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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삼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전해오는 가난한 집안에 시집온 효부에 관한 설화. 1994년에 하종갑이 진양문화원에서 편찬한 『진양민속지』에 처음 수록되었다. 옛날에 어떤 여인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시집을 갔다. 시집 간 이튿날부터 남의 집에 품을 팔아 시부모와 남편을 봉양하였으나 죽어라고 일을 해도 입에 풀칠을 하기가 어려웠다. 하루는 장대비가 내려도 하는 수 없이 남의 집 방아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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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효행 관련 고문서. 「권병천등상서」는 단성·거창·진주 등 경상우도 유생들이 하진태의 효자 정려를 위해 암행어사에게 올린 진정서이다. 매우 긴 글로 하진태의 효행상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진정서를 접수한 어사는 사림의 공의를 인정하고 효행을 적은 원장(原狀)을 등서(謄書)하여 들일 것을 지시하는 등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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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전해오는 봄에 나물을 캐러 가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임산물채취요 중에서도 나물캐는소리에 해당한다. 나물캐는소리는 나물의 이름과 모양, 색깔, 쓰임새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과 소리나 의미를 소재로 하여 언어 유희를 표현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80년 8월 4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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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단동촌동장수본」은 단동촌 동장이 사죽집강(沙竹執綱)에게 하진태가 행한 효행의 실상을 서면으로 보고하는 문서이다. 수본(手本)은 공사(公事)에 관하여 상급관청 또는 관계 관서에 보고하는 문서이다. 단동은 사죽리에 속한 자연부락 명칭으로 흔히 단목으로 불리는데, 지금은 사죽이란 명칭은 사라지고 단목리로 통일되었다. 하진태가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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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전해오는 잡귀 이야기. 1980년 8월 11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조초악(여, 67세)이다. 어떤 집에서 세 가지 비밀을 적은 종이를 궤 안에 넣어두었다. 그 집 새신랑이 장가를 가려고 하는데, 근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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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전해오는 망건 도둑 이야기. 1980년 8월 3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하만주(남, 73세)이다. 옛날 돈도 없고 잡상스런 사람이 망건을 사러 갔다. 망건을 펴 놓고 파는 장바닥에 가서 망건을 하나 거꾸로 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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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있는 큰 숲이 아름답다고 하여 가정(佳亭)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오곡리 가정자(柯亭子)였다. 임진왜란 후 대곡리에 합해진 후 대곡면 가정촌(佳亭村)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정촌과 중촌(中村), 용동(龍洞) 각 일부를 통합하여 가정리라 하였다. 가정촌에는 서재골, 지식골, 매봉,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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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가정리에 있는 숲 조선 전기부터 숲이 아름답고 자연 절경이 뛰어나 여름이면 각처에서 휴식처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으로 유명한 동산이다. 가정숲은 가정리 마을 앞에 있으며 큰 숲이 아름답다고 하여 가정(佳亭)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가정리 가정마을회관 뒤편에 위치한다. 진주에서 의령 쪽으로 가다가 대곡면사무소에서 대곡중학교, 대곡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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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진주군 설매곡면의 지역으로서 넓은 바위가 있어 넓은바위, 너른바위(廣石)라 부르다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광석리라 명명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웅곡(熊谷), 가야동(可也洞)을 병합하여 광석리(廣石里)라 하였고 대곡면에 편입되어 면 중심지가 되었다. 광석리를 둘러싸고 서쪽으로 맷골, 산지골, 시지곡, 골물곡 등의 골짜기와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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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에 합격한 이 마을 선조가 깃발을 앞세우고 마걸둥천 연못가에 내리니, 저녁 노을 햇빛의 그림자가 연못물 위에 붉게 비치고 말은 물을 먹었다 한다. 이로 인하여 붉은 단(丹) 자와 먹일 목(牧) 자를 따서 단목(丹牧)이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단지동(丹池洞)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단목리라 하여 대곡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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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연자방아. 연자방아는 맷돌의 일종으로, ‘연자매[硏子磨]’라고도 한다. 둥글고 넓적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세로로 세워서, 이를 소나 말 따위로 하여금 돌리게 하여 곡식을 찧는 기구이다. 단목리의 연자방아는 1930년대까지도 많이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들판에 보존되어 있다. 밑돌 위에 곡식을 찧기 위한 작은 돌이 얹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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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숲. 