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성
-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의 옛 모습을 그린 전통 시대 지도의 총칭. 고지도는 작성 연대가 오래되고[전통 시대], 투영·제작법이 현대의 지도와는 구별되는 회화적(繪畫的) 성격을 지닌 과거의 지도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 지도는 주로 국방이나 행정의 목적으로 제작되어, 국가 통치의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었다.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이미 지도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일. 관광이라는 말은 『역경(易經)』의 “관국지광 이용빈간왕(觀國之光 利用貧干王)”이라는 구절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이 구절에서 관광은 한 나라의 자연, 풍광, 문물, 제도, 풍습 등을 보고 느낌으로써 견문을 넓히고 경험을 쌓는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서양에서 관광이라는 용어는 ‘Traveling’, ‘To...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는 근린공원. 관교 근린공원은 2002 피파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가 열린 인천 문학 경기장 건너편 승기산[승학산] 일대에 조성된 공원이다. 관교 근린공원이 있는 지역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농촌 지역이었다. 이후 일어난 개발 붐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제2 경인 고속 도로가 통과하면서 이 일대를 공원으로 지정하고 시설 공사에 착수하여 19...
-
19세기에 제작된 『광여도』 중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부 지도. 『광여도(廣輿圖)』는 전국 군현 지도집으로, 『해동 지도』와 유사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총 7책으로 「세계 지도」, 「외국 지도」, 「요계 관방도」, 「조선 전도」, 「조선 각 군현별 지도(주기)」, 「군사적 요충지 지도」가 실려 있다. 『광여도』 전체는 모두 7책이며, 채색도이다. 책의 크기는 3...
-
산(山)은 지표면이 주위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을 말한다. 대부분의 산들은 독립적으로 혼자 우뚝 솟지 않고 여러 산들이 연이어져 맥(脈)을 이루며 줄지어 있다. 한반도의 중서부 해안에 위치한 인천은 높은 산지가 적어 구릉지나 평지가 주로 전개돼 있으며 큰 하천이 발달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 인천광역시의 산지는 대체로 남북과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인천광역시를 남북 방향으로...
-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달부(達夫)이다. 아버지는 김상겸(金尙謙), 할아버지는 김석경(金碩卿), 증조할아버지는 김한수(金漢秀)이다. 어머니는 정건(鄭鍵)의 딸이다. 김민선(金敏善)[1542~1592]은 1542년(중종 37)에 경기도 부평 도호부 지역에서 태어났다. 1564년(명종 19)...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서(公緖)이다. 아버지는 김휘(金徽)이고, 할아버지는 김안로(金安老)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흔(金訢)이다. 김찬선(金纘先)[1535~1594]은 1564년(명종 19) 식년시에 급제하였고, 1569년(선조 2) 별시 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군기시(軍器寺) 첨정(僉...
-
조선 후기에 김정호에 의해 편찬된, 인천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전국 지리지. 1863년 경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지리지이다. 김정호의 전국적인 지리적 내용의 정리라는 일생의 작업 가운데 이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총 32권 15책이며 책의 크기는 27.3×19.4㎝[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본]이다. 현재 국립 중앙 도서관, 고려 대학교 중앙 도서관, 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허구적 세계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은 크게 고전 문학과 현대 문학의 범주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 태어난 작가의 작품이나, 인천광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 1동에 있는 도시 자연공원. 문학 도시 자연공원이 있는 문학산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문학동·관교동·학익동, 연수구의 옥련동·청학동·연수동·선학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높이는 217.12m로 미추홀구와 연수구의 경계가 된다. 문학산은 학산 또는 남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배꼽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정상에 있던 봉수대 때문에 산봉우리가...
