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과 향교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에 있던 조선 전기의 서원.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관향(貫鄕)이 하동(河東)이므로, 하동에 서원을 창건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발의하여 지역 유림과 하동 정씨(河東鄭氏) 후손들이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때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순찰사(巡察使)로 부임하여 적극적으로 서원 건립...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하동군 옥종면은 본래 진주 땅이었으나 1906년 하동에 소속되었다.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은 영일 정씨(迎日鄭氏)의 세거지로, 1715년(숙종 41) 시조(始祖)인 형양공(滎陽公) 정습명(鄭襲明),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정몽주의 손자이자 세조 때 사육신(死六臣)의 무죄를 주장하다 죽은 설곡(雪谷) 정보(鄭保)...
-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 최씨 문중의 서원. 인천서원(仁川書院)은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954번지에 있다. 1719년(숙종 45) 지역 유림과 전주 최씨(全州崔氏) 후손들이 죽당(竹塘) 최탁(崔濯)[1598~1645]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여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 남포마을에 인천서원을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종천서원(宗川書院)은 본래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었는데, 훼철된 후에 안계리 안계마을에 있는 모한재(慕寒齋)에 서원의 현판이 옮겨져 걸려 있다. 매년 음력 3월 10일 모한재에서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석채례(釋菜禮)를 지내며, 목판을 비롯하여 미수(眉叟) 허목(許穆)과 남구만(南九萬)의 친필...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지방 교육 기관. 1415년(태종 15) 현감 최승선이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문묘와 하동향교(河東鄕校)를 창건하고 훈도(訓導) 1명을 두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에 왜적이 침입하여 문묘와 향교, 문적, 기물 등이 모두 소실되었으며, 1603년(선조 36) 현감 이경호가 다시 중건하였다. 1661년(현...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신촌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서당. 덕원서당(德源書堂)은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1534~1590]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석정 정홍조는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1529~1590]의 제자로, 스승이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연루되어 모함을 당하자 신원(伸寃)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였다. 정홍조의 자는 사응(士膺)이며, 본관은 진양...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있는 진양 하씨 문중의 서당. 진양 하씨(晉陽河氏)의 세거지인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후손들이 조상을 사모하고 현조(顯祖)를 기리기 위한 뜻에서 건립하였다. 도천서당(道川書堂) 내에 경현사(景賢祠)를 지어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 참의공(參議公) 하경리(河敬履), 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 경절공(敬節公) 하숙보(河叔溥)를 봉안하였다....
-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중촌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 서당. 신천서당(新川書堂)은 수당(修堂) 최경병(崔瓊秉)[1865~1939]이 강학하던 곳이다. 최경병의 자는 영호(永好),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계남(溪南) 최숙민(崔琡民)[1837~1905]의 문인이다. 하동 서황리 경현당(河東西黃里景賢堂)의 옆에 위치한다. 주위에 대숲이 우거져 있어 그윽한 느낌을 준다. 하동 서황리...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산촌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서원. 하동 북방리 수정당(河東北芳里守正堂)은 옥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옥동서원(玉東書院)이라고도 불렸다. 지역 유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던 강학 공간이었으며, 사당인 존덕사(尊德祠)에는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1529~1590]과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1534~1590]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인천서원(仁川書院) 내에 있는 강학 공간. 하동 서황리 경현당(河東西黃里景賢堂)은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중촌마을에 위치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여 주변 경관이 매우 좋으며, 뒤편에는 대나무 밭이 조성되어 있다. 1719년(숙종 45) 하동군 북천면의 남포동에 죽당(竹塘) 최탁(崔濯)[1598~1645]을 기리기 위해 주담(珠潭)...
사당과 재실
-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셔 놓은 집. 사당(祠堂)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을 말한다. 민간의 사당은 가묘(家廟)라고도 하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라고 부른다. 사당은 사우(祠宇)·사(祠)·사묘(祠廟) 등으로 대체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드물게 각(閣)이라 하여 격조를 높이려는 예도 있으며, 신주 대신 영정을 모시고 있을 경우 영당(影堂...