다리목과 단목마을 입구에 있어서 단목숲이라 불리고 있다. 과거에는 수천 평 이상의 넓이로 아름다운 숲이었으나, 1921년 진주-의령간 지방도가 개통되면서 단목숲이 내외로 나뉘어 분할되었다. 안쪽은 안숲으로 변했다가 1952년에 단목초등학교가 설립되면서 사라지고, 바깥숲은 1969년 경지 정리로 인해 농지로 조성되어 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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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었던 초등학교. ‘미래사회에 대처할 능력과 인성을 갖춘 창조적인 사람’을 기르는 것을 교육목표로 학생과 교사가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1대1 토론을 생활화하고, 자기 자신을 남에게 나타내 보임으로써 자기의 발전을 꾀하도록 표현의 기회를 확대하는 열린사회 풍토를 조성하였다. 1948년 5월 14일 대곡초등학교 단목분교장으로 개교하였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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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의 옛 지명. 동리 안에 붉은 연못이 있어 단지동(丹池洞)이라고 하였다. 단동(丹洞)이라는 이름은 ‘의를 숭상하는 마을’이라 하여 붙었다고 한다. 단목(丹牧)이라고도 하는데, 과거에 합격한 선조가 깃발을 앞세우고 마걸둥천 연못가에 내려보니, 저녁 노을 햇빛이 연못물 위에 붉게 비치고, 말이 거기서 물을 마시니, 여기서 붉을 단(丹)과 먹일 목(牧)을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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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에 있는 바위. 옛날 바위 위쪽에 길이 있었는데, 그 길 위에서 바위에 돌을 던져 바위 위에 얹어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아들바위라 불리게 되었다. 마진리 마호 서쪽 덕곡리로 가는 도로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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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유곡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교육목표는 ‘정직하고 성실하며 창의적인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다. 교훈은 ‘정직, 성실, 창의’이다. 1967년 1월 20일 대곡고등학교로 3학급을 설립인가 받아, 1967년 4월 20일 63명으로 개교하였다. 1967년 5월 30일 신축 교사 6교실을 하경완이 기증했으며, 1971년 11월 17일 학칙을 변경하여 6학급으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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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와룡리 일대에 있는 공업단지. 1996년 12월 27일 지정되었고 그 이듬해인 1997년 3월 착공되어 1998년 12월 31일 준공되었다. 2012년 12월말 기준 19개 업체에서 249명(남 190명, 여 59명)이 근무하고 있다. 132,509㎡ 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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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골짜기의 골이 깊고 크다고 하여 한실 또는 대곡(大谷)이라 한 데서 유래된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대곡리 대동(大同)이었다. 임진왜란 후 오곡리를 합하여 대곡리라고 부르다가 조선 말기에 대곡면이라 하였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시 대곡면의 대동(大同) 일부를 대곡리(大谷里)라 하여 대곡면 10개 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 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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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북동부에 위치한 면(面). 면 내에 위치하고 있는 골이 깊고 크다고 하여 한실 또는 대곡이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대곡리(大谷里), 오곡리(吳谷里), 그리고 북면(北面) 사죽리(沙竹里), 설매곡리(雪梅谷里), 월배곡리(月背谷里), 잉옥리(芿玉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곡리(大谷里), 설매곡리(雪梅谷里)라 하였다가 18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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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문서류 단목마을에는 동산문화재로서 진양하씨 가문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중요한 고문서들이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 단목리와 금곡면 운문리에 대대로 살고 있는 진양하씨 소장의 고문서들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고문서집성』에 수록되었다. 2000년 대곡면 단목리 창주 후손가 소장 고문서를 『고문서집성』47~48권으로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금곡면 운문리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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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종중의 종계(宗契)가 있었으나 지금은 열리지 않고, 대신 음력 4월 8일에 종목회(宗睦會)를 열어서 효자. 효부를 표창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효행심을 진작시키려는 행사라고 한다. 마을제사는 지금은 지내는 마을이 없지만, 지내마을에서는 약 70여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앞 당목에서 거리제를 지냈다고 하나, 당목이 벼락을 맞은 이후로 중지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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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의 읍지인 『진양지(晋陽誌)』에서 단목마을에 대해 “토지가 척박하고 가뭄이 자주 든다. 