-
조선 후기 이규상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문학 산성에 대해 쓴 한시. 「문학 산성(文鶴山城)」의 저자 이규상(李圭象)[1727~1799]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1727년(영조 3)에 태어나 잠시 홍릉(弘陵) 참봉을 지냈고 1799년(정조 23)에 죽었다는 기록만이 『한산 이씨 세보(韓山李氏世譜)』에 전해진다. 일설에 따르면 인천 부사를 지냈던 아버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문학동은 성촌(城村), 남산(南山) 마을로 불렸다. 1903년 8월에 서촌산성리(西村山城里), 남산리(南山里)로 구분되었다가, 1906년 5월에 산성리(山城里), 학산리(鶴山里)로 각각 개칭되었다. 옛 문학동의 지명인 성촌은 성[문학 산성]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남산은 문학산의 옛 이름인 남산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서촌산성리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와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 문학산(文鶴山)은 학산(鶴山) 또는 남산(南山)이라고도 한다. 예전엔 배꼽산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산봉우리가 마치 사람이 배꼽을 내놓고 누워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배꼽 모양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옛날 산 형태를 기억하는 이들도 줄어 문학산으로 통칭되고 있다. 문학산은 미추홀 왕국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에 조성한 둘레길. 인천광역시의 둘레길은 일상에 지쳐 있는 심신을 가볍게 씻겨줄 대표길 17개 코스가 있다. 그 중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문학산 둘레길은 8-1코스와 8코스로 승기천에서 문학산까지 구간이다. 인천광역시는 생활권 녹지 확대 및 네트워크화 추진을 위해 구도심권 녹지 공간을 최대한 확대하여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늘 푸른 초록 도시를 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문학산 정상에 있었던 봉수의 터. 봉수란 봉(峰)과 수(燧)로 급보를 전하던 고대의 통신 방법으로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불빛과 연기로 신호를 전달하던 것이다. 야간에는 횃불이 잘 보이지만 주간에는 잘 보이지 않아 대신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대략 3,927m[10리]마다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었다. 문학산 봉수(文鶴山 烽燧)는 문학산 마루에 높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문학산 정상에 있는 문학산의 역사를 소개하는 박물관. 문학산 역사관(文鶴山歷史館)은 문학산의 역사에 관한 콘텐츠와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 등이 전시된 공간이다. 비어 있는 기존의 군사 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도시 재생의 새로운 모델로서 의미가 있다. 문학산은 오랫동안 전략의 요충지였다. 그로 인해 1962년부터 50여 년 동안 문학산에는 군부대가 주...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문학산에 있는 청동기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제사 유적. 제사 유적(祭祀遺蹟)은 신앙과 제사에 관련된 일체의 유적을 총칭한다. 선사와 고대 사회에서 인간은 자연에 의존하고 그것을 경외했기 때문에 제사와 의례 행위가 나타나게 되었다. 숭배의 대상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차려 의식을 행하는 것이 제사이고, 그 행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가 제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문학 산성의 건립 연대는 문헌 자료가 전하지 않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잘 알 수 없다. 다만, 문학 산성 안팎에서 삼국 시대 백제 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있으며 문학산 동쪽 구릉 지대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문학산 일대에 청동기 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며, 문학산 주변에서 초기 백...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문화유산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은 문화유산 활성화를 위하여 문화재청과 인천광역시청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미추홀구의 사업명은 생생 문화재 사업과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 사업으로 생생 문화재 사업은 2013~2019년까지 7년간,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 사업은 2014~2019년까지 6년간 선정되었다. 인천 향교는 인천광역시 유형...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다고 전해지는 비류(沸流)의 무덤. 미추왕릉(彌鄒王陵)의 존재를 전하는 문헌 기록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4 여지고(輿地考) 2 비류국 조(沸流國條)에는 관아에서 남쪽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해변 가까운 구릉에 미추왕릉이 있다고 하였다. 한편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총묘 조(塚墓條)에서는 미추왕릉이 남산, 곧 지금의 인...
-
비류가 도읍지로 정했던 지역. 백제의 시조인 온조와 그의 형인 비류는 고구려로부터 남하하였는데, 형인 비류는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고 동생인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초기 백제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미추홀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로 비정되고 미추홀의 중심 유적으로 믿어지는 것이 문학 산성이다. 하지만 문학 산성은...
-
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포함되었던 고대 국가. 678년간 존속한 백제의 역사는 시조 온조왕에서 사반왕까지의 소국-소국 연맹 시기, 고이왕에서 계왕까지의 5부 체제 시기, 근초고왕 이후의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가 갖추어진 이후 백제의 역사 전개는 한성 시대(漢城時代) 전기[근초고왕~아신왕],...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문학동 주민 센터에 따르면 2012년 1월 현재 예전의 산성 마을 지역에는 모두 1,209세대에 2,203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산성 마을은 문학산성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학동은 옛날에는 성촌(城村), 남산(南山)으로 불렸다. 1903년 8월에 서촌산성리(西村山城里), 남산리(南山里)로 구분되었으며,...