-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각각의 종중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세운 건물. 재실(齋室)은 종중(宗中)에서 조상의 묘제(墓祭)나 망제(望祭)를 지내기 위해서 세운 건물이다. 이를 재각(齋閣), 재궁(齋宮)이라고도 한다. 재실은 종중, 또는 문중의 공유 재산이며, 선산(先山)·종산(宗山)·위토(位土)·사당 근처에 위치한다. 재실은 묘제에 참석하는 후손들의 숙식과 제례 음식 등을 준비...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정씨의 재실.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의 도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북방마을길을 따라 가다 보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 하천을 건너는 북방1교가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지 말고 위쪽으로 20여 m의 산책길을 따라 오르면 하천에 징검다리가 있는데, 징검다리를 건너면 간취당(澗翠堂)에 이른다. 1821년(순조 21)에 창건하고, 1917년...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정씨의 재실. 감모재(感慕齋)에서 ‘감모(感慕)’란 효도하고 우애하여 후손이 마음속 깊이 사모한다는 뜻으로, 『서전(書傳)』 군진(君陳) 편의 글에서 따온 것이다. 하동군 금남면의 대치마을 남쪽 도로변에 있으며, 지방도 1002호선 서편 청송가든 뒷산 아래에 위치한다. 감모재는 진양 정씨(晋陽鄭氏)의 선조인 처사 정한구 이하 2...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양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령 이씨의 재실. 경모재(景茅齋)는 대장사(大壯祠) 옆에 있다. 대장사에는 군자감주부 신산공(新山公) 이홍훈(李弘勳)을 정위에 주벽으로 모시고, 차위에 의금부도사 남계공(南溪公) 이번(李蕃)을, 말위에 군자감봉사 인풍헌(仁風軒) 이분(李賁)을 봉안해 놓았다. 이 세 명은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하던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경모재(敬慕齋)는 진양 정씨(晋陽鄭氏) 은열공파 중조 진향의 14세손 정희백(鄭希伯)과 15세손 정두찬(鄭斗燦), 정두형(鄭斗炯), 정두환(鄭斗煥), 16세손 통정대부 정국필(鄭國弼), 17세손 정세(鄭世), 18세손 정래진(鄭來晋)의 추정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재실이다. ‘경모(敬慕)’란 공경하고 사...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 오르면 금양교회가 있다. 경본재(景本齋)는 금양교회 앞쪽에 위치한다. 경본재는 진양 정씨(晋陽鄭氏) 은열공파 중조 정진경(鄭晋卿)의 16세손 정국원(鄭國元)과 17세손 정태구(鄭泰龜) 2대의 시향(時享)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재실로서, 1918년 3...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개항기 때 사당. 경천묘(敬天廟)는 1902년(고종 3) 지방 유림과 후손들이 발의하여 경순왕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원래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검남산 아래 신기마을[새터]에 위치하였는데, 하동·사천 지구 농업용수 개발 사업을 위해 하동호를 건설하게 되면서 수몰 지역이 되어 1988년 11월 20일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대유학...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사당. 경충사(景忠祠)는 충의공 정기룡[1562~1622]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경충사가 위치한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는 임진왜란 때 수많은 전공을 세운 정기룡이 나고 자란 곳이다. 정기룡은 60여 차례나 왜군을 물리친 명장으로, “바다에는 충무공 이순신, 육지에는 충의공 정기룡”이라 일컬어질 정도...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하씨 문중의 사당. 경현사(景賢祠)에는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 참의공(參議公) 하경리(河敬履), 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1460], 경절공(敬節公) 하숙보(河叔溥)[?~1501] 등 4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양정공 하경복은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 양 대에 걸쳐 여진을 토벌하고...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풍천 노씨 문중의 재실. ‘경호(鏡湖)’라 이름 지은 이유는 재실이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 밑에 있어 내외의 모든 산이 연기와 구름 사이에 있으며, 동정호가 쪽빛처럼 푸르고 거울처럼 맑아서 무릇 호수의 경치가 다 재실에 비치었기 때문이다. 경호재(鏡湖齋)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외둔마을 표지석에서 외둔길을 따라 약 300m 정도...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 있는 진양 정씨 문중의 재실. 고양재(高陽齋)는 진양 정씨(晉陽鄭氏) 정은부(鄭殷富)의 12세손 정의균(鄭義均), 동호공(東湖公) 정균(鄭均), 청호공(靑湖公) 통훈대부 행장약원주부 정하균(鄭夏均), 월호공(月湖公)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신촌마을의 도로 좌측에 있는 마을 회관에서 약 300m 오르면 마을 끝 좌측에 존덕사(尊德祠...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용궁 김씨 문중의 재실. 관어재(觀魚齋)는 용궁 김씨(龍宮金氏) 퇴장암(退藏庵) 김중원(金重源)을 추모하는 사당인 경의사(景義祠)의 경내에 있다. 김중원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1891년(고종 28)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은 조...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양헌 이사증을 모시는 재실.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대봉감마을] 안길을 따라 오르면, 마을 중앙에 광천재(廣川齋)가 위치한다. 건립 시기는 자세하지 않으나,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정조 대에 합천 이씨(陜川李氏) 양헌(陽軒) 이사증(李師曾)을 추모하기 위해 그 후손들이 마련하였다. 이사증이 일찍이 큰 뜻을...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개항기 정기(鄭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귀후재(歸厚齋)는 이 고장에 처음으로 입향한 정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 정기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율리(栗里)이다.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며, 젊어서부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문하에서 배웠다. 겸재가 왕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경주 김씨 문중의 사당. 금남사(錦南祠)는 1904년(고종 41) 경천묘(敬天廟)를 조성한 이후 1918년 지방 유림들이 발의하여 고려조의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과 위패,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위패,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경천묘 경내에 건립한 건축물이다...
