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
고려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했던 인주 이씨(仁州李氏)로 인해 붙여진 인천 지역의 옛 명칭. 경원군(慶源郡)은 인천의 옛 명칭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던 인주 이씨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인주 이씨가 왕실의 외척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이허겸(李許謙)의 손자인 이자연(李子淵) 때의 일이었다. 이자연의 세 딸이 모두 문종(文宗)의 비로 뽑히면...
-
이희목(李希穆)을 시조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세거 성씨. 부평 이씨(富平李氏)는 이희목을 시조로 하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문학동·학익동·주안동·용현동 등지에 세거하였던 성씨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던 이세주(李世冑),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원도(猿島)[인천광역시 중구에 있었던 섬. 지금은 육지와의 사이가 매립되었다.]에 진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1월 1일에 지내는 명절 세시 풍속. 설은 새해의 첫날, 즉 정월 초하룻날을 의미하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이다. 설은 설날·원일(元日), 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진다. 또한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으로 부르는 것에 대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성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하는 통과 의례. 성년식은 부모의 슬하를 떠나 육체적·정신적 훈련을 받은 다음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의식을 말한다. 전통 시대의 성년식은 관례(冠禮)와 계례(筓禮)로 대표되는데, 관례의 풍습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966년(광종 16)에 왕자에게 원복(元服) 예를 행했다는 『고려사(高麗史)』 기록이 우리나라에서 관례를 행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던 자연마을. 승학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뜸의 마을을 일컫는다. 승기리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신비 마을’로 불린다. 이 마을의 이름은 한때 없어져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생겼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시 이어서[承] 생긴 마을[基]’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내용이며 논...
-
조선 전기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주(仁州)의 지주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자격(子格), 호는 인재(寅齋)이다. 아버지는 신안(申晏), 할아버지는 신집(申諿)이며, 외할아버지는 임세정(任世正)이다. 신개(申槩)[1374~1446]는 1374년(공민왕 23)에 태어나 1393년(태조 2)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5위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맞잡고 힘과 기술을 통해 상대를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씨름은 아이들이 힘을 겨룰 때 많이 하던 놀이로서, 모래판이나 두꺼운 이불을 펼쳐 놓은 방안에서 주로 하였다. 씨름의 어원은 ‘서로 버티어 겨루다’의 뜻을 가진 경상도의 방언인 “시루다”가 명사화하여 ‘씨름’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한자어로...
-
선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역사적 내력.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인천 일대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곳 중 하나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27년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옛 소년 교도소 서쪽 언덕 위에서 조선 총독부 박물관에 의해 발굴된 고인돌을 통해 이미 선사 시대부터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
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출신의 왕비. 연덕 궁주(延德 宮主)가 출생한 해는 미상이고, 사망한 해는 1139년(인종 17)이다. 고려 시대 세도가 이자겸의 셋째 딸이자 고려 17대 인종의 왕비로 인종의 모후 문경 태후(文敬太后)의 동생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폐비 이씨”로 기록되어 있다. 옛 인천광역시 남구 연수동[지금은 인천광역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출신이거나 연고를 둔 자로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여자. 열녀(烈女)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열부(烈婦), 절부(節婦), 절녀(節女), 정녀(貞女)로도 불린다. 열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 진평왕 때의 설씨녀(薛氏女) 이야기, 백제 개루왕...
-
고려 시대 인천광역시 지역의 옛 이름. 인주(仁州)는 인천의 옛 이름으로, 고려 인종 때 어머니 순덕 왕후(順德王后)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과거 숙종 때 소성현(邵城縣)을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시킨 것을 다시 승격시킨 것이었다. 이후 인주라는 명칭은 이자연(李子淵)[1003~1061], 이자겸(李資謙)[?~1126] 등 고려 전기 외척으로서 세도를 휘두른 이른바 인주 이씨(仁州李...
-
이허겸(李許謙)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 지역의 세거 성씨. 인천 이씨(仁川 李氏)는 이허겸을 시조로 하여 고려 시대부터 인천광역시 지역에 세거하던 성씨이다. 고려 시대 문종(文宗)에서 인종(仁宗)까지 7대에 걸쳐 5명의 태후(太后)와 5명의 왕후(王后)를 배출하여 인천의 읍호(邑號) 승강(昇降)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세조(世祖)...
-
1987년 이훈익이 인천광역시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등의 인물, 지명, 역사적 사건들의 사료를 정리한 책. 인물, 지명, 역사적 사건들의 사료를 모아 고증하여 내용에 따라 시대 순으로 정리한 읍지 성격의 책이다. 개항 이래 인천은 극심한 지형 변화를 겪게 되어 전래되는 유형·무형의 유적이 소실되어 망각의 시간 속으로 묻혀 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소중한 문헌 자료와 전설·민담, 민속...
-
신라 말, 고려 초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해당하는 지역의 사회 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 세력.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제도의 정비와 기구의 확대로 왕권의 통치권을 강화하던 왕실도 신라 중대 말에 이르러서는 진골 귀족 세력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경덕왕 대에 전국 주·군·현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고, 당나라 제도를 기준으로 하여 각 관서의 관서명과 관직명을 더욱...
-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군의 지군사(知郡事)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홍상검(洪尙儉)이다. 홍약치(洪若治)[?~?]는 1447년(세종 29년) 친시(親試)에 합격하고 교리를 지냈다. 1452년(문종 2)에 『고려사(高麗史)』 편찬에 참여하였고, 이후 승문원 부교리(承文院 副校理)로 『세종실록(世宗實錄)』의 기주관이 되어 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