사족들이 많이 거주하여 관직자가 끊이지 아니하였고, 마을의 풍습은 시서(詩書)를 숭상하고 효우(孝友)를 돈독히 한다”고 평가할 정도의 전형적인 반촌(班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토지가 척박하고 가뭄이 자주 들었다고 하였는데, 이 문제는 단지공 하협이 지내에 천방사업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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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마을에 내려오는 구비전승으로는 「엄마다리」·「의적 강목발과 하백립」 이야기 등이 전승되어 오고, 지내마을에서는 단지공의 종가터를 고를 때 생겼다는 「해기터」 등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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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마을. 단목마을은 진주시 북쪽 대곡면 단목리에 위치하고 있다. 단목리 안에는 단목(丹牧)·지내(池內)·신흥(新興) 등 3개 자연마을이 속해 있는데, 모두 진양하씨(晋陽河氏)들의 집성촌으로 현재 약 120호의 마을 주민 중 70% 정도가 하씨이다. 마을의 가장 중심부에는 진양하씨의 시조인 하공진(河拱辰)의 위패를 모신 세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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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목 : 옛날 진주~의령 간을 연결하는 길의 큰 다리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숲 : 단목마을 입구에 수백 년 된 물버들나무가 있었는데, 1921년 진주~의령 간 지방도가 개통되면서 숲이 나뉘어 안숲과 바깥숲으로 부르고 있다. 안숲은 1952년에 단목초등학교가 설립되면서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학교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고목이 된 물버들 10여 그루가 보존되고 있다. 바깥숲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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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인적 구성- 『세종실록 지리지』에 소개된, 진주 토성(土姓)의 하나인 진양하씨의 집성촌인 단목에 언제부터 하씨들이 모여 살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은 하공진의 13세손인 하기룡(河起龍) 때부터라고 알고 있다. 하기룡은 15세기 중엽의 인물이니 단목마을의 역사는 600여년 정도가 되는 셈이다. 현재 진양하씨는 3개의 파가 있는데, 단목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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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대곡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상남도 진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문산읍], 15개 면[내동면, 정촌면, 금곡면, 진성면, 일반성면, 이반성면, 사봉면, 지수면, 대곡면, 금산면, 집현면, 미천면, 명석면, 대평면, 수곡면], 16개 행정동[천전동, 성북동, 중앙동, 상봉동, 상대 1동, 상대 2동, 하대 1동, 하대 2동, 상평동, 초장동, 평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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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유곡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교육목표는 ‘미래 사회를 주도할 도덕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을 육성한다’이며, 교훈은 ‘밝고, 바르고, 알차게’이다. 1949년 2월 17일 대곡고등공민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1952년 4월 20일 대곡공립중학교 3학급으로 개교하였다. 1985년 3월 1일 중학교가 분리, 12학급으로 인가되었다. 2010년 3월 1일 학칙변경으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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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일대를 흐르는 하천. 대곡천 하류 덕곡교 부근에는 강폭의 1/3을 개방 수면으로 유지하고, 2/3는 석축을 쌓아 둔치로 이용하고 있다. 하상은 인공화된 평탄지로서 개방 수면의 식생은 빈약한 편이다. 대곡천은 우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건천(乾川)을 이루고 있으며 하천수는 대체로 탁하다. 대곡천의 퇴적물은 모래가 대부분이며, 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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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와룡리 580번지[진의로 970]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꿈을 슬기롭게 준비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육성”이라는 교육지표 아래 ‘예절 바르고 질서를 잘 지키는 어린이, 성실하고 노력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탐구하며 진취적인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를 육성한다. 1927년 4월 24일 대곡공립보통학교를 어방정리 가교사에서 개교하였다. 1938년 4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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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에 진주목 동면 오곡리(吳谷里) 덕곡동(德谷洞)이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곡리에 합병되어 조선 후기까지 대곡면 하촌동과 덕곡동의 일부였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촌동, 덕곡, 대여촌면 송곡동 일부를 합하여 덕곡리라 하고 대곡면의 10개 리 중 하나로 편제하였다. 남쪽으로 남강을 접하고 있다. 북쪽은 가정리, 동쪽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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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단련을 위하여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돌. 들돌은 옛날의 놀이도구 겸 운동기구로 1930년대까지 마을 공동마당에는 크기가 다른 단단한 둥근 돌 2개 정도를 준비해 두고, 마을 청소년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데 이용하였다. 이 돌로 배 올리기, 어깨 넘기기, 던지기 등 시합을 하여 힘을 겨루었는데, 이처럼 드는 데 사용한 돌이라 하여 ‘들돌’이라 부르고 있다. 둥근 형태에 둘레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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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농사가 잘되고 마을 앞에 강이 흐르고 나루가 있다 하여 마진(麻津)이라 이름하였다. 