-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고룡리에 있는 진양 정씨 금오공 정흡의 재실. 정흡(鄭潝)은 여말 선초의 문인 우곡공(愚谷公) 정이오(鄭以吾)[1347~1434]의 10세손으로, 원래 진양에 살다가 하동군 진교로 이사해 금오산[849.1m]의 이름을 따서 금오당(金鰲堂)이라 호를 하였다. 금오재(金鰲齋)는 금오공의 후손들이 묘제를 지내기 위하여 마련한 사당이다. 입향조는 우곡공의 14세손인...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던, 조선 후기 최치원(崔致遠)의 영정을 모신 사당. 금천사(琴川祠)는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 영당마을 682번지에 위치하였다. 영당마을의 옛 이름은 가은곡(加隱谷)이고, 한동안 신덕촌(新德村)이라 불리었다. 금천사는 최치원의 영정을 모시기 위하여 1824년(순조 24)에 건립하였다. 쌍계사(雙磎寺)에 있던 최치원의 영정을 옮겨 와 봉안하였으나, 1...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긍구당(肯構堂)은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추동마을 정류소 옆길에서 약 150m 지점, 마을 끝에 위치한 숭모재(崇慕齋) 경내에 위치한다. 긍구당은 숭모재 경내에 있는 단양 장씨(丹陽張氏) 문중의 사당으로, 1746년(영조 22)에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일자형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 3칸은 온돌...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 최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옥종면의 두양마을 표지석 옆길을 따라 300m쯤 가면 우측으로 100m 지점에 마을 정자나무 쉼터가 있다. 내현재(乃見齋)는 쉼터 오른편에 위치한다. 전주 최씨(全州崔氏)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1824년(순조 24)에 창건하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개·보수한 흔적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1...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첨중추(僉中樞) 정대수(鄭大壽)는 오봉로수(鰲峰老叟)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광남군 이광악(李光岳)과 더불어 의병을 모아 방어하다가, 맏아들 정이함(鄭以諴)이 고성에서 전사하자 벼슬에 나가지 않고 대현재(大見齋)에 머물렀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중앙으로 오르면 금양교회가 나오는데...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정여창의 사당. 덕은사(德隱祠)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가르치던 악양정(岳陽亭) 뒤편에 있다.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 상덕마을 중앙로를 오르면 악양정 뒤편에 자리한 덕은사에 이르게 된다. 1490년(성종 21)에 지은 악양정보다도 먼저 건립되었다. 그러나 언제인지 모르게 없어졌다가 1...
-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서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진양 강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적량면 서리 중서마을에 도장골 계곡이 있는데, 계곡을 따라 마을 중앙으로 약 200m쯤 올라가면 마을 오른편에 도산재(道山齋)가 위치한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로 추정된다. 진양 강씨(晋陽姜氏)의 묘 아래 지은 집[묘하각(墓下閣)]으로, 자손들이 매년 제사를 지낼 때 준비하며 머물...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인천 이씨 문중의 재실. 동곡재(桐谷齋)는 인천 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 28세로 공조참의를 지냈으며, 통헌대부에 추증된 이석맹(李錫孟)과 부인인 숙부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상신마을 입구에서 마을 중앙로로 약 200m 오르면 상신마을회관이 나오는데, 동곡재는 상신마을회관의 위쪽 약 10...
-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에 있는 개항기 때 의령 여씨 문중의 재실. 하동의 동쪽에 있으며, 재실이 위치한 하동군 적량면의 ‘동산리’ 지명을 따서 동산재(東山齋)로 이름하였다. 동산재는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국도 2호선 변에 있는 하동산마을 입구에서 마을 회관 방향으로 오르면 오른쪽 약 10m 지점에 위치한다. 의령 여씨(宜寧余氏) 문중의 묘하각(墓下閣)으로서, 자손의 세일제(...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방재(斗芳齋) 경내에 있는 강민첨(姜民瞻)의 진영 봉안소. 두방영당(斗芳影堂)은 진주 강씨(晉州姜氏) 은열공파(殷烈公派) 1대인 고려 병부상서 태자태사(兵部尙書太子太師) 은열공 강민첨[?~1021]의 진영과 신위를 봉안한 곳이다. 강민첨은 진주에서 출생하여 목종 때 급제한 뒤, 현종 때 거란의 10만 대군이 침입하자 강감찬(姜邯贊)[948...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강민첨(姜民瞻)의 사당. 두방재(斗芳齋)는은열공(殷烈公) 강민첨[?~1021]을 모신 사당이자, 사당 영역 내의 한 건물인 강당의 명칭이다. 강민첨은 고려 목종 대에 급제한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현종 대에 동여진과 거란 등의 외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적을 세우고 상장군을 역임하였다. 이후 고려 문종 대에 공신각(功臣閣...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의성 김씨의 재실.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마을 하천을 따라 약 30m 오르면 왼쪽에 위치한다. 매강재(梅崗齋)는 의성 김씨(義城金氏)의 묘하각(墓下閣)으로서, 자손의 세일제(歲一祭)[1년에 한 번 지내는 묘제] 재숙소(齋宿所)로 세재 정묘 11월 21일에 건립하였다. 1964년 중건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일자형 홑처마...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최치완(崔致完)을 기리기 위해 지은 재실.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규성이 6대조인 낙안군수 가선중추부사 최치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재실을 건립하였다. 최치완은 산청으로 이사를 와서 세상을 뜨고, 아들 용양위부호군 최성종(崔聖鍾)이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들어와 여러 대를 살았다. 매산재(梅山齋)는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청암마을 뒤 수리곡에 있...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하홍도(河弘度)를 기리는 사당. 모한재(慕寒齋)는 겸재(謙齋) 하홍도[1593~1666]가 학문을 갈고 닦으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며,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을 비롯한 당대의 유학자들과 교류하던 곳이기도 하다. 겸재 하홍도는 벼슬을 단념하고 재야에서 공부하며 실천하였던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중 한 사람이며, 특...
