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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674
한자 喪禮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집필자 김덕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례|평생 의례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사람이 상을 당했을 때 행하는 예법.

[개설]

임종 전에서 탈상까지의 과정은 상례의 예법에 따라 행해진다. 일반 가정에서도 상례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일생 의례이다. 다른 일생 의례는 간소화될 수 있지만 상례는 효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효를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하였다. 우리나라의 상장례는 고려 말에 주자학이 들어오면서 성리학적 상장례가 정착되었다. 상장례의 기본적인 절차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해 제시되었으며 재래의 도교, 불교, 무속의 상장례가 일정 부분 혼합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절차]

한국의 전통 상례는 임종, 수시, 고복, 발상, 전, 습, 소렴, 대렴, 성복, 치장, 천구, 발인, 운구, 하관, 성분, 반곡, 초우, 재우, 삼우, 졸곡, 부제, 소상, 대상, 담제, 길제의 전과정을 말한다. 오늘날은 이러한 과정들이 많이 생략되었지만 우리는 상례를 통해서 민간에서 행하는 예법의 형태를 알 수 있다.

운명할 시간이 되면 안방으로 모시고 자손들이 곁에 꿇어앉아 임종을 지켜본다. 운명하면 곡을 하고 시신을 찬 곳으로 옮긴 뒤 바르게 눕힌다. 시신을 안치할 때에는 초석이나 왕골자리 또는 대자리를 깐다. 그 위에다 칠성판으로 널빤지를 깔고 어깨나 허리, 다리 등의 빈곳은 짚으로 채우고 시신을 눕힌 뒤 홑이불로 덮는다. 그러는 동안 집안사람 가운데 한 명이 망인이 평소에 입던 웃옷을 들고 나가 “옛 부천군 문학동 00번지 000씨 00세 옷 가져가시오.”라고 세 번 외치고 웃옷을 지붕에 던져 올린다.

이어서 사자상을 차린다. 사자상에는 키에다 밥 세 그릇과 십 원짜리 동전 한 개씩을 밥 위에 꽂는다. 또 사자가 신었던 신발, 저고리나 속옷, 윗도리 등을 담는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 위에 세숫대야를 놓고 물을 담아 놓는다. 사자의 가족들을 불러 놓고 식구들이 사방에 절을 한다. 상제들은 들어가고 키를 절구 위에 놓는다. 집안사람 중에서 의례에 밝은 어른이 호상을 하며 상주와 의논하여 부고를 내며 관을 준비한다.

다음날 상주들이 모두 모여서 시신을 소독약으로 씻긴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 다음 수의를 입힌다. 수의를 입힌 후 물에 불린 쌀을 버드나무로 만든 수저로 시신의 입에 세 번 떠 넣으면서 “백 석이요, 천 석이요, 만 석이며” 하고 말한다. 시신을 삼베로 어깨, 허리, 발목을 세 번 묶고 입관한다. 시신을 안치시킨 뒤 그 앞에 빈소를 설치한다. 빈소는 제상에 혼백상자를 모시고 옆에는 명정(銘旌)을 세운다, 빈소가 설치되면 상주들은 흰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때부터 상주들은 문상객을 받고 빈소를 떠나지 않는다. 입관을 한 후 상주들은 정식으로 상복을 갖춰 입는 성복제를 지낸다. 이어 발인제, 출상, 치장, 초우제, 재우재, 삼우제, 졸곡제, 소상, 대상을 지낸 뒤 상복을 벗는다.

[현황]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의 사례를 보면 30여 년 전 문학 경기장 앞으로 대로가 날 무렵 상엿집이 헐리었다. 원래 문학 경기장이 있는 곳은 공동묘지가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상엿집이 있었다. 흙벽으로 되어 있는 상엿집 안에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여가 있었는데 도둑이 들어 훔쳐갔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상분 씨에 의하면 자신의 조부모의 상례 때만 하더라도 마을의 상여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는 영구차를 이용하여 장례를 치렀다.

과거 선산이 있는 사람들은 선산에 묘소를 정했지만 선산이 없는 사람들은 마을의 공동묘지에 매장하였다. 문학 경기장이 들어설 무렵 공동묘지의 시신들은 당시 100만 원을 주어 옮기도록 하였는데, 대부분 자손들이 파묘하여 화장하였다. 당시에는 납골묘가 없었기 때문에 화장하여 산에 묻거나 선산에 묻기도 하고 뿌리는 사람도 있었다.

과거에는 주택에서 돌아가시면 상례를 지내고 상여를 이용하여 묘지로 가서 매장하였으나 근래에는 병원에서 작고하면 화장터에서 화장을 한 후 납골묘로 가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선산이 있는 사람들은 매장을 하기도 하는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의 경주 이씨는 문학산 군부대 주변에 선산이 있다. 그곳이 개발되어 일부 땅이 좁아져서 김포에 따로 선산을 구입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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