또한, 마(麻)가 재배되어 삼베옷 등이 지어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대곡리의 일부로 대동(大同), 소동(小洞), 마진(麻津)이 있었다. 조선 말기까지는 대곡면 마진동(麻津洞)이라 하였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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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2004년 진주시·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진주시-』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으나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마진리 고인돌은 크게 1, 2로 구분된다. 마진리 고인돌1 유적에는 2기의 고인돌이 있다. 1호 고인돌은 뚜껑돌의 평면형태가 장방형이고, 크기는 길이 140㎝, 너비 110㎝, 두께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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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거나 물에 불린 곡식 등을 갈 때에 쓰이는 도구. 곡식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거나 물에 불린 곡식 등을 갈 때에 쓰이는 도구로, 표면이 거칠거칠한 돌을 납작한 원통 모양으로 다듬고, 이렇게 다듬어진 돌 2개를 위아래로 맞추어놓은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구멍을 판 윗돌에 갈 것을 넣고, 윗돌 옆에 수직으로 달려 있는 손잡이을 잡아 오른쪽으로 돌린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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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 전승되는 바깥사돈과 안사돈과 동침을 소재로 한 설화. 민담 가운데서도 소화(笑話)는 ‘웃음을 주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소화의 특징은 단편성을 들 수 있는데, 다른 설화보다 이야기 자체의 길이가 짧으며 간결한 표현이 특징이다. 소화는 그 형식적 특성상 이야기의 최후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말에서의 재치와 임기응변의 반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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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과 관련된 설화. 버릇없이 자란 아들의 개과천선 설화는 본격담으로서 동물을 소재로 한 동물담, 웃음의 유발을 목적으로 하는 소화(笑話) 등과 달리 인간 관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흥미 위주의 이야기인 민담에 속하면서도 그 내용이 교훈적이거나 윤리적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교훈적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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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전승되는 풀무질을 할 때 불렀던 노래. 이 노래는 본래 풀무질을 할 때 불렀던 것인데, 애기 어르는 노래로 그 기능이 변화된 것이다. 조심하고 정성을 들여서 해야 하는 풀무질과 마찬가지로 애기를 어르고 키우는 일 역시 조심해서 애기를 다루고 정성을 쏟아야 하기에 그 기능이 쉽게 전이될 수 있는 것이다. 애기를 어르면서 부르는 노래는 다양하다. “금자동아 옥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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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전승되는 베틀짜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베짜기는 오랜 시간 동안 앉아서 하는 노동이므로 지루함과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길게 계속되는 노래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베짜는 소리’의 사설은 길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길게 이어지는 ‘베짜는 소리’의 사설을 성격에 따라 나누면 둘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는 베틀과 베틀의 구성에 대해 하나하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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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중한 병에 걸려 위독한 지경에 처한 어머니를 몇 번이고 지극 정성으로 간호한 하진태의 효행 실적을 단동촌 동장이 사죽집강에게 서면으로 보고하였는데, 사죽집강이 이것을 진주목사에게 서면 보고하고 현양을 요청한 것이다. 「사죽집강서목」에서 서목이란 하관이 상관에게 올리는 원장(原狀)에 구비하는 문서를 말한다. 즉 단동촌 동장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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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있는 강민첨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산앙사(山仰祠)에 봉안된 강민첨(姜民瞻)[?~1021]은 진주(晋州)가 본관으로 목종 때 문과에 급제, 1012년(현종 3)에 안찰사(按察使)로서 영일(迎日)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격퇴하였다. 1018년 거란[契丹]이 10만 대군으로 쳐들어오자 강감찬(姜邯贊)의 부장(副將)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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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덕곡리에 있는 비. 경주최씨가 남편 서치담(徐致淡)이 중한 병에 걸리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이는 등 온갖 정성으로 남편을 간호한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사각형 받침돌 위에 높이 107㎝, 너비 76㎝, 폭 12㎝의 몸돌을 세웠다. 머릿돌이 존재하지 않는 대신, 특이하게 몸돌의 윗부분 모서리를 각을 내어 뾰족하게 처리하였다. 비의 제목은 ‘열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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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진왜란 때 강씨가 이주해 살았는데 강심(姜深)이라는 사람이 눈이 내릴 때 매화꽃이 피는 것을 보고 설매(雪梅)라는 이름을 지은 데서 유래되었다. 