 등을 총괄하는 공공 기관. 꿈과 희망이 있는 자랑스러운 옹진을 목표로 인천광역시 옹진군의 행정과 군민의 교육, 복지, 경제 등을 담당하는 행정 기관이다. 옹진군청은 중앙 정부와 인천광역시로부터 위임 받은 업무와 인천광역시 옹진군 고유의 행정 및 민원 업무를 수행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고려 시대 1018년(현종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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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인문 지리는 특정 지역의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들이 생활하며 만들어 낸 여러 가지 현상들이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나누어 만든 위치와 면적, 행정 구역의 변화, 인구 변화, 경제, 사회, 교통, 문화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인천광역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區)로, 동쪽으로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쪽으로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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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 구(區)는 서울특별시, 5대 광역시 및 인구 5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설치되는 하부 행정 구역으로, 국가가 위임한 사무를 처리하는 보통 행정 구역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도화동(道禾洞), 숭의동(崇義洞), 용현동(龍現洞), 학익동(鶴翼洞), 주안동(朱安洞), 관교동(官校洞), 문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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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조선 시대 국립 교육 기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인천 향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인천 향교의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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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 통치를 강압적으로 행사하던 시기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 역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은 191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 「도의 위치·관할 구역 및 부군의 명칭·위치·관할 구역」 변경에 따라 새로 신설된 부천군 다주면과 부천군 문학면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용현동·도화동·주안동이 부천군 다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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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으로, 인간 문제의 궁극적 해결에 관련을 맺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신앙 행위를 말한다. 기존 종교의 개념에서는 교조․교리․의례․교단․신도 등이 체계적인 형식을 갖춘 것만을 종교로 인정했으나, 최근에는 민간에서 의례를 중심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도 넓은 의미의 종교로 포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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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속하는 법정동. 문학산의 줄기인 학익산은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명 또한 이 산에서 비롯되어 학골 또는 학익동이라 불렸다. 『조선 지지 자료』에 학익리(鶴翊里)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조선 숙종 대 부평 이씨 제운(霽雲)이라는 인물이 살았다 하여 제운리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1903년 학익리로 불리다가 1914년에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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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조선 시대 유생들이 공부하던 인천 향교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향교 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인천 향교는 인천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1호로, 사적 사료가 분명치 않아 건립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근세에 와서는 읍내, 승기 부락으로 구분되고 1903년 8월에 동·리명 개정으로 읍내리, 동촌승기리가 되었다. 1906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