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6년 유형원(柳馨遠)이 편찬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전국 지리지. 『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찬 전국 지리지로 16세기 후반 이후 전국적으로 활발히 제작된 사찬 읍지(私撰邑誌)의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1656년(효종 7) 유형원[1622~1673]이 편찬하였는데, 유형원은 읍지의 종합을 통해 지리적 정보의 전달을 전국적인 범위로...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장오(章五), 호는 수월당(水月堂)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를 지낸 민진량(閔晉亮)이고, 어머니는 첨정(僉正) 유대이(兪大儞)의 딸이다.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한 이시만(李時萬)의 딸 전주 이씨를 처로 맞았다. 민주면(閔周冕)[1629~1670]은 1629년(인조 7) 출...
선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역사적 내력.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인천 일대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곳 중 하나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27년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옛 소년 교도소 서쪽 언덕 위에서 조선 총독부 박물관에 의해 발굴된 고인돌을 통해 이미 선사 시대부터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고려 시대 인천광역시 지역의 옛 이름. 인주(仁州)는 인천의 옛 이름으로, 고려 인종 때 어머니 순덕 왕후(順德王后)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과거 숙종 때 소성현(邵城縣)을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시킨 것을 다시 승격시킨 것이었다. 이후 인주라는 명칭은 이자연(李子淵)[1003~1061], 이자겸(李資謙)[?~1126] 등 고려 전기 외척으로서 세도를 휘두른 이른바 인주 이씨(仁州李...
소금은 인류사에 있어서 다양한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핵심이 되어 왔음을 볼 때에도 그 생명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선사 시대의 사람들은 수렵과 어로 활동을 통해 얻은 동물과 물고기 따위에서 염분을 섭취하였다. 그러다가 한 곳에 정착하여 농경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은 곡물과 채소를 주식으로 하게 되었고, 부족한 염분의 섭취를 위해 소금을 만들어 먹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인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