용짓골, 덕구, 행정(杏亭), 삿골[沙谷], 임계정(臨溪亭)을 통틀어 설매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 진주목 속방의 북면 설매곡리(雪梅谷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말기까지는 설매곡면(雪梅谷面)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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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있는 조선 중기로 추측되는 고분.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 설매마을 뒷산에서 설상으로 뻗어 내려온 구릉 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간행한 『문화유적총람중권 -경상남도-』에 설매리 마을 뒷산 대숲에 2기의 가야고분인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봉토분이 분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2006년 재조사가 실시되었다. 봉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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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대곡리에 있는 산. 대곡리 산 34-2번지 일대에 분포하며, 해발 고도는 305m 정도이다. 산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조성 연대가 불분명하고 성벽은 허물어졌지만 붕괴된 석축의 내부에는 건물지(집터)로 추정되는 석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건물터에서는 기와편이 채집되고, 집터와 우물터, 망루터 등이 남아 있는 산성이 숲 속에 숨겨져 있다. 『국역 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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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가난한 총각의 결혼담. 1980년 8월 4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조초악[여, 67세]이다. 예전에 한 가난한 총각이 있었다. 집안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격 또한 숙맥이라 서당의 다른 학동들에게 항상 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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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大谷面)에 전해오는 엄마를 위해 다리를 놓아 준 삼형제의 효도에 관한 설화.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丹牧里)에 가면 ‘엄마다리’라는 다리가 있다. 지금은 경지가 정리되어 다리가 땅에 묻혀서 형체가 없어졌는데, 엄마다리 설화는 그 다리에 얽힌 이야기이다. 엄마다리 설화와 같은 유형의 설화는 전국적으로 ‘효불효 다리’ 또는 ‘오모다리와 삼형제’ 등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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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있는 열녀 전주유씨의 정려비. 강엄의 처 전주유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35㎝, 너비 56㎝, 폭 15㎝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몸돌의 좌우에는 장방형의 받침돌을 덧붙여 머릿돌을 받치게 설치하였다. 비문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비의 제목은 「열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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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오응운등상서」는 효자 하진태의 포증을 건의하는 경상우도 유생들의 건의서이다. 하진태의 노모를 향한 지극한 효행을 기리고 정려를 받기 위한 상서문은 하진태의 생존시부터 시작하여 사후에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오응운, 최상갑, 정운현 등 진주 일원의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진정서를 올린 일종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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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세(山勢)를 보면 유동에서 봉평으로 내려오는 지형(地形)이 용(龍)이 누워있는 형태와 비슷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 전기 진주목 동면 오곡리(吳谷里)에 속하였다. 임진왜란 후에 대곡리(大谷里)에 병합되어 조선 말기까지는 대곡면에 속하였고, 1914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으로 유곡동(柳谷洞), 용동(龍洞), 가정동(佳亭洞)과 대여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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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서 전승되는 교훈담. 1980년 8월 4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조초악(여, 당시 67세)이다. 한 가난한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비록 가난했지만 손님 대접을 잘 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할머니는 사시(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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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의 법정리. 옛날 용이 살고 있었다 하여 용당, 용댕이라고 한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북면 설매곡리(雪梅谷里) 감암동(甘巖洞)의 감바우로 불리다가 1864년(고종 1)에 리가 면으로 개편되면서 설매곡면이 되었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상감(上甘), 중감(中甘) 일부를 병합하여 용암리라고 하고 미천면에 속하였다가, 1983년 2월 11일 행정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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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북면 사죽리 월가동(月家洞)이었고, 조선 후기까지 진주군 사죽면 월아동(月牙洞)이었다가 1914년 지방 행정 구역의 개편으로 던날, 달갈, 외또리, 바람이, 감나무골, 뻣정지(보정지)를 병합하여 월아리(月牙里)라 하였고 대곡면에 편입되었다. 서남쪽은 주로 평지로서 논밭(애또지, 민두지, 창멀리, 등멀리 등)이 주를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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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전승되는 월아산(月牙山) 망부석의 내력을 알려주는 설화.