-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조공근(曺公根) 이하 4대를 모시기 위해 세운 재실. 하동군 횡천면의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대부분 조선 초기에 평양감사와 이조판서를 지낸 충익공 조문택의 후예이다. 충익공의 후예인 조숙(曺淑)은 홍문관응교를 지낸 뒤 회양부사 등 다섯 고을을 거치면서 치적이 매우 높았으며, 조숙의 작은아들 조원우(曺元佑)가 하동의 입향조로서 400...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밀양 손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소축마을 입구에서 오른쪽 하신대길로 약 300m쯤 오르면 마을 상단에 감나무 밭이 나오는데, 성모재(省慕齋)는 감나무 밭 사이에 위치한다. 또는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소축마을 입구에서 왼쪽 길로 오르면 마을 회관이 나오는데, 마을 회관을 지나 위쪽으로 약 300m쯤 가면 찾을 수 있다....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진양 강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의 진양 강씨(晉陽姜氏)는 고려 현종 때 병부상서를 지낸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1021]의 11세손인 강원발(姜元發)을 파조로 하며, 21세손인 강원로(姜元老) 때 옥종면 북방에서 악양면 입석으로 이주 정착하였다.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마을 회관에서 위쪽으로 약 20m쯤 올라...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진양 강씨 문중의 재실. 영수당(永修堂)은 진양 강씨(晋陽姜氏) 묘 아래에 자손들이 매년 제사 지낼 때 준비하며 머물기 위한 장소로 건립되었다. 증통정대부(贈通政大夫) 강채무(姜采茂)가 장수하던 곳으로, 도의(道義) 정신을 영원히 존속시킨다는 뜻에서 ‘영수(永修)’라 하였다. 매년 4월 13일 사림(士林)이 이곳에서 모임을 해 왔으며, 8월 추...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용궁 김씨 우천공파 문중의 재실. 용궁 김씨(龍宮金氏) 선조 낭선공(浪仙公) 김태백(金太白)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을 지키다 순절하였다. 그의 아들인 율헌공(栗軒公) 김준걸(金俊傑)이 하동으로 이거하면서 용궁 김씨가 하동에 살기 시작하였다. 그 후 4세손에 이르러 오형제가 나뉘어져 5파(五派)가 되었고, 그 마지막이 우...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개항기 진양 정씨 효재[교재] 정원항의 재실. 효재[교재](嘐齋) 정원항(鄭元恒)은 진양 정씨(晉陽鄭氏) 은열공파 병부상서(兵部尙書) 신열의 후예로, 1823년(순조 23) 한재마을에서 태어나 1905년(고종 42) 세상을 떠난 선비이다. 당대 명류인 한주 이진상(李震相), 만성 박치복(朴致馥), 후산 허유, 면우 곽종석(郭鍾錫) 등과 교유하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최치원(崔致遠)을 기리는 사당. 운암영당(雲岩影堂)은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중심 소재지에서 고전면 고하리 고하마을로 넘어가는 궁단재의 지내마을에 위치한다. 고운(孤雲) 최치원[857~?]의 진영은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에 최초로 봉안된 뒤, 사본들이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과 하동의 옥천사(玉泉寺) 앞 학사대(學士臺)에 안치되어...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여수희(余壽禧)와 여경(余璟)을 기리는 재실. 운암재(雲巖齋)는 의령 여씨(宜寧余氏)인 판관공 여수희와 그 아들 판결사(判決事) 여경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여수희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으며, 여경은 학문과 덕행이 있어 명망이 높았다. 운암재는 하동읍에서 동쪽으로 10㎞쯤 떨어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수척마을 지방도 1003호선 가에...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개항기 진양 정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중앙로로 계속 오르면 금양교회가 나오는데, 계속해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끝 부분에 원모재(遠慕齋)가 위치한다. 원모재는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정씨 고가들 중 남쪽 건물에 해당한다. 정씨 고가 내에 있는 행랑채를 진양 정씨(晉陽鄭氏) 문중에서 매입해, 1909년(순종...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 있는 정온(鄭蘊)을 기리는 재실. 정온은 호가 담계(澹溪)이고, 자는 자온(子溫)이다. 진양 정씨(晉陽鄭氏) 문정공(文定公)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1347~1434]의 아들이며, 충장공(忠莊公) 애일당(愛日堂) 정분(鄭苯)[?~1454]의 동생이다. 태종 대 문과에 급제하여 문종 대 호조참판, 예문관대제학, 오위도총부도총관, 사헌부대사헌 등의...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이염(李琰)을 기리기 위해 지은 재실. 이염[1538~1588]의 자는 옥오(玉吾)이고, 호는 운당(雲塘)이다. 조식(曺植)의 문하생으로 유학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힘썼다. 문정 왕후(文定王后)가 불교를 진흥시키고자 선교 양종(禪敎兩宗)을 부활시키는 등 여러 정책을 펴자 이를 적극 반대하였다. 문정 왕후의 노여움을 사 극형에 처해질 뻔하였으나,...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당. 존덕사(尊德祠)는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己丑獄死) 때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무고와 길삼봉으로 오인되어 억울하게 죽은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 및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의 신위(神位)를 봉안한 사당이다.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신촌마을 도로 좌측 마을 회관에서 위쪽으로 약 300m 지점,...
