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면
-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당시 경기도와 충청도의 지도. 경기도와 충청도를 함께 그리면서 월경지(越境地)[고려·조선 시대에 소속 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있던 군현의 특수 구역]를 포함해 군현의 경계와 면(面)의 정보까지 자세하게 수록한 드문 형식의 대형 지도다. 이 지도의 이면에 ‘조(朝)12157’[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 도서 번호]과 6책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이 속해 있었던 조선 시대의 면. 다소면(多所面)은 ‘농사를 짓는 곳이라 물이 많다’는 뜻의 ‘다수(多水)’에서 비롯됐다는 등의 해석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 다소면이 생긴 것은 조선 시대 면리제가 시행되면서부터이다. 영조(英祖) 때의 『여지 도서(輿地 圖書)』 ‘인천도호부’에 의하면 다소면은...
-
일제 강점기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이 속했던 행정 구역 명칭. 1905년 통감부가 설치된 후, 일제는 종전까지 군(郡)을 중심으로 유지되어 왔던 지방 행정 체제를 해체하고 중앙 행정력이 지방 하부 단위까지 미칠 수 있도록 면(面) 중심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10년 「조선 총독부 지방관 관제」와 「면에 관한 규정」을 공포해 면을 최하급 행정...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속하는 법정동. 용현동이라는 명칭은 옛 용정리 앞바다에서 장마 때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용현동은 개항 당시에 수봉 공원의 기슭 아래로 뻗은 능선을 따라 초가집이 드문드문 있었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변두리 지역으로 불렸던 한적한 지역이었다. 구한말 다소면 소속으로, 동명은 비랑이라 불렸으며, 1903년 8월 인천부 관내 동리명을 확정지을...
-
인천광역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 구(區)는 서울특별시, 5대 광역시 및 인구 5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설치되는 하부 행정 구역으로, 국가가 위임한 사무를 처리하는 보통 행정 구역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도화동(道禾洞), 숭의동(崇義洞), 용현동(龍現洞), 학익동(鶴翼洞), 주안동(朱安洞), 관교동(官校洞), 문학동...
-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고 있는 1899년에 편찬된 인천부의 읍지. 전통 시대 관찬 지리지의 편찬은 국가의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고 각 지역의 환경, 역사적 상황을 파악하여 원활한 통치 행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조선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를 시작으로 하여 중종 대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완성하였고, 영조 대에는 전국적으로 읍지를 총합한 『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 4동에 있었던 자연마을. 현재의 숭의동은 구한말까지 인천부 다소면에 속했으며 장사래말이라 불렸다. 장사래말은 현재의 숭의동 전역을 아우르는 말이다. 숭의동은 행정동인 숭의 1~4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9년 숭의1동과 숭의3동을 통합하여 설립된 숭의1·3동에는 숭의 평화 시장과 목공예 마을, 인천 축구 전용 경기장과 숭의 우체국 등이 있다. 숭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소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일. 소금은 인간의 생리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영양소를 공급하며, 식품의 부패를 방지하고, 음식 맛을 내는 대표적 조미료이다. 소금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소금을 생산·유통·소비하는 인간의 활동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소금 생산 방식은 해수(海水)로 소금을 생산하는 것이다. 바닷물에서 얻는 소금은 자염(煮鹽)...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 1392년 조선이 개국하였지만 아직은 전 시대인 고려 시대의 행정 제도를 정비하지 못하였다. 인천이라고 하는 지명은 조선이 개국하여 1413년(태종 13) 지방 행정 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질 때까지 등장하지 않으며, 인주(仁州)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군현제의 정비는 고려 시대 때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속현의 주현화...
-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는 인천도호부에 설치된 지방 군사 조직. 조선 전기에는 함경도·평안도 등의 북방 국경 지대는 군익도(軍翼道) 체제로 국경 방어에 임하였고 그 밖의 남방 지대는 연해(沿海) 요지에 진(鎭)을 설정해 영진군(營鎭軍) 혹은 기선군(騎船軍)을 두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반면, 내륙 지방은 모든 지방 수령에게 병마직(兵馬職)을 겸하게 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