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4에 정식으로 채록 사항이 밝혀져 있다. 1980년 8월 4일에 조사자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다. 제보자 하계용은 50세의 남성이다. 옛날 월아산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의 주지 스님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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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 때 진주목 소속의 북면 월배곡리(月拜谷里)였다가 임진왜란 후에는 설매곡리(雪梅谷里)에 병합되고, 1864년(고종 1년) 리(里)가 면으로 개편되면서 다시 설매곡면 월배리로 되었다. 1914년에는 지방 행정 구역의 개편으로 월암리라 하여 미천면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 2월 11일 대곡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덕촌(德村)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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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진주군 사죽면의 느티골[楡谷]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한자어로 유곡리라 하여 대곡면에 편입시켰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대포동과 지석동, 대여촌면의 송곡 일부, 미천면의 정성동·호동 일부를 병합하여 대곡면 유곡리라 하였다. 느티골을 비롯하여 모시골[楮谷], 원촌(院村), 살구정[杏村洞], 샘땀, 안마을, 서재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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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유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 -경상남도-』와 2003년 진주시와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진주시-』에 의해 학계에 알려졌으나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유곡리 13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집현면에서 미천면으로 향하는 도로의 북동쪽에는 지석마을이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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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암리에 있는 비. 김춘식의 처인 은진송씨가 부모님께 행한 효행과 남편에게 행한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45㎝, 폭 18.5㎝, 가로 44㎝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올렸다. 비문은 다른 비문과는 달리 몸돌에 장방형으로 비문을 새길 부분을 파서 그 속에 새겨놓은 점이 특징이다. 비의 제목은 ‘은진송씨효열비(恩津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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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이경상등상서」는 하진태의 효자 정려를 위해 암행어사에게 올린 경상우도 유생들의 진정서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진주목·감영에 수십 장의 진정서를 올렸지만 포증사업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자 암행어사에게 특별 건의를 한 것이다. 그러나 암행어사 역시 공의를 빙자하여 번거롭게 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다. 진정서를 올린 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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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고문서 중 별급문기. 이탁의 본관은 전의(全義), 좌승지를 지낸 이종문(李宗文)의 손자이다. 이탁의 사위 하명은 1660년(현종 1) 식년 진사시에 입격했는데, 병환 중에 사위의 입격 소식을 들은 이탁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노비 1구와 전답 15마지기를 지급한 것을 문서로 작성한 것이다. 과거 합격에 따른 재산 지급은 별급의 전형적인 형태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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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출가한 딸의 효·불효에 관한 설화.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1980년 8월 대곡면(大谷面) 단목리(丹牧里)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하만주[당시 73세]이다. 옛날 한 남자에게 딸 두 명이 있었다. 큰 딸은 못 살고, 작은 딸은 잘 살았다. 한 번은 그 사람이 작은 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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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훈장을 이용해 득을 보려는 학동들의 이야기.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1980년 8월 진주시 대곡면(大谷面) 단목부락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하만주[당시 73세]이다. 서당에서 공부하는 학동들을 가리켜 ‘서재꾼’이라고 한다. 한 서당의 서재꾼들이 장난을 자주 했다. 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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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아리에 있는 진양정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진양정씨의 5세손 장춘원(張春源)과 6세손 장진의(張振義)가 중심이 되어 1942년에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아리 마을회관 옆에 남향으로 있다. 거북받침돌에 높이 141㎝, 폭 53㎝, 두께 23㎝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 중앙에는 태극문양 조각이 있다. 비의 제목은 ‘유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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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에 있는, 절부 진양하씨를 기리는 비. 