-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강성 문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직전마을의 마을 회관에서 농로를 따라 올라가면 철길이 나오는데, 직하재(稷下齋)는 철길을 지나 좌측 방향으로 약 300m 거리 마을 상단 남쪽 지점에 위치한다. 직하재는 강성 문씨(江城文氏)의 묘 아래 건물[묘하각(墓下閣)]로, 현종 때 선비 문헌상이 창건하여 자손들이 매년 제사 때 준비...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문중의 재실. 진양 정씨(晉陽鄭氏) 입향조인 오봉공 정대수의 현손인 정국형(鄭國亨)은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은거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였는데, 이러한 법도를 세 아들인 정서구, 정순구, 정우구에게 물려주었다. 후손들은 처사(處士) 정국형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925년 첨모재(瞻慕齋)를 산소 곁에 건립하...
-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에 있는 개항기 하동 정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적량면 동리 명천마을에 하동 정씨(河東鄭氏) 선산 입구 이정표가 있다. 계곡을 따라 1㎞쯤 산길로 오르면 새비골 마지막에 취정재(聚正齋)가 위치한다. 취정재는 하동 정씨 밀직공(密直公)과 찬성공(贊成公)의 묘 아래 건물[묘하각(墓下閣)]로서, 자손들이 매년 제사 때 머물며 준비하도록 하기 위하여 1866년(...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개항기 여운택(余雲澤)을 기리기 위해 지은 재실. 학남재(鶴南齋)는 의령 여씨(宜寧余氏) 여철규(余喆奎)가 6대조 여운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여운택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고 태도와 행실을 잘 갖추었으며, 또 남에게 시혜를 많이 베풀어 오래도록 가문과 고을 사람들이 사모하였다고 한다. 학남재라는 이름은 산의 명칭에서 따왔다. 여행규(...
정려
-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조선 시대 충신·효자·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건축물. 정문(旌門)은 정려(旌閭)라고도 하며, 홍문(紅門)·홍살문이라고도 한다. 그 행실을 널리 알리고 표창하는 것을 정표(旌表), 그 일을 정려(旌閭)라고 했다.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여 그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운 건축물을 말한다. 대개 붉은 살을 두른 사방 한 칸 형식이나 문중 정려를 한 곳에 모아 여러...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개항기 김수직(金守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김수직은 본관이 용궁(龍宮)이며, 자는 겸지(兼之)이다. 1794년(정조 18)에 태어났으며,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천성이 순후하여 부모를 섬기는 데 여름에는 생선을 구하여 봉양하였고, 겨울에는 미음을 준비하여 공양하였다. 아버지가 종기를 앓자 여러 달 동안 입으...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에 있는 정치덕(鄭致德)·정치도(鄭致道)·정치행(鄭致行) 삼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순조 때의 진양 정씨 삼형제인 정치덕·정치도·정치행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아버지 묘소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 한편, 집에 빈소를 차려 매일 왕래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길을 닦아 효자로(孝子路)라 했고, 마을은 삼효동(三孝洞)이라 불렀다. 1891...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 대정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 정려비. 조선 철종 때 하동군 옥종면 병천에서 거주하던 선비 양정악(梁挺岳)은 효행이 높고 학문이 깊어 명망이 널리 알려졌다. 1855년(철종 6) 조정에서 양정악에게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고, 1867년(고종 4) 정려를 세울 것을 명하였다. 양정악의 아들 양태원(梁泰源) 역시 효행이 높아 손자인 진사 양주신(梁柱臣)...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있는 개항기 염정일(廉廷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여각. 효자 염정일[1801~?]의 자는 내일(乃一)이고, 호는 청산(靑山)이다. 유명한 효자 염종환(廉宗煥)의 아들이다. 염정일이 어느 날 아버지가 아파서 의원을 찾아 가는 길에 나루에 이르렀는데, 어떤 여자가 “남쪽에서 의원을 구하면 효험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여자가 말한 대로 의원...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 있는 개항기 때 정려각. 이번 처 절부려(李蕃妻節婦閭)는 이번(李蕃)의 처 장수 황씨(長水黃氏)의 절의를 기리는 정려각이다. 1593년(선조 26) 7월, 진주성(晉州城)을 함락한 왜군이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쪽으로 쳐들어왔는데, 이때 왜적을 피해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장수 황씨는 왜적에게 잡히고 말았다. 왜적이 칼을 목에 대고 위협하자 장수...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도동(鄭道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정도동은 본관이 오천(烏川)이고, 자는 행지(行之)이다. 어려서부터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의 뜻을 받들고 그 마음을 즐겁게 하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어머니 이씨가 천연두를 앓아 아버지 건암공(蹇庵公) 정홍적(鄭洪績)이 나가 피하라고 하였으나, 따르지 않고 밤낮으로 자신이 대신 병...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재권(鄭在權)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정재권[1796~1877]은 진양 정씨(晉陽鄭氏)로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이었다. 