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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시집온 안도 민박집 무녀리 문영월(63세) 씨의 섬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A030104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호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에서 안도민박을 운영하는 문영월[63세, 2008년] 할머니의 고향은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이다. 섬에서 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남편의 사업 실패로 30대 초반에 어쩔 수 없이 섬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밖에 나가서 살고 싶어도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서워서 못나가겠다고 한다.

처음 여객선을 타고 안도에 들어오는데, 지금은 잔교에 배들이 정박하지만 그 때는 여객선에서 상륙하려 하면 종선이라는 조각배를 갈아타고 내리는데 어떻게 육지가 멀리 보이고 무서웠던지 혼났다고 한다. 섬이라고 느끼게 된 것은 물이 들고 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여기가 섬인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어쩌다가 고향에 한 번씩 가는데, 오랜만에 가기 때문에 갈 때마다 많은 것들이 변해 있어 항상 새롭고 낯설었다고 한다. 고향 사람들은 서울보다 멀리 사는 사람이 왔다고 놀렸다. 서울에서 화순까지는 버스 한 번만 타면 되는데, 안도에서는 여수까지 배를 타고 나와서 광주까지 버스를 타고 가 광주에서 다시 화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가 도착하기까지 하루 종일 걸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섬 생활에 익숙하지 못해 바닷가에 나가서 갯것을 할 때면 다른 사람들은 고동 같은 것들을 많이 잡는데 문영월 할머니는 도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두멍안을 건너다니는 뗏목을 아직도 무서워 못타는 화순 처녀 그대로다.

문영월 할머니는 안도에서 맨 처음 민박집을 운영하였다. 1988년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몸이 불편하여 빚더미에 앉게 되자 우체국 관사였던 일본식 집을 수리하여 파출소·우체국·농업협동조합 직원들을 상대로 밥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 민박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빚을 갚기 위해 밥장사를 하면서 한편으로 이불 장사도 하였다. 보성 예당에 동생이 살고 있어 그곳에서 쌀을 가져다가 쌀장사도 하였는데, 많이 팔 때는 700가마니까지 팔았다. 쌀값은 섣달 그믐날 마을 결산 때 알아서 갚아 줘서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밥장사와 쌀장사를 10년 하니 남편이 남긴 빚이 갚아지더란다. 남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데 남편은 어떤 분이었느냐는 질문에 웃음부터 짓는다.

“그 양반 한번은 연탄 갈아 놓으라고 하니까 새카만 새 연탄을 밑에 넣고 불붙은 연탄을 위에 놓아 불을 꺼뜨릴 정도로 가정사에는 무심한 사람이었어. 그 양반은 사업을 하면서 사람을 많이 거느려 봐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더라고. 그래서 믿음이 가서 따라 살았지. 아마 자기 죽으면 섬에서 나갈 줄 알았을 거이여. 섬 남자들은 육지에 나가면 양복에 넥타이 메고 폼을 재고 다니다가 높은 나무를 보면 아! 저 나무 돛대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는데, 나도 육지에 나가면 섬 생각을 하는 할머니가 다 되어 부렀어.”

민박 주인 문영월 할머니는 이제는 섬 할머니임을 자인한다. 안도민박 쪽으로 발을 옮기며 투덜거린다.

“이번 토요일에 예약 손님이 많았는데 갈매긴가 독수린가 태풍이 온다고 예약을 다 취소해 부렀어, 멀쩡한 날씬디 뭔 태풍이여, 예보를 똑바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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