진양하씨의 열행과 효행을 기리기 위한 효열비로, 진양하씨의 아들 이점호(李点浩)가 주도하여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리 마진리 마호마을 입구 지방도 변에 동북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00㎝, 폭 45㎝, 두께 16㎝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석 둘레를 시멘트 블록 담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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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광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만석의 선정을 기리는 비. 정만석이 1809년 4월 16일부터 1810년 8월까지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할 때 베푼 선정(善政)에 고마움을 느낀 지방민이 1813년(순조 13)에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광석리 마을창고 앞에 남향하여 있는데, 앞 들의 경지정리사업을 할 때 들판에 있던 비를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사각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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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하진태의 효행 정려를 위한 상서문은 1791년 하진태의 생존시에 「단동촌동장수본」이나 「사죽집강서목」 등 이미 행정계통에 따라 보고된 바 있었고, 1800년 하진태의 사망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수십 차례에 걸쳐 진정서가 올려졌으나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하진태 뿐만 아니라 다른 효자나 열부에게서도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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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전승되는 제 복에 사는 딸에 관한 우행담(偶幸譚)적 설화.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4에 정식으로 채록되어 있다. 1980년 8월 3일에 조사자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다. 제보자 성경선은 61세의 여성이다. 그 후 하종갑이 수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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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丹牧)리의 진양하씨 문중에서 편찬한 문집.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진주를 중심으로 남명학을 계승하는 선비들이 배출되었고, 진주 단목의 진양하씨 문중도 그 중 하나이다. 단목 진양하씨의 가학으로 정착한 남명학은 그 후손들에 의해 맥을 이어갔는데 인재(忍齋) 하윤관(河潤寬)이 대표적 인물이다. 인재의 학문은 그의 아들인 하응회(河應會)와 손자인 죽와(竹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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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진주 담산 고택은 19세기 중엽 단파(丹坡) 하계룡(河啓龍)[1851~1932]이 건립한 주택이다. 당호(堂號)는 담산(澹山) 하우식(河祐植)[1875~1943]의 호를 따서 담산 고택으로 하였다. 단목리는 창주(滄洲) 하증(河憎)[1563~1624]이 입향하여 번성한 집성촌이다. 이 가문은 후손들인 습정재공, 생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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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고문서는 호구단자, 준호구, 분재기류, 유명 인물의 편지도 섞여 있는 등 다양한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고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문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호구단자 및 준호구 호구단자 24건과 준호구 1건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중 하명(河洺)의 준호구는 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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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책판. 이 책판의 저자 창주(滄洲) 하징(河澄)[1563~1624]은 정인홍의 문인으로 남명 조식의 제자들에게 인정을 받아 1606년에는 덕천서원의 원장으로 역임하였으며 남명의 작품을 간행하는 것을 주도하였으며 1620년에는 『진양지』를 최초로 편찬하였다. 창주집 책판은 1897년 12월에 진주의 오방제에서 목활자로 간행되었던『창주선생유사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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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하진태(河鎭兌)의 효행 관련 문헌. 1. 『봉선(奉先)』 규격은 26×31㎝이다. 수필본으로 앞부분 「연대사위급신사위도록(連代祀位及新祀位圖錄)」, 뒷부분 「조모주병록일기(祖母主病錄日記)」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연대사위급신사위도록」은 1788년(정조 12) 당시 정문조(旌門祖), 창주조(滄州祖), 오대조(五代祖), 고조(高祖), 증조(曾祖), 부(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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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재령이씨의 고가로 1718년(숙종 44)에 지어져 수차례 보수를 거쳤다. 전형적인 남부형 고가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특징적인 요소가 있어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06호로 지정되었다. 소재지의 지명인 대곡면 마진리와 소유주의 성씨인 재령이씨를 따서 진양 마진리 이씨고가라고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59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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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재령 이씨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일대는 조선 전기 재령 이씨(載寧李氏) 모촌 이정(李瀞)이 입향한 이래 그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진주 마진리 이영 소장 고문서 일괄은 이덕관(李德寬)의 집안인 마호당(磨湖堂)에서 전해 오는 고문서들 가운데 195건으로, 2012년 7월 26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22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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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대곡리에 있는 산성. 