어려서부터 지극히 효성스러워 진귀한 음식을 얻으면 매번 반드시 집에 가지고 돌아가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비둘기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정재권이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하니...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 있는 효열부 밀양 손씨의 정려비. 개항기인 1878년(고종 15) 무렵 정환탁(鄭煥倬)의 처 밀양 손씨는 곤궁한 가운데 남편이 병이 깊어 몸져눕자, 삯바느질과 품팔이로 집안을 꾸리며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어느 날 병이 깊어진 남편이 하루를 넘기지 못할 듯하자 손씨 부인은 남편과 죽음을 함께 하겠다며 음독 자결로 목숨을 버렸는데 나이 27세였다....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진정리에 있는 개항기 함안 조씨 4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조씨 형제는 어려서부터 아무리 바빠도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는 뜻으로, 부모를 잘 섬기고 효성을 다함을 이르는 말]하였다. 늘 환한 안색으로 좋은 음식과 따뜻한 의복으로 봉양하며, 어머니의 병환에 몸소 약을 지어...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부 오천 정씨의 정려각. 오천 정씨(烏川鄭氏)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증손인 생원 윤관(允寬)의 딸이다. 남편인 지족(知足) 조지서(趙之瑞)[1454~1504]가 갑자사화 때 화를 당한 뒤 홀로 젖먹이 두 아이를 훌륭히 키웠다. 신주(神主)를 등에 지고 초야를 떠돌아다니면서 온갖 어렵고 험난한 일을 겪으...
효열비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효자 김광언을 기리는 비. 김광언 효행비(金光彦孝行碑)는 김광언(金光彦)이 극빈한 가정 형편에 병든 부모를 살리기 위해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 봉양한 사실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김광언 효행비는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1154-2번지 반계마을 노거수 아래에 있다. 팔각지붕의 덮개와 받침대가 있으며, 비석의 전체는 화강암이다. 비석의 크기는 높...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김성행(金聖行)의 효행을 기리는 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살았던 효자 김성행은 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나이 적은 계모 홍씨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효도를 다했다. 먼 곳의 농사일을 끝내고 밤중에 돌아올 때 호랑이가 길을 인도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1890년(고종 27) 고종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제수하였다. 1925년 마을 주민들이 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시복(金始復)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시복은 본관이 함창(咸昌)이며, 자는 성지(聲之), 호는 구정(龜亭)이다. 형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후손이다. 1778년(정조 2)에 태어나 열 살에 『효경(孝經)』과 『논어(論語)』를 통달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후하며 강직하고, 부모를 효로써 봉양하였다. 갑작스럽게 상(...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김재주(金載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영조 때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거주하던 효자 김재주는 병환 중의 아버지를 7년간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였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묘소를 오가며 살피고 애통해 하였다. 천하의 효자로 이름을 내고 세상을 뜨니, 조정에서 그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추증하였다. 이에 후손들과 고을...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김창휘(金昌輝)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순조 때 효자 통정대부(通政大夫)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김창휘는 아버지의 변을 맛보며 병환을 8년 동안 살폈고,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병중의 아버지가 1년을 더 살도록 했다. 그의 효행이 알려지자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다. 1941년 고을 사람들과 후손들이 뜻...
-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고이리에 있는 김현주(金顯周) 부자의 효행을 기리는 비. 김해 김씨 후손으로 효행이 뛰어났던 귤은(橘隱) 김현주는, 생부 김성두(金星斗)의 명을 받아 숙부 김문두(金文斗)에게 입양되어, 양쪽 부모를 지성으로 받들어 섬겼다. 김현주는 생부 김성두가 귤을 좋아했기 때문에 뜰에 귤나무를 심어 아버지를 봉양하고, 아호를 ‘귤은’이라 했다. 김현주의 아들 김민배(金珉...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효자 박수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수정(朴壽正)은 본관이 면천(沔川)이고, 자는 경현(敬賢)이며 문온공(文溫公) 박여룡(朴汝龍)의 후손이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시묘를 하였는데, 아들에게 매월 쌀 한 되와 소금 한 홉을 가져오게 하여 이것으로 생식을 하며 지냈다. 시묘를 마칠 무렵 아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아무 날...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에 있는 효자 서석진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서석진(徐錫瑨)은 본관이 달성(達城)이며, 구계공(龜溪公) 서항(徐沆)의 후손이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으나, 하루하루 나무를 하여 팔아 생계를 꾸리며 홀로 된 병든 노모를 모셔야 하는 극빈(極貧)한 가정이었다. 온갖 정성을 다하여도 노모의 병이 낫지 않았고, 점점 심해지기만 하였다. 병구완을 하느라 장...