-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수리봉에 쌓았던 성터. 18세기 중엽 간행된 『여지 도서(輿地圖書)』에 “동문[문학 산성]밖 100여 보에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기 위에 왜성(倭城)의 터가 남아 있다. 왜군이 성을 공격할 때 머물렀던 곳이다.”라는 것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인천 부사 김민선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문학산...
-
조선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위치에 세워졌던 사당의 터. 안관당(安官堂)은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인천도호부 도호부사 김민선(金敏善)[1542~1592]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이다. 김민선은 부평도호부 출신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달부(達夫)로 1572년(선조 5)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이어서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집의(執義)...
-
18세기 중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輿地圖)』 중 인천부(仁川府)를 그린 지도. 『여지도』는 총 6책의 전국 군현 지도로 8도의 각 읍별로 지도와 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 소장의 또 다른 고지도인 『해동 지도(海東地圖)』와 구도가 거의 유사하다. 읍호(邑號)의 변천 등과 관련하여 볼 때 『해동 지도』보다 늦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므로 『해동 지도』를 필사한 것으...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대표하는 도심의 볼거리. 랜드마크는 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목표물로서 적당한 사물을 말한다. 주위의 경관 중에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쉬운 것, 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특이성이 있는 시설이나 건물 등이 그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추상적인 공간도 포함된다. 서울특별시라면 남산과 서울 타워, 역사성을 지닌 경복궁 광화문...
-
2004년 인천광역시 및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 근대사에 대한 조우성이 간행한 책. 『인천 이야기 100장면』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비롯하여 인천과 관련된 100개의 항목을 설정하여 이에 대해 중요한 내용을 기술하였다. 내용은 인천 근대사와 지역 정체성과 관련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천이 원조인 각종 문물과 개화기 인천을 풍미했던 인물들에 대한 폭넓은 기술을 통해 인천이라는...
-
인천광역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 구(區)는 서울특별시, 5대 광역시 및 인구 5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설치되는 하부 행정 구역으로, 국가가 위임한 사무를 처리하는 보통 행정 구역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도화동(道禾洞), 숭의동(崇義洞), 용현동(龍現洞), 학익동(鶴翼洞), 주안동(朱安洞), 관교동(官校洞), 문학동...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구민들의 구민상과 의지를 담은 헌장. 1991년 인천광역시 남구[현 미추홀구] 구민 조례가 만들어지면서 제정되었던 인천광역시 남구 구민 헌장이 2012년 5월 1일 제22회 남구 구민의 날을 기하여 개정 선포되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구민 헌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새로운 위상과 구민들의 요구에 걸맞게 구정 목표에 부합하고 지혜로운 구민...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주변의 문화재를 답사하는 역사 문화 탐방을 위한 코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주변 문화재와 구비 전승 이야기를 엮어서 역사 문화 탐방로를 개발함으로써, 지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청소년과 주민들의 이해를 돕고, 전통 문화 도시로서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코스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2012년 전략 과제 중 ‘역사적 자산 가치...
-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고 있는 1899년에 편찬된 인천부의 읍지. 전통 시대 관찬 지리지의 편찬은 국가의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고 각 지역의 환경, 역사적 상황을 파악하여 원활한 통치 행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조선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를 시작으로 하여 중종 대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완성하였고, 영조 대에는 전국적으로 읍지를 총합한 『여...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벌어진 조선과 일본의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1597년에 시작된 일본의 재침입을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당시 자신들의 연호를 따서 ‘분로쿠(文祿)·케이초(慶長)의 역(役)’이라 하고, 중...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땅에 관한 이론. 풍수지리는 한국의 공간적인 전통문화 중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뿌리가 깊고, 문화 경관의 입지나 주거지 선정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미쳐 왔다. 자연 환경의 질서와 이치를 생명의 원리로 인식하고 이를 논리 정연한 학문적 체계로 이해하며, 땅에 대한 이치를 분석·평가해 이를 과학으로 정립하려는 견해가 바로 풍수지리이다. 풍수라는 단어는 장풍득수(藏風得...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전하는 ‘문학산의 이상한 우물’에 대한 전설. 수심이 너무도 깊은 우물이 있었는데, 큰 홍두깨를 이 우물에 띄우면 멀리 팔미도(八尾島) 앞바다에 가서 떠올랐을 정도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 위험한 우물이라고 하여, 옛날부터 어린아이들은 이 우물가에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도록 말렸다고 한다. 『인천시사』 하권의 757면에 「문학산의 이상한 우물」이라는 제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