송대산(일명 죽방산, 해발 311.5m) 정상부 및 송대산 북쪽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산성이다. 2005년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행한 지표조사에 의하면, 전 송대산성은 석축의 테뫼식 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쌓았기 때문에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긴 부정형이고, 산성의 총 둘레는 4㎞에 달한다. 또한 성 내부에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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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광석리에 있는 법무부 소속의 교정기관. 한국의 교도소는 일제강점기의 잔재였던 감옥이나 형무소에서처럼 엄격한 규율, 24시간에 걸친 감시체제, 일과표에 따른 형무관(지금의 교도관)의 지시 등 타율적 생활을 기본으로 하였던 종래의 격리·응보·위협인 제도를 지양하고 교정주의 이념을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1961년에 행형법을 개정하고 종래의 형무소라는 명칭 대신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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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인 어득강(魚得江)의 시집. 어득강[1470~1550]은 진주 출신으로 자는 자유(子遊), 호는 관포(灌圃), 본관은 함종(咸從)이다. 진사에 입격하고 149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1529년에는 벼슬이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이 되었으며, 1549년에는 품계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특히 시에 능했다. 하증(河憎)[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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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전승되는 죽은 하륜(河倫)의 부탁을 들어준 병사(兵使)에 관한 설화. 하륜의 영혼 설화는 특정 지역을 한계로 하는 지역적 전설이며, 역사적 사실로부터 성립하고 성장한 역사적 전설이다. 귀신 이야기는 민담에서는 신이담(神異談)의 일종으로 널리 전승되는 소재이다. 사실 이러한 귀신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원령(怨靈)과 같은 귀신 그 자체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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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우의 처 해평윤씨 친정 남매들의 화회문기. 하윤우(河潤宇)[1647~1707]는 창주(滄洲) 하증(河憎)[1563~1624]의 증손이며, 부인 해평윤씨는 영의정 윤방(尹昉)의 현손녀이다. 하윤우의 처 해평윤씨의 친정 남매들의 화회문기로, 해평윤씨의 아버지 윤세규의 사후 그 자녀들이 화회 분집할 때 작성한 것이다. 종이에 묵으로 쓴 문서이다. 크기는 55.2㎝×122.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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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윤우가 자녀에게 재산을 분급하기 위해 작성한 금급문기. 하윤우(河潤宇)는 슬하에 3남(하응운(河應運), 하응일(河應一), 하응휴(河應休)) 2녀(첫째사위 정상길(鄭相吉), 둘째사위 강공일(姜公一))을 두었는데, 그들에게 몫에 따라 재산을 분급하기 위해 작성했다. 종이에 묵으로 쓴 문서이다. 크기는 44㎝×275㎝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을유(1645)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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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하응운(河應運)이 장자 하재악(河載岳)에게 한 유언을 적은 문서. 하응운 유언은 1월 23일 작성되었는데, 이로부터 5일이 지난 28일에 향년 71세의 나이로 하응운은 생을 마감하였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하응운에게는 부실과 서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들 재산에 대한 처리와 당부가 주된 내용을 이룬다. 또한 치상 시에는 모나 방사 등을 사용하지 말고, 마나 면, 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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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찬[하진태] 남매가 부모 사후에 합의하여 재산을 나누는 화회문서. 하찬(河鑽)[1737~1800]은 하재악(河載岳)[1695~1742]의 장남이나 순서상으로는 1남5녀 중 막내였다. 분재가 이루어진 10월 28일은 하찬이 혼례를 올리고 신행을 끝낸 직후인데, 분재기 서문에 따르면, 다른 남매들은 상제례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고 셋째 사위 한용만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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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공(丹池公) 하협(河悏)[1583~1625]과 그 자손들의 유묵과 유적 일괄. 조선시대 진주에는 남명학(南溟學)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단목(丹牧)의 진양하씨(晋陽河氏) 또한 학문적으로 남명학파에 속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남인 가문이었다. 단지공 하협은 진사로 급제하였으나 출사를 하지 않고 평생 학문에 정진했으며, 그 후손인 하진보(河晋寶), 하위보(河魏寶), 하윤관(河潤寬), 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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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있는 자동차 부품 생산기업. 급변하는 외부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무한 경쟁시대에 전사적 품질 경영 실천을 모토로 가장 작은 것부터 철저히 시행한다는 행동규범 아래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궁극적으로는 납기나 가격 면에서 고객의 요구를 맞추어 주는 고객중심의 사고와 항상 고객과 함께 호흡한다는 경영이념을 기초로 1995년 4월 5일에 설립되었다. 19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