-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있는 서용순(徐龍順)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서용순은 개항기 사람으로 초명은 서애혁(徐璦赫)이며, 아버지는 서지순(徐智淳)이다. 13세에 손가락 피를 내어 어버이를 소생하게 하는 등 효를 행하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중년에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당시 유림에서 정려를 받으려고 통문을 돌리고 장계를 올렸으나 시대가 달라져 뜻을 이루지...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성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왕지환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왕지환(王旨煥)의 초명은 왕지흥(王旨興)이고, 자는 군은(君恩), 호는 신암(信庵)이다. 왕지환의 효행 사실을 고을 사람들이 관청에 올려 관청에서 기특하게 여겼으나, 시절이 바뀌어 표창을 못하였다. 이에 왕지환이 세상을 떠난 지 40년 만에 왕지환 효행비(王旨煥孝行碑)를 세워 귀감을 삼고자 하였다....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효자 이경인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경인(李慶仁)은 1831년(순조 31) 43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1844년(헌종 10) 그의 효행을 기리려는 집안사람들과 고을 사람들이 나라에 효자비를 건립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1876년(고종 13) 나라의 허락이 내리자 후손 및 고을 사람들이 비를 건립하였다. 이경인 효행비(李慶仁孝行碑)는 위가 뾰...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자 이원주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원주(李元周)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명을 어기는 일이 없던 효자였다. 부모님이 중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낫지 않자 죽어 가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살려 냈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행을 기리고 후세의 귀감을 삼기 위해 1928년에 비를 세웠다. 이원주 효행비(李元...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자 정원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원철(鄭源喆)은 본관이 진양(晉陽)이며, 자는 응원(應元)이고, 호는 모헌(慕軒)이다.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의 후손이다. 정원철 효행비(鄭源喆孝行碑)는 정원철의 효행을 기릴 뿐 아니라 인륜이 무너지는 세태에 그의 행적을 보여 줌으로써 효도가 백행(百行)의 근본임을 알리기 위해 1918년...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 있는 강상현(姜尙鉉)의 처 성성순(成聖順)의 효행을 기리는 비. 일제 강점기에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 거주하는 창녕 성씨 성성순은 16세에 강상현과 혼인하여 가난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몸이 불편한 남편과 고령의 시할머니, 홀아비인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효행을 현창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자, 성씨 부인의 시아버지 강...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해 김씨와 하동 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강성환(姜聖煥)의 처 김해 김씨는 남편이 병들어 백방으로 애썼지만 효험이 없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 치료하였다. 그 뒤 맹인이 되어 23년을 앞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동 정씨는 김해 김씨의 아들 강진황(姜鎭璜)의 처이다. 시어머니가 맹인이 되자 언제나 시어머니와 한 몸...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최원추(崔元樞), 최상순(崔相淳) 및 창녕 성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최상순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1838년(헌종 4) 출생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너그럽고 후하며 인자하여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일을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처리하였다. 부인 창녕 성씨(昌寧成氏)와 함께 병약한 노부모를 모시며 효도를 다하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에 있는 개항기 김경좌(金慶佐) 처 광산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경좌의 처이다. 18세에 시집가서 시부모와 남편을 정성으로 모셨다. 김경좌가 세상을 떠나자 53세의 나이로 남편의 뒤를 따라 생을 마감하니, 그 열행을 기리기 위해 김해 김씨 문중에서 1875년(고종 12)에 열녀비를 세웠다. 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전주 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남편의 병에 정성을 다한 용궁 김씨(龍宮金氏) 김병희(金炳希)의 처 전주 전씨(全州全氏)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고을 사람들이 비를 세웠다. 김병희 처 전주 전씨 열행비(金炳希妻全州全氏烈行碑)는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919-4번지 서촌마을 어귀 농로 변 새마을 창고 서...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법대리에 있는 김사봉 처 점화의 열행을 기리는 비. 조선 성종 때인 1400년경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살았던 김사봉의 처 점화(占化)가 집안에 침입한 도적떼들에게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하자, 완강하게 항거하며 머리를 바위에 부딪치며 죽을 각오로 저항하니 도적들이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는 도적들의 손에 더렵혀진 유방을 잘라 자결하고 말았다. 이에 조정에서 그...
-
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에 있는 안동 권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성두 처 권씨 효열비(金星斗妻權氏孝烈碑)는 남편과 시부모에게 효열을 다한 권씨의 행적을 기릴 뿐 아니라 인륜이 해이해지고 삼강이 무너지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위해 세웠다. 김성두 처 권씨 효열비는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 442-14번지 궁항마을 도로변에 있다. 비석의 몸돌은 규...
-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진양 유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후손들이 진양 유씨(晉陽柳氏)의 효열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에 효열비를 세웠다. 김찬무 처 유씨 효행비(金贊武妻柳氏孝行碑)는 갑정마을에서 월운마을로 가는 도로 변인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산41-1 에 있다. 비석의 몸돌과 받침돌은 화강암이다. 팔자형의 비석 덮개가 있...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에 있는 열부 성산 이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성산 이씨(星山李氏)는 인종 때 사람으로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나 정숙하고 순박하게 자라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치용(金致鏞)과 혼인하였다. 남편을 일찍 여의었으나 절개를 지켜니, 이를 기리기 위해 1984년에 열녀비를 세웠다. 김치용 처 성산 이씨 열부비는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 662번지 예성마을 어귀에...
-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난파(蘭坡) 정공(鄭公) 부부의 효행비. 난파 정공 부부 효행비(蘭坡鄭公夫婦孝行碑)는 조선 후기 영조 때 효자인 통정대부(通政大夫) 난파 정공과 부인인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도 19호선이 지나는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과 강선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비각은...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시대 남평 문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유인(孺人)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길쌈으로 가정을 꾸려 가면서도 남편의 병간호를 지극히 하여 이를 기리기 위하여 비를 세웠다. 유인 문씨 열행비(儒人文氏烈行碑)는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 369-3번지에 있다. 팔각지붕의 덮개와 받침대가 있으며, 비석의 전체는 화강암이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 있는 열녀 진양 정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진양 정씨는 정해종(鄭海鐘)의 딸이며, 남평(南平) 문수호(文守浩)의 처이다. 23세에 병을 앓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데 재혼하지 않고 부부의 도리를 지킨 진양 정씨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1958년 8월에 열녀 진양 정씨지비(烈女晉陽鄭氏之碑)를 세웠다. 열녀 진양 정씨지비는 하동군 진교면...
-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에 있는 개항기 진양 하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진문(河晉文)의 딸 진양 하씨(晉陽河氏)는 함양 박씨(咸陽朴氏) 박이한(朴而翰)에게 시집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혼인 초에 남편이 독사에 물려 세상을 떠났는데, 진양 하씨는 독사가 나타난 곳으로 가서 슬피 울며 이틀을 기다려 독사를 잡아 물어서 씹어 죽이곤 자결을 하였다. 고종 연간에 나라에서...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에 있는 효열부 밀양 손씨를 기리는 비. 밀양 손씨(密陽孫氏)는 남편의 병간호를 극진하게 하고, 남편이 세상을 뜬 후에는 절개를 지키며 길쌈을 하여 시부모를 봉양하였다. 사림이 효열부(孝烈婦) 상을 드높이기 위해 포상하고, 이를 기리는 비를 세웠다. 백낙훈 처 손씨 기적비(白樂訓妻孫氏紀蹟碑)는 팔각지붕의 덮개와 받침대가 있으며, 비석의 전체는 화강암이다...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열부 은진 송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연로한 시부모를 모신 은진 송씨(恩津宋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이현유 처 송씨 행적비(李鉉宥妻宋氏行蹟碑)는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 116번지 원해마을 지방도 사거리 옆에 있다. 비석의 전체는 화강암이며, 팔각지붕의 덮개와 받침대가 있다. 비석의 크기는...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에 있는 정연관(鄭然灌) 처 남원 양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남원 양씨(南原梁氏)는 사간원 대사간을 지낸 양사귀(梁思貴)의 후손으로, 아버지 양재룡(梁在龍)과 어머니 진양 하씨(晉陽河氏) 사이에서 났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장애인인 정연관과 결혼하여 개가하지 않고 열심히 살면서 시부모를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장사를 하여 재산을 모아서는 집안 조카...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 있는 하동 정씨 네 열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동 정씨(河東鄭氏) 집안의 네 열부인 정한종(鄭翰宗)의 처 연안 차씨(延安車氏), 정한종의 질부 김해 김씨(金海金氏), 정한종의 재종질부 파주 염씨(坡州廉氏), 정한종의 손부 진양 강씨(晉陽姜氏)의 열행이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묻혀 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하동 정씨 문중에서 1966년...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허분선(許分善)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허분선은 본관이 김해(金海)이며, 아버지는 허신득(許辛得)이다. 1902년(고종 39)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서 태어났다. 진양 정씨(晉陽鄭氏) 정원선(鄭源善)과 혼인하여 가난한 살림을 잘 꾸렸다. 병석에 누운 남편의 병간호와 시부모의 부양을 극진히 하였다. 허분선이 효행으로 고을 유림(儒林)의...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진양 정씨(晉陽鄭氏)는 정성기(鄭聖基)의 딸로 황창주(黃昌周)와 결혼하였다. 시부모를 정성껏 모셨는데, 시부모가 일찍 세상을 뜬 뒤 노망 든 시할머니도 극진히 모셨다. 돌아가신 뒤 상례와 제례를 예법에 맞게 하였다. 이 같은 진양 정씨의 지극한